프 롤 로 그
필자가 1997년 제네바 대표부에 첫 부임했을 때 WTO는 매우 의욕적이고 희망에 찬 국제기구로 기억된다. 최초의 다자무역기구로서 1995년 출범 이후 3년차에 접어든 시점이었기에 각국 대표단과 WTO 사무국 직원들로부터 자부심도 엿볼 수 있었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합의한 새로운 협정문에 근거해 운영되던 각 위원회는 공식/비공식 회의를 하면서 협정문에 담긴 국제규범을 어떻게 충실하게 이행할 것인가 열중하고 있었다. 새로이 도입된 TPR(Trade Policy Review, 무역정책검토)은 회원국의 무역정책 전반을 점검하는 시스템으로, 자국의 제도를 투명하게 소개하고 회원국들로부터 관련 질문과 심사를 받는다는 점에서 검토 대상국에게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GATT에 비해 구속력을 지닌 분쟁해결절차가 도입되어 이에 임하는 각국의 태도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회의장 내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다. 100여 개 국가의 대표들이 회의장에 모여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합의를 모색하는 데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 EU, 일본, 캐나다(일명 쿼드 QUAD) 중심으로 이견조정이 이루어졌고, 공식회의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이들 쿼드국가 중심의 비공식 회의에서 대략적인 방향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로부터 18년이 지난 2015년에 필자는 다시 WTO 대표부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WTO가 출범한 지도 20년이 되었다. 3살 어린 아이를 본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나 20세의 성인을 기대하면서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유럽의 도시 제네바는 그리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WTO 내에서는 지상주차장이 지하주차장으로 바뀌면서 그 공간에 사무국 직원 건물이 들어서고 휴식공간이 넓어진 정도… 그 밖에는 1999년 임기를 마치고 떠났던 당시의 모습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WTO 회의에 참석하면서 필자는 15년 시간의 깊이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한국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회의에서 주요 발언자로 등장하는 중국. 특히, 중국의 발언이 가지는 무게감은 미국과 EU에 못지 않았다. 반면 과거 쿼드 멤버였던 일본과 캐나다의 존재감은 1990년대와 비교해 많이 줄어들어 보였다. WTO DDA 협상이 부진해서 인지 전반적인 WTO 내 분위기는 침체되어 있었고, WTO 사무국 직원들에게서 느꼈던 자부심과 의욕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필자는 ITA II(Information Technology expansion Agreement, 정보기술확대협정)협상의 마지막 단계인 이행기간(Staging) 협상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변화의 일단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2015년 상반기까지 대상품목에 합의하였고 남은 6개월 동안은 각 품목의 관세인하 기간협상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협정이 발효되는 즉시 모든 대상품목의 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각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여 일부 품목은 협정 발효 후 3, 5, 7년까지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즉시 또는 3년 내 관세철폐를 하지 않는 품목을 결정하는 협상이었다. 참가국 중 관심국가는 단연 중국이었다. 미국, EU를 비롯해 모든 나라가 중국의 관세철폐 기간을 최대한 앞당기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산업의 발전 정도를 이유로 상당품목을 5년 이후 철폐 품목으로 제안하였다. 12월 최종 타결까지 미국이 중심이 되어 중국의 관세철폐 일정을 앞당기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계속되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일부 자국 품목의 일정을 앞당기고 다른 나라도 이에 동참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중국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2015년 12월 나이로비 각료회의 최종 결과는 중국이 당초 제시한 일정에 하나의 변화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2016년 이와 유사한 EGA(Environment Goods Agreement, 환경상품협정)협상을 경험하면서 다시 한 번 중국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EGA협상은 다자협상이 부진한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가 임기 내 성과를 거두려고 TISA(Trade in Service Agreement, 서비스무역협정) 협상과 함께 미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핵심정책이었다. 정보통신분야와 같이 무역증가가 예상되는 환경분야 상품의 관세를 철폐하는 협상이었다. ITA협상과 같이 최대의 관심은 역시 중국이었다. 다른 협상참여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수 시장규모는 크지만 산업발전이 미흡한 중국은 미국, EU 등 선진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맞서는 형국이었다. 미국은 높은 수준의 관세철폐 안을 제시하며 12월 말 장관급 회의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미국(안)으로 합의가능성이 크지 않자 EU가 중재안을 제시하며 합의를 시도하였다. 이 역시 여의치 않자 중국도 마지막 순간에 자국이 마련한 중재안을 던진다. 중국(안)은 미국(안)에 비해 관세철폐 수준이 낮지만 미, EU, 일본 등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민감품목에 관한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한 것이었다. 결국 어떠한 안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회의는 끝났다. 미국의 중재안에 자국의 민감품목이 많이 포함되어 내심 불만이 있었던 나머지 국가들에게 관세철폐 수준을 낮춘 중국(안)이 그리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이제 중국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합의할 수 없는 WTO를 경험했다. 과거라면 미국이 나서서 주요국과 비공식 협의를 통해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 냈을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10차(2015년)와 11차(2017년) 두 번의 WTO 각료회의를 경험하면서 DDA 이슈와 뉴 이슈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분열을 확인했다.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 WTO 다자체제를 출범시켰던 통합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양측의 끝없는 평행선 주장만이 계속되었다. 상대적으로 위상이 높아진 개도국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은 이러한 개도국들의 입장을 수용할 여유와 전략이 없어 보였다. 마침내 2016년 말 미국 대선에서 자유무역보다는 공정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WTO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면서 탈퇴까지 언급했다. 마침내 11차 각료회의 선언문 협의 과정에서 미국이 다자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마저 반대하여 각료선언문조차도 발표하지 못했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WTO 출범초기와 20년 후 변화한 WTO 상황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WTO가 왜 이렇게 변해버렸는가?”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곧 바뀌었다. 1995년 WTO의 출범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WTO가 출범하기 50년 전 처음으로 시도되었다가 실패했던 ITO(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국제무역기구)에 대해 궁금해졌고, WTO는 어떻게 ITO의 실패를 딛고 일어섰는지도… 그리고 어떻게 DDA는 시작되었고 왜 실패의 과정을 겪고 있는지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꼬리를 이어가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가면서 왜 미국이 TPP를 주도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공정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언론에서 미·중간 무역전쟁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실마리가 풀려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학술논문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필자가 공무원으로서 WTO 현장에서 느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진 5가지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고자 관련 자료에 근거하고 일부 필자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전체 시각에서 볼 때 균형을 잃은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모든 부족한 점은 필자의 몫이다. 다만, 통상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과 통상분야 공부를 시작하려는 학생들에게 세계 통상질서가 어떻게 흘러왔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바쁜 일정에도 출판을 위해 교정과 디자인을 포함해 소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박영사 노현 이사님과 박세기 부장님, 그리고 전채린 과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네바 대표부에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대한민국 정부, 특히 산업통상자원부에 감사드리며, 필자와 함께 근무하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준 많은 선배, 동료, 후배 공무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평생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오신 부모님, 삶의 동반자로서 항상 곁에서 나를 믿어주고 내 편에 서서 이해해준 아내 소희,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듬직한 아들 찬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제네바에서
박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