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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 베로니크올미
  • |
  • 휴먼앤북스
  • |
  • 2006-05-29 출간
  • |
  • 164페이지
  • |
  • 136 X 195 mm
  • |
  • ISBN 9788990287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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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육체만이 구원이다!

단절의 시대, 의사소통 부제의 시대에 말없는 육체의 마주침과 성행위를 매개로
용서와 사랑과 화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절규!
그 절규는 절제의 문장과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여성심리 묘사의 극치!


한때 부부였다가 헤어진 지 오래된 남녀가 다시 만난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서로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호텔로 들어간다.
아직도 아프게 짓누르는 과거의 상처와 타는 듯한 욕망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마침내 쾌락의 절정 속에서 티 없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평온을 느끼는 두 남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들의 관계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시적 언어로
인간의 고통과 삶에 대한 욕망을 섬세하게 풀어나간
프랑스 소설의 새로운 언어미학, 베로니크 올미의 감성 소설!




▶ 시적 이미지, 섬세한 심리 묘사, 상처 입은 영혼들의 은밀한 풍경

어느 비오는 여름날 오후, 파리의 도심에서 두 남녀가 만난다.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한 남녀는 강한 욕망을 드러내며 키스를 하고, 곧장 근처 호텔로 들어간다. 이후 소설은 끝까지 두 남녀의 정사 장면만을 보여준다. 중간에 잠시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대목을 제외하고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두 남녀밖에 등장하지 않으며, 사건의 서술보다는 두 남녀의 심리와 호텔방에서 벌어지는 상황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두 남녀가 어떻게 헤어지게 됐으며,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의 기본적인 정보도 두 남녀의 정사 장면 간간이 불쑥불쑥 두서없이 튀어나올 뿐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를 파악하려면 퍼즐 맞추기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 두 남녀는 꿈같은 사랑을 나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여자가 남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까지. 여자가 왜 변심했는가는 설명되지 않는다. 남자는 그 충격으로 심각한 정신병을 앓았고, 둘의 결혼생활은 지옥이 된다. 결국 둘은 이혼했고, 그후 각각 다시 재혼하여 살고 있다. 둘 사이의 아이들은 여자가 맡았지만, 여자는 현재 아이들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암시된) 현 남편에게 보내고 홀로 파리에 와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남편과의 사이도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자는 남자와 헤어진 후 거식증을 앓고 걸핏하면 구토를 하는 등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여자의 정신은 지난 몇 년간 황폐해졌으며 몸은 비쩍 마르고, 절망의 극한에 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자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욕망을 갈망했으며, 여자의 상태를 본 어떤 친구가 옛 남편에게 연락하여 남자가 여자에게 전화를 하고 만나게 된 것이다.
소설은 주로 여자의 심리를 따라간다. 여자가 오년 만에 남자를 만났을 때, 그녀는 남자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단지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욕망만을 느낀다. 반면, 멀리서 늘 여자를 지켜봤던 남자는 여자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 비 오는 파리의 한 공원에서 여자는 도취된 듯 남자에게 키스를 하고, 둘은 자연스런 수순대로 호텔로 들어간다. 몸이 원하는 대로 둘은 쾌락을 나누지만, 과거의 상처는 쉽게 이들을 풀어주지 않는다. 여자는 쾌락을 원하면서도 주저하고, 그들의 행위는 간간이 끊어지면서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급작스러운 침묵.
급작스러운 마주 봄.
그들은 다시 마주 보고 앉았다.(……)
그는 더 원하지 않는 건가? 그는 그녀에게 요구할 것인가? 통속적이고 범속하게도 그녀에게 에이즈 검사를 요구할 것인가? 자기 아내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 시에 떠나야 하는지 이야기할 것인가? 그녀가 왜 이렇게 야위었는지 물을 것인가? 마침내…… 라고 그가 그녀에게 말할 것인가?(57쪽)

그녀는 그의 성기가 그녀 속으로 들어오기만을 원했다. 그 적나라한 행위, 그 최초의 진실 외에 다른 것은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다리를 벌렸다.(67쪽)

그녀는 (……) 쾌락을 느낄 때만큼이나 큰 소리로 오열했다. 그를 원하지 않은 채 그의 페니스를 자신의 뱃속에서 빼내면서.(71쪽)

하지만 곧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고 위로를 얻는다.

이 남자의 몸을 빨아들이는 것은 하나의 보상이었고, 그것은 인생을 통틀어 매우 급작스러운 기쁨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77쪽)

▶ 상처 받은 두 영혼은 육체의 합일을 통해서 어떻게 치유에 이르는가

이후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길고 긴 정사 장면은 상처 받은 두 영혼이 육체의 합일을 통해서 어떻게 치유에 이르는가를 보여준다. 여자에게 있어 영혼의 치유란 곧 살아간다는 결정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기. 여자는 살기를 결심하고 잠든 남자의 곁을 떠나 호텔방을 나선다.
정사를 통해 이들이 치유되는 핵심에는 어린시절로의 회귀가 있었다. 한때 여자가 영원히 잊었고 무시했으나 그녀와 같은 피로를 느끼고, 삶과 희망을 위해 투쟁해온 이 남자의 강인한 어깨에서 그녀가 본 것은 그들의 어린시절이었다.

그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잘 보기 위해 그녀의 몸을 풀어주었다. (……) 그녀는 벽에서 조금 떨어져 나왔고, 그의 시선 속에서 처음으로 어린시절의 모습을 보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행복한 놀라움이고 순진한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진실한 빛이었고, 고백이었고, 그가 그녀에게 베풀어준 선물이었다. 그의 어린시절의 일부분.
그들은 몇 초 동안 그렇게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서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그들의 육체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발견 속에, 새로운 인식 속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먼 청춘 시절 속에, 삶이란 거대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그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들이 그것을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인생의 초년기 속에 그렇게 머물렀다. 그때 그들은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삶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삶을 붙잡기 위해 달려야 한다는 것을, 결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로지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바람과 비에 맞서 투쟁하며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자갈과 어리석음 위를, 증오 위를 달려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 마침내 그것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태어난 지 오십 년이 지난 뒤에 한 미지의 인물의 육체 속에서 약간의 어린 시절을 손에 붙잡게 된다는 것을.(103~104쪽)

살아가기로 한 그녀의 결정도 결국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정사 이후에도 계속될 고통을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이 문장은 보여준다. 얼굴이 붉어질 만큼 적나라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포르노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흥분을 전혀 발동시키지 않는 것은, 작가가 삶의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고 구원으로서의 욕망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을 진정 작가주의 문학으로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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