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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 연애시리즈-철학자의 연애, 종교인의 연애, 정치가의 연애, 음악가의 연애, 과학자의 연애 세트

[묶음] 연애시리즈-철학자의 연애, 종교인의 연애, 정치가의 연애, 음악가의 연애, 과학자의 연애 세트

  • 김형수 외
  • |
  • 바이북스
  • |
  • 2015-04-30 출간
  • |
  • 244페이지
  • |
  • ISBN S77788992467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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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인의 연애
     
    김형수 외 지음 바이북스 2015-04-30
    2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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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가의 연애
     
    김응종, 김태권, 박경옥, 이강혁, 이양자, 원종우 지음 바이북스 2015-06-24
    2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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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의 연애
     
    박민아 , 박병철, 이은희, 이인식, 최세민, 홍승효 지음 바이북스 2015-11-20
    24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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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자의 연애
     
    김선희 , 박승억, 유원기, 이광모, 이왕주, 최훈 지음 바이북스 2015-03-20
    24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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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가의 연애
     
    서희태 , 이채훈, 임진모, 최규성, 황덕호 지음 바이북스 2016-01-11
    216페이지|
    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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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종교인의 연애 

“당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걸어라.” (이슬람 성자 루미)

 

사랑이 아니라 연애, 그것도 종교인의 연애?

- 종교인은 정말 금욕주의자인가

그렇다. ‘사랑’이 아니라 ‘연애’다. 굳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말 대신 연애라는 통속적인 말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사랑이라는 말이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면 연애라는 말은 구체적 행위성을 좀 더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은 단순히 감정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적으로 인생에 큰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종교인의 연애’라고 하면 왠지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도 꽤 된다. 종교인은 금욕주의자와 동의어로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 성해영 교수의 말처럼 “종교인은 이성(異性)보다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나 종교적 진리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들은 세속적 사랑, 특히 성적인 사랑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성해영, 6장 <성속 합일의 에로스>, 211쪽). 그러나 뜻밖에도 세상을 발칵 뒤집으며 후대인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 종교인의 연애 사건은 꽤 많다. 이 책은 바로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등 각 종교계에서 큰 획을 그은 성직자 6인의 연애 이야기, 그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종교 철학과 사상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있다. 

 

애욕에 시달리고, 질투하고, 집착하는 성직자들

- 일엽&백성욱 / 

- 카를 라너&루이제 린저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사옵기에 살아서 이 몸도, 

죽어서 이 혼까지도 그만 바치고 싶어질까요.” 

연애편지에 수없이 인용되었을 법한 위 문장은 한 여성이 한 남성에게 보낸 서신의 한 구절이다. 이 편지를 받았을 남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만약 그가 그녀를 사랑했다면 가슴 벅찬 나머지 환호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신은 한 가지 큰 문제를 담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 승려가 또 다른 승려에게 보낸 편지였다는 점이다. 공개되어서는 상당히 곤란했다는 얘기다. 이성을 향한 금욕은 가톨릭 사제와 더불어 승려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조건이니 말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그 승려는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을 펴내며 이 서두에 이 시를 수록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토록 대범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해진다. 바로 1920년대 신여성의 대표 주자로 여성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가 돌연 불가로 귀의한 일엽 스님이다. 남성이 주도한 공적 담론 형성 과정에서 여성이 스스로 길을 열고 능동적 주체로 참여하는 최초의 본격 여성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자유연애와 신정조론을 주장하던 김원주(일엽의 본명)는 갑자기 여성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승려가 된다. 

그러나 일엽은 한때 혼까지 바쳐 사랑하고 싶었던 백성욱에게 소포 하나를 받고서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심지어 “성불의 길이 조금 더디어도 좋아요”라고 고백하고 만다. 성불을 위해 보내온 10여 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고백이었다. 5장 <사랑과 이별은 곧 하나이며 나와 당신 또한 하나라>의 저자 유진월 교수는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고자 들어선 길에서 그 목표가 늦어져도 좋다니, 이보다 절실한 사랑의 고백이 또 있을까?”라고 말하는데, 보통 사람은 승려가 애욕에 빠져 허덕이다니 이보다 더한 자격 미달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내 일엽은 청춘을 불사르지 못하면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청춘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그간의 연연해하던 편지를 모두 찢어버린다. 그 뒤 일엽은 불교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며 한국 불교사의 가장 대표적인 비구니로 큰 발자취를 남긴다. 인간으로서 자신이 겪어왔던 애욕의 감정을 정공법으로 세상에 알림으로써 진정한 나를 찾고 참 자유인이 된 것이다. 

 

불교계에 일엽이 있다면 기독교계에는 카를 라너가 있다. 그 역시 일엽이 그랬듯이 사제 신분임에도 “한 여성과의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사랑 때문에 받은 깊은 고통을 겁내지 않았”(122쪽)던 신학자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라너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고, ‘교회가 유일한 구원의 방주’라는 당대의 신학에 “그리스도를 모르지만 자기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의 도덕적 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함으로써 세계 신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3장 <익명의 사랑>을 쓴 이충범 교수는 라너의 이 발언은 “수백 년간 그리스도교가 누렸던 절대 종교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사건”이었다고 표현한다. 뿐인가. 라너는 여성의 피임과 여성의 사제 서품을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침묵과 수행에 전념했던 모범적 수사이자 혁명적인 신학 이론으로 전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사제였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신학을 공부한 사람 모두가 20세기 최고 신학자라고 칭할 만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러나 라너는 사후 또 다른 사건으로 일반인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예수회 사제였던 그가 한 여성과 깊이 관계돼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삼각관계에까지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상대는, 바로 전혜린이 번역해서 한국인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았던 《삶의 한가운데서》의 저자 루이제 린저다. 

라너는 린저에게 생전 2213통의 편지를 린저에게 보냈고, 린저는 라너에게 366통을 보냈다. 하루에 서너 통도 마다하지 않고 열성적으로 편지를 썼으며, 죽기 전 자신이 받았던 편지를 린저에게 보냈다. 예수회가 이 증거를 없앨 터이므로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린저는 라너의 편지를 출간하려 했으나 그 편지마저 예수회 소유라는 원칙에 따라 좌절되고, 자신이 라너에게 보낸 편지만 출간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줄타기’라는 뜻의 《그라트반더룽》이다. 줄타기란 경계의 문제를 뜻하며, 경계란 바로 라너의 독신 서약을 의미한다. 제목에서부터 라너가 정말 린저와의 관계에서 독신 서약을 충실히 지켰는지, 그 경계선을 결코 넘어서지 않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충범 교수는 바로 이 책의 원서를 읽고 분석해 3장 <익명의 사랑>을 집필했다. 그것도 소설과 일반 산문 형식을 교차해 씀으로써 흥미로움과 깊이를 모두 담보해내고 있다. 

명망 높은 사제의 마음을 사로 잡은 린저는 대체 어떤 여성이었을까. 라너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삶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세 번의 이혼, 《파문》《삶의 한가운데》 집필, 반나치 활동, 반핵 평화 운동, 여성운동 참여자, 1984년 대선 후보자.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이라고 수식해도 과하지 않았다. 시대에 맞서 싸워왔던 주체적인 여성 린저와 진보적 신학으로 최고 명성을 자랑했던 라너와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이 첫 만남의 장면을 이충범 교수는 소설로 묘사했는데, 그들은 한마디로 서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지는 대화의 장을 펼쳤다. 이 둘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나갔고 사랑으로 이어졌지만 문제는 린저가 또 다른 사제를 더 사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너는 큰 질투심에 휩싸여 린저를 나무라고, 린저의 집 근처를 배회하고, 편지를 보내고 또 보내는 등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이충범 교수는 그가 “위대한 신학자, 사제, 수도사였던 라너는 린저와의 평범하지 않은 관계에서 병적 심리 상태를 보여주었다. 라너는 엄청난 질투로 스스로 큰 고통 속에 빠졌던 듯하다”라고 말한다. 린저는 라너의 집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당신은 나에게 친구일 뿐입니라”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자 헤어지자는 라너의 제안을 무너뜨린 사람은 정작 린저였다. 린저 역시 자신의 삼각관계에서 라너를 절대 놓지 않았던 것이다. 둘의 관계는 라너가 죽기 전까지, 아니 죽은 후에까지 이어져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성과 속,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로지르다

- 루미&샘즈 

- 마저리&그리스도

 

“당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걸어라.” 

누가 한 말일까? 이슬람 성자 루미의 말이다. 그는 이슬람 신학자이자 신비주의 권위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페르시아의 ‘엄친아’였다.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에 아버지가 연구했던 사상의 계승자가 되고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몇 년 후에는 학장이 된다. 결혼도 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던 그가 어느 날 문제의 남자를 만난다. 샘즈다. 춤추는 수피 신비주의자, 제멋대로 행동하는 히피 같은 사람, 아버지뻘 되는 이 샘즈와 만났을 때 루미는 신음 소리를 내며 기절했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둘의 만남은 강렬했다. 엄친아의 탈을 벗어던지고 동성애라는 문제적 사랑에 빠진 것이다. 루미와 샘즈는 3개월 동안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가 되는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방에 틀어박혀 아무 데도 나가지 않은 채 깊은 침묵 속에서 오로지 서로의 눈만 응시하며 몇 시간씩 같이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현경, 2장 <봄의 정원으로 오세요>, 60쪽). 

샘즈와의 만남은 명망 높은 신학자, 학장, 법률가였던 루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다. 샘즈는 그간 루미가 읽었던 책을 모두 우물 속에 던져버리고 그 내용을 온몸으로 살아내도록 한다. 웬 남자와 서로 눈만 바라보며 엑스터시에 빠지는 루미를 주변 사람들은 의혹의 눈으로 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샘즈는 루미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켜버린다. 샘즈를 만난 그는 이제 모든 일상을 통해 신을 표현하려고 한다. 신이 일상과 저 멀리 떨어진 어떤 존재라고 여기는 생각에 반대하고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는 금욕주의를 멀리한다. ‘여신 3부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현경 교수는 이 둘이 갑작스레 만나서 엑스터시를 경험하고 루미가 완전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불꽃 속에서 타 죽지 않고 그것이 내 영혼을 정제하는 용광로가 되도록 견뎌낼 수 있는 힘. 거짓 자아를 다 태워버리고 알몸으로 진정한 자아를 대면하는 힘, 그 과정에서 신을 만나고 신의 현존 속에서 매 순간을 살아가는 힘. 바로 존재를 부수는 목숨 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53쪽). 

만약 루미가 샘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샘즈가 떠난 뒤 수없이 쏟아낸 많은 시를 우리가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상의 사사로움 속에서 신을 신의 존재를 느끼고, 남자와 남자가 만나 강렬한 사랑을 나누었던 그들에게 성과 속, 남과 여를 구분하고, 거기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려는 획일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이들이 이루어낸 종교적 성취에서는 무의미해진다.

 

한 존재와 만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종교인으로는 6장 <성속 합일의 에로스>에 소개된 중세 기독교 신비가 마저리 켐프를 빼놓을 수 없다. 다만 무려 열넷에 달하는 자녀를 출산하고 그녀는 남녀간의 사랑을 멀리고 이성과 나누는 육체관계를 어느 때보다 금기시했던 중세 기독교 배경을 생각해볼 때, 종교인으로서의 자격 요건이 없는 듯 보인다. 더욱이 문맹이었던 그녀가 타인의 손일 빌어 남긴 자서전 《마저리 켐프 서》를 보면 남편과 나누었던 육체관계에서 느꼈던 희열, 자신을 유혹했던 한 남성에 대한 성적 욕망이 아주 솔직하게 적혀 있다.

6장의 저자 성해영 교수는 《마저리 켐프 서》가 중세 절대 약자였던 여성, 학식이 전혀 없는 문맹 여성의 생생한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희귀한 텍스트임을 강조하고, 그녀가 보여주었던 파격적인 종교적 행보가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를 여러 차례 강조한다. 가령 당시 지배적인 영성은 남성 중심이자 지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적 신학이었는데, 켐프를 포함한 여성 신비가는 시각, 청각, 감각적 경험과 정서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었다. 그녀만 해도 기이한 종교 체험, 종교적 열정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음과 고함 등으로 표현했으며, 신과의 사랑을 남녀 간의 결혼에 비유하는 ‘신부 신부주의’라는 독특한 영성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그녀는 자신이 유부녀인 탓에 처녀성을 잃은 것을 슬퍼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흠결이 없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발상은 여성의 육체적 순결을 강요하는 당시 기독교 교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녀가 신을 저 멀리 떨어진 추상적 원리나 초월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 즉 신을 마치 남편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염려하고 보살펴주는 친근한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켐프는 반드시 남성 성직자만 설교해야 한다는 아룬델 칙령에 아랑곳없이 끝없이 자신의 종교 체험에 입각한 가르침을 전하고 다니기도 했다. 더욱이 울음과 고성을 돌발적으로 터뜨렸던 탓에 그녀는 비정상 의혹을 받아 끝없이 마녀재판의 위협에 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켐프의 종교적 예민성은 심리적 차원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되묻게 만든다”(239쪽)고 말하는데, 자신을 심판하려는 주교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비난했던 그녀의 신비 체험, 그것에 바탕을 둔 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가 보인 놀라운 또 하나는 여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어려운 시절에 성지 순례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저리 켐프 서》의 존재만큼이나 켐프의 성지 순례가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재차 삼차 강조한다. 그녀가 일평생 시도한 성지 순례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당대의 통념에서 한참 벗어난 행위로, 여성에게 허락된 공간의 경계를 용감하게 넘어선 행위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그녀의 삶을 이렇게 정의한다. “남과 여, 성과 속, 정통과 이단, 성직자와 평신도 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237쪽). 바로 이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물론 경계에서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호함’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는 편이 간편하고 골치 아프지 않다. 그러나 나와 너, 여기와 저기 등의 차이를 첨예하게 구분해 이쪽과 저쪽의 갈등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서 온갖 경계를 넘나들었던 마저리 켐프와 같은 종교인의 행보야말로, 최근 사회 전 영역에서 계속 요구되는 ‘통합(합일)’의 길을 제시해주었던 사례가 아닐까.

 

유쾌하고 아름다운 합일의 경지

- 문익환&박용길

- 프란체스코&클라라

 

성스러움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심산유곡에서 정좌 자세로 명상하는 사람, 예배당 갇혀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루미, 카를 라너, 마저리가 보여주듯이 신은 초월적인 공간 저 너머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말하자면 신은 인간의 역사 속에 섭리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 속에서 신의 존재를 찾고, 신의 섭리 실천한 한국의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문익환이다. 

문익환을 어렴풋이 아는 사람들은 북한에 다녀온 사회 운동가,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 정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문익환은 사회운동가이기 전에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던 목사인 동시에 성서학자였다. 또한 그가 보였던 정치적 행보들, 가령 북한을 방문해 김일석 주석과 만났던 것은 철저히 그의 신앙관에 기초한 것이었다. 1장 <꿈은 하늘에서 내려온다>에서 김형수 시인은 “문익환은 한 생명체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은 문명이나 사상, 체제나 제도 따위가 아니라 하느님이 내려준 질서이자 생명 고유의 권한으로 만들어진다고 이해했다. 이 같은 경향은 문익환의 삶에서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낸 정신적 요체로서 그 실천 의지가 한국 현대사를 통해 눈부시게 발현되고 증명된 ‘살아 있는 종교성’의 예가 아닐까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삶은 금욕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 유학을 갔다가 박용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호송되는 차량에서 시인 고은에서 “면회 온 박용길하고 입 맞췄다”라고 자랑을 하며 그에게도 빨리 결혼하라고 한다. 그에게 박용길과의 사랑은 자제해야 할 것도, 감추어야 할 것도 아닌 대단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다. 이들의 사랑은 문익환이 보여주었던 종교적, 정치적 행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패결핵 환자였던 문익환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께 “그와 6개월만 살다 죽어도 좋아요”라고 선언했던 박용길은 그 자신 역시 3.1독립선언문을 쓴 투사였다. 심지어 문익환이 방북을 포기하려 했을 때 “남자가 간다고 했으면 가는 거지, 이제 와서 중단이 뭐예요. 나 이제 당신 못 믿어”(45쪽)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문익환을 북한으로 보낸다. 문익환이야말로 삼팔선, 즉 눈에 보이는 ‘경계’를 뛰어넘은 인물이 된 셈인데,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서로의 종교철학과 신앙관이 완전히 일치했던 박용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형수는 “(문익환은) 어떤 권력도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 하느님의 것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민중의 삶의 단위를 인위적으로 분할하고 단절시키는 분단 통치도 체제가 하느님의 것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행위에 속한다. 그래서 통일 문제를 논할 때마다 문익환이 남북 양 체제 앞에서 애오라지 민(民)의 입장으로 서 있고자 했던 것이다”(28쪽)라고 말한다. 박용길은 문익환 사후 그가 생전에 갔던 모든 곳에 갔고, 그가 살아 있다면 갔을 법한 곳에 갔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시인 고은은 “문익환이 박용길이고 박용길이 문익환이다”(46쪽)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완전히 합일된 인생을 살았던 셈이다. 

 

신앙에 기초해 지극한 합일을 이룬 종교인을 꼽으라면 프란체스코와 클라라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프란체스코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성자, 동물과 식물은 물론 물과 불 같은 자연계까지 사랑한 성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클라라와의 사랑 이야기도 이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이들이야말로 사람들이 종교인에게 흔히 기대하는 종교적 사랑을 가장 완전하게 실천한 성인이기 때문이다. 

오강남 교수는 4장 <무소유함으로 전부를 소유한 사랑>에서 프란체스코와 클라라의 초기 삶, 그들의 종교 사상과 행보, 둘 사이의 사랑의 성격 등을 조명한다. 그에 따르면 프란체스코가 분명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평생 단벌로 살아낸 가난한 수도사가 된 것은 맞지만 음울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한다(135쪽). 보통 사람이 얻는 데서 즐거움을 얻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가 현대인에게 아직도 큰 울림을 주는 성자로 추앙받는 것은 계급과 명예가 중시되던 중세에 사람들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치거나 가치가 있다 없다로 차별하지 않고 보통 사람을 모두 왕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오강남 교수는 불과 물, 죽음까지 형제와 자매라고 칭하는 그에 대해 “그는 자연계와의 완전한 동질성을 느꼈던 셈이다. 화엄 불교에서 말하는 사사무애事事無?(세상의 모든 일 사이에 걸림이 없다)라고 할까”라고 말한다. 

이런 그에게도 격정의 순간은 있었다. 바로 재능과 외모를 겸비한 클라라와의 만남이었다. 물론 이들은 출가한 뒤 서로 거의 만나는 일 없이 일평생 철저한 금욕을 실천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살았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말년에 이르러서는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이런 완고함이 수그러들어 성 다미아노 수녀원으로 들어가 클라라의 간호를 받기도 한다. 또한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는 클라라가 자기가 본 환상을 동료 수녀에게 들려주는데, 클라라가 프란체스코의 가슴을 애무하는 환상이었다. 자신의 가슴을 열어 잡고 마시라는 프란체스코의 말에 클라라의 그의 가슴을 빨고, 다 마시고 났을 때 여전히 젖꼭지가 자기 입술 사이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둘 사이에 흘렀을 에로티시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사회학자에 의하면 그들의 만남은 “사랑에 빠진 상태”의 특성을 고스란히 다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도 성인이기는 하지만 분명 다른 남자처럼 여인의 매력이나 성적 욕구를 경험했으리라는 것이다. 프란체스코가 성적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 한겨울 눈 속에서 뒹굴기까지 했다는 기록도 있다(164쪽). 이쯤 되니 역시 궁금하기는 하다. 그들의 사랑은 ‘신에게 승화된 혹은 전이된’ 사랑이기는 해도, 이런 사랑이 가능했던 것은 아무래도 남과 여로서의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성적 끌림의 요소가 필수라는 주장이 있듯이 아름다운 여인을 사모하는 에로스적 동경이 우정애로 승화되고, 그 우정애가 아버지와 자식의 사랑, 즉 아가페 사랑의 경지로 승화돼 완전한 정신적 합일을 이루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4장 <무소유함으로 전부를 소유한 사랑>은 이런 추측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100명이 연애하면 100가지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처럼, 종교인의 연애 역시 다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들의 연애를 하나로 묶는 말이 있다면 성과 속,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 꿈과 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사랑일 것이다. 이쪽 혹은 저쪽의 영역에 완전히 고착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 때의 역동성, 합일성이 종교인의 연애를 하나로 묶는 동시에 보통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는 힘일 것이다. 



정치가의 연애 

 

 

이제 나의 연인은 권력이다: 나폴레옹 

“내 달콤한 사랑, 1,000번의 키스를 보냅니다. 하지만 내게는 키스를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 왜냐하면 그것은 내 피에 불을 지피니까요.”

이 뜨거운 연애편지를 쓴 주인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나의 연인은 권력이다”라고 선언한다. 누가 이토록 사랑에 목메던 순정남을 잔혹한 독재자로 만들었을까? 기승전애(起承轉愛)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단면을 정복자 나폴레옹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황제에 오른 독재자와 혁명 이념을 전파한 개혁가라는 상반된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폴레옹의 삶에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의 연인 조세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개인보다 공동체나 국가를 우선하라고 강요받는 우리의 상황에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치가의 연애란 금기시되거나 스캔들로만 여기기 쉽지만 그들에게도 사랑의 감정은 중요하고 때로는 사랑의 힘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물로 그 결과가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세 번째 이야기는 정말로 세상을 바꾼 사랑 이야기들이다. 조국과 연인을 똑같이 사랑해 눈부신 업적을 남긴 경우에서부터 연인과의 애증 관계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흑역사까지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바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안목을 제고해보자.

원종우는 <이제 나의 연인은 권력이다>에서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고 치명적인 그들의 사랑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세계사적 격동기를 생생하게 그려준다.

 

조국을 사랑하듯 서로를 사랑하다: 쑹칭링 vs 에비타

“집에서 도망해 그를 위해 일한 것은 로맨틱한 여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잘 생각한 일이지요. 나는 중국을 구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말대로 당신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저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죽을 때까지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두 여인의 단호한 사랑 고백은 로맨틱하면서도 결의에 넘친다. 두 사람에게 모두 연인과 조국은 동등한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각각 쑨원과 후안 페론의 부인으로 불리기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두 여인은 남편에 대한 열렬한 사랑만큼이나 조국과 국민을 사랑했기에 그들의 삶과 사랑이 여전히 향기롭다.

이양자는 <조국을 사랑하듯 서로를 사랑하다>에서 쑹칭링과 쑨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중국 근대사를 좌우한 쑹 자매의 내력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강혁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요>에서 뮤지컬로 잘 알려진 에비타와 후안 페론의 삶을 되돌아보는데, 포퓰리즘이 이슈인 요즘 진정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짐이 곧 국가다: 루이 14세 vs 헨리 8세

“신의 은혜에 보답하라, 신에 대한 의무를 잊지 말라, 백성들이 항상 신을 경배하게 하라.”

“이후 나의 마음을 오직 그대에게 바칠 것이며, 그동안 그대에게 정부가 되어달라고 요구한 것을 사과하오.”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겼던 두 명의 절대 군주가 그들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신 앞에 나아가야만 했다는 사실은 몹시 흥미롭다. 그런데 왕권신수설을 상징하는 두 왕의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점에서 비극이지만 현재 프랑스와 영국의 기초가 놓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적인 사건이다.

김응종은 <태양왕의 비밀 결혼>에서 루이 14세와 마담 맹트농의 알려지지 않은 결혼을 다루고 있는데, 정략결혼과 방탕한 연애 편력을 가진 왕이 신 앞에 온전한 결혼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반면에 박경옥은 <사랑의 열정마저도 정치적 한 수>에서 헨리 8세가 앤 불린가 결혼하기 위해 교황에 대한 독실한 신심을 버리고 종교 개혁을 이루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제국의 마지막 날: 고종 vs 히틀러

“에밀리도 싫지 않았던 건지, 외신 보도에 따르면 고종과 에밀리의 사랑은 그해 연말에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고종 황제의 화려한 국제결혼은 세계적 뉴스였고, 오스트리아부터 미국까지 외신을 탔다.”

“지도자는 블론디라는 개로부터 커다란 행복을 맛본다. 진정한 반려가 되었다. 언제나 곁에 붙어 있는 생명체가 적어도 하나쯤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고종에게는 우리도 모르는 미국인 황후가 있었다? 한국판 <왕과 나>이야기가 당시 서양에 가십으로 널리 퍼졌는데,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씁쓸하기만 하다. 한동안 ‘조선의 국모’로 각광을 받았던 명성황후도 다시 살펴보면 그 씁쓸함을 더한다. 망국의 군주와 왕후의 이야기가 아름다울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제국의 멸망과 사랑 이야기가 있다. 제국의 마지막 날 결혼식을 올리고 동반 자살하는 비극적인 정사는 감동을 주기보다는 당혹감을 안겨준다. ‘정치를 빼면 사생활도 내면도 공허한 인물’인 히틀러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김태권은 <개혁 군주와 정치적 파트너>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유언 같은 결혼식>에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삶과 사랑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제국의 마지막 날이 장엄한 비극이 되지 못하고 어이없는 소극이 되어버린 것은 대한제국이나 제3제국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역사를 곰곰이 되짚어야만 한다.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일곱 가지 정치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를 향한 진지한 질문이다. 이들의 삶과 사랑을 재미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렸다. 날렵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의 힘을 느껴보자.




과학자의 연애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시리즈 4권. 숨겨진 우주의 법칙을 밝힐 수 있어도 눈앞에 있는 연인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던 과학자의 연애를 통해 그들의 삶과 업적을 다루고 있다. 과학사에 길이 남은 천재도 풀지 못한 사랑의 신비가 바꾼 과학의 역사를 살펴본다. 박민아, 박병철, 이은희, 이인식, 최세민, 홍승효는 인류의 삶을 바꾼 과학적 성과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과학에 문외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과학 교양서다.

 

| 출판사 리뷰 |

 

과학은 연애와 양립 가능한가

과학은 이성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학문이고, 엄정함과 정밀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흔히 감정은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애 경험이 인문학에서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고 예술에서는 창작의 원천이 되는 것에 비해 과학에서는 장애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과학자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인간이다. 특히 어떤 연애는 단순히 삶의 의욕을 고취하거나 상대방의 재능을 일깨우는 것을 넘어 학문적인 동반자로서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기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는 그들의 사랑’ 네 번째 이야기인 과학자의 연애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숨은 공로자 밀레바를 비롯해, 완벽한 파트너십을 보여준 퀴리 부부, 스승과 제자인 동시에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서 선택의 계기가 된 페르미 부부, 서로는 물론 자연과 하나된 제인 구달과 휴고 반 라윅, 금지된 사랑이었기에 창의력에 제한이 없었던 앨런 튜링, 그리고 문학과 과학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상대방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던 에밀리와 볼테르까지 흥미진진한 과학자의 연애에 빠져보자.

 

최악의 반려자와 최고의 파트너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너무 커서 그랬는지, 아니면 낡은 것에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평생 동안 여자관계에서도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을 보면, 그에게는 ‘초지일관(初志一貫)’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 더 중요한 덕목이었던 것 같다.”

“폴로늄과 라듐을 추출해 원소로 확정하는 일은 꼼꼼하면서 결단력이 있는 마리 퀴리가, 방사선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느리지만 신중한 피에르 퀴리가 맡기로 했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그래서 과학 역사가들은 1905년을 ‘기적의 해’라 부른다. 오직 연구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특허청 직원으로 일하는 틈틈이 논문을 준비한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중요한 업적을 동시에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로 취리히 대학교 동창이었던 밀레바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 요즘의 시각이다. 그러나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아인슈타인에게 밀레바와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그가 과학자로서는 훌륭했을지 몰라도 반려자로서는 최악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남녀에 대한 선입견을 넘어 각자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맡아 라듐과 방사선을 연구한 그들은 서로를 세워주는 동반자였다. 노벨상위원회가 피에르 퀴리에게만 노벨상을 수여하려고 하자 마리 퀴리의 역할을 강조해 공동 수상했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서로를 존중했다.

최악의 반려자와 최고의 파트너의 상반된 이야기지만 그들의 사랑은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이 책에는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도 하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운 사랑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의 의리를 지켜야 하는 교수의 의무, 가족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의 저울질…….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서 페르미는 가족을 선택했다.”

“사람의 왕래가 드문, 환상적인 자연 풍광을 지닌 곰베는 한창 서로에게 빠져 있는 신혼부부가 머물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때로는 인생 최고의 정점에 있을 때 자신이 아닌 가족의 일로 위기를 겪을 때가 있다. 엔리코 페르미는 이탈리아에서 존경받는 과학자였지만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에게 그의 아내는 단지 배척해야 할 유대인일 뿐이었다. 인생의 기로에서 페르미가 내린 결정은 결국 미국이 세계 최초로 원자 폭탄을 만들게 하고 전쟁의 승부를 갈랐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페르미의 저술에 큰 도움을 준 라우라 페르미에 대한 사랑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한편 동료로서 쌓은 유대감이 사랑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다. 곰베에서 야생 동물을 관찰한 결과를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사진과 영상물로 보내야 했던 제인 구달에게 휴고 반 라윅은 믿음직한 동료이자 서서히 눈뜨게 된 사랑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함께 일하는 두 연인의 모습이 늘 그림 같은 풍경만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사랑이 영장류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엎는 새로운 발견에 밑거름이 된 것은 확실하다. 이렇듯 서로의 부족함을 채운 사랑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세상의 이목을 넘어선 연인

“튜링은 기계가 생각한다고 믿는다. 튜링은 남자와 동침한다. 고로 기계는 생각하지 않는다.”

“에밀리가 없었다면, 볼테르는 당대에는 이름을 날렸으나 곧 잊히는 작가로 남았을 것이다. 볼테르가 없었다면, 에밀리는 프랑스 대혁명 직전 18세기를 살았던 섹시한 정부(情婦) 중 한 명으로서 기껏해야 《18세기 대혁명 이전 프랑스 귀족의 삶》 같은 책에 몇 줄 언급되는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흔히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금지된 사랑도 있다. 요즘은 동성애에 대해 차별을 금지하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지만 앨런 튜링이 살았던 당시만 해도 엄연한 위법 행위였다.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 영국을 독일의 침공으로부터 지키고, 튜링 기계와 튜링 테스트의 개념을 고안해 컴퓨터와 인공 지능의 기초를 닦은 그였지만 그의 사랑은 범죄였고, 결국 그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반면에 에밀리와 볼테르는 불륜이었지만 공인된 연인이었다. 요즘은 윤리관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18세기 유럽, 특히 프랑스 귀족 사회의 한 단면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단순히 서로의 욕정을 채우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여자라는 제약으로 과학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에밀리에게 연구의 기회를 주고, 볼테르로 하여금 아직 꽃피지 못한 문학적 재능을 만개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이목으로는 모진 질책을 받기 쉬운 연인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이 과학의 역사를 바꾼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과학자의 연애》는 세상을 바꾼 사랑을 다루고 있다. 때론 아름답고, 때론 치졸하고, 때론 힘겨웠던 이들의 사랑을 구태여 살펴보는 것은, 어떠한 사랑이든지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과학사에 남긴 큰 족적을 따라가기 위함이다. 보통 사람의 연애와는 뭔가 다른 ‘한 끗’을 지닌 사랑을 이 책에서 만나보자. 



철학자의 연애


음악가의연애 

 

음악가들의 연애사를 중심으로 그들의 음악적 성취를 들여다보는 인문 교양서.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제5권.

2015년 11월 초, 참혹한 파리 테러 현장에 존 레넌의 <이매진>이 울려 퍼졌다. 자전거로 바퀴 달린 피아노를 끌고 온 음악가 마르텔로가 이 곡을 연주했고, 이 사실은 전 세계에 전해져 많은 사람을 숙연하게 했다. <이매진>은 존 레넌이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 메시지를 담아 발표한 곡이지만, 사실 그와 오노 요코를 맺어준 사랑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곡이다. 개인사가 음악사는 물론 세계사와 맞물린 것이다. 이 책에 그러한 이야기 다섯 개가 실려 있다. 

인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오가는 한국의 대표적 음악평론가 임진모,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주인공의 모델인 지휘자 서희태, 재즈에 순정을 바친 남자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저명한 대중음악 자료 수집가 최규성, 클래식 애호가로서 많은 클래식 다큐를 만든 전 MBC PD 이채훈이 악보에는 없는 음악가들의 언어를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무심코 흥얼거렸던 선율 속에 숨은 진짜 이야기 접하게 될 것이며, 그 이야기가 어떻게 각 음악계를 발전시켰는지도 엿볼 수 있다.

 

| 출판사 리뷰 |

사랑의 마음을 담아 한 개인에게 바쳐진 음악이 있다. 심지어 어떤 앨범은 한 여성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적어도 그 곡들이 탄생한 순간만큼은 극히 개인적인 사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그 음악이 전해진 뒤에는 해당 장르의 음악사를 뒤흔들고 바꾸어버린 사례가 많다. 록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 에릭 클랩턴, 근대적 피아노 기술을 개척하고 개성적인 소곡과 가곡을 남긴 슈만 부부, 록과 재즈를 접목해 재즈의 생명을 연장시킨 마일스 데이비스, 발군의 재능과 엄격한 자기 관리로 한국 팝의 대모가 된 패티김, 예민한 감성과 개성으로 독일 고전주의 음악의 정수를 표현한 모차르트의 음악이 그러한 예다.

 

궁극의 찌질함이 낳은 위대한 록 뮤지션-에릭 클랩턴

- “나는 이곡이 자랑스럽다. 들을수록 좋다. 내가 한 것 같지가 않다.”

 

에릭 클랩턴이 누구인가. 기타의 신이다. 록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며, 1970년대 최고 존엄의 록 클래식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에 <레일라>를 27위에 올린 사람이다. 게다 전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은 찬란한 명작 <원더풀 투나잇>의 창작자이기도 하다. 어떤 삶을 살면 ‘신, 존엄, 명작의 창작자’가 될 수 있었을까. 

뜻밖에도 그의 대표 곡들은 술, 마약, 한 여자를 향한 집착과 광기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록 분야에서 특급 수작으로 고평되는 <레일라>가 대표적인 곡이다. 신이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이 그는 이 곡에서 불을 토해내는 듯한 강렬한 블루스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곡의 진행도 진부한 ‘3분짜리 팝송’이 아니라 2악장 형식을 취한 7분짜리 서사시다(14쪽). 이러한 예술적 완성도 말고도 놀라운 점은 <레일라>가 수록된 앨범 전체가 한 여자를 향한 열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여자 패티 보이드는 절친 조지 해리슨의 아내였고, 그녀는 좀처럼 에릭의 구애에도 흔들리지는 않았으며, 더욱 불행히도 에릭은 친구의 아내 넘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패티를 얻지 못한 에릭은 마약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자연히 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치료도 거부한 채 폭음과 아비규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이라 칭해지기에 삶의 민낯은 찬란하기는커녕 찌질하기만 했다. 그러나 사랑은 신도 찌질하게 만드는 동시에 더욱 위대한 신으로 만들기도 하는 법이었다. 마침내 패티가 에릭의 품으로 왔을 때 탄생한 곡이 바로 음악 문외한도 그 선율을 흥얼거리게 만든 <원더풀 투나잇>이다. “마치 살인 혹은 자살을 목격하는 것 같은”(16쪽, 데이브 마시) 느낌의 <레일라>에서 “당신 오늘 밤 너무 멋져!”를 반복하는 <원더풀 투나잇>이 탄생하기까지 근10 년이 걸렸다. 

그렇게 왕자님과 공주님이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10년도 가지 못했다. 사실 에릭의 여성 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패티와의 관계도 결국 그의 외도로 끝을 맺는다. 눈여겨볼 점은 외도로 만난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잃은 에릭이 슬픔에 잠겨 만든 곡이 그에게 또 한 번의 리즈 시절을 가져다준 <천국에서의 눈물>이라는 것이다. 1장 <너를 가질 수 없다면>을 쓴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말처럼 예술가의 이러한 사적인 이야기가 계속 회자되는 까닭은 그것이 한때의 에피소드로 그치지 않고 명작을 만들어낸 창작의 원천과 결부되기 때문일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마일스 데이비스

- “죽여줬다. 그 미친 연주가 내 속에 확 불을 질렀다.”

 

유명한 여성 편력자로서 재즈계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있다. 그는 숱한 염문을 뿌렸고 많은 여자가 그의 앨범 재킷 앞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에릭이 특정 여성에게 집착하며 광기에 시달렸다면 마일스는 한 발 더 나아가 여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는 3장 <영원한 갈구의 대상, 재즈 그리고 여자>에서 마일스의 이러한 지독한 여성 편력과 폭력성을 ‘마일스 콤플렉스’라 명명하며 평탄치 않았던 모친과의 관계, 그에서 비롯된 모성애 결핍이라고 진단

하는데, 냉정히 말해 숱한 여성에게 매달리면서도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하다니, 이보다 더 못난 남자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바로 '마일스 스타일'이라 표현되는 그만의 음악 때문이다. 많은 곡이 뭇 여성에게 바쳐졌다. 특히 하몬 뮤트 트럼펫을 다루는 마일스만의 스타일이 온전히 완성되었음을 확인시켜주었던 <프랜댄스>는 뮤지컬 배우 프랜시스 테일러에게 바치는 곡으로서, 그녀는 마일스가 헤로인 중독에서 벗어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프랜시스는 마일스에게 많은 음악적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그녀의 공연을 본 마일스는 뮤지컬을 연주곡으로 만드는 등의 큰 영향을 받았다. 마일스 데이비스 앨범의 앞면을 장식했던 많은 여성 중 프랜시스가 세 앨범에나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폭력과 의처증과 여성 편력은 첫 번째 정식 배우자였던 프랜시스와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았고, 이는 재즈의 또 다른 장을 여는 데에 영감을 준 매브리를 만나는 계기가 됐다. 스물세 살이었던 매브리는 지미 헨드릭스 등의 음악을 소개해주면서 청년 문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녀는 마일스의 패션도 정장이 아닌 가죽점퍼, 진, 높은 굽의 구두로 바꾸어놓았는데, 그것은 음악적 변신의 가시화였다(121쪽). 재즈에 비트와 전기 사운드를 가미해 좀 더 록에 가깝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마일스가 재즈를 죽인다”라는 세평(105쪽)을 낳기도 했지만 오히려 재즈의 생명을 연장시킨 활로 역할을 했다는 것이 황덕호의 판단이다.

그 후로도 마일스의 여성은 마거릿 에스크리지, 재키 배틀, 시슬리 타이슨, 조 겔바드 등으로 이어진다. 한 가지 특징은기 록에 남을 만큼의 굵직한 이성 관계는 모두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과도한 코카인과 알코올 복용, 폭력, 성적 문란함 속에서 여성은 그에게 영감과 모성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만약 재즈라는 음악이 없었다면 그는 방탕아에 불과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마일스를 논하는 이유는, 사회적 약자였던 흑인으로서 음악만을 정치이자 권력의 통로로 삼은 저력 때문이며, 여성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보았던 빌리 엑스타인 공연을 이렇게 회상했다. “씨발, 죽여줬다. 그 미친 연주가 내속에 확 불을 질렀다.” 이러한 기억이 파란만장했던 그의 인생을 이끈 셈이다. 

 

순정으로 낭만주의 시대를 물들이다 - 슈만 & 클라라 & 브람스 

- “나의 사랑이 밤보다 깊고 천년보다 더 길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음악가의 삶은 이성 편력과 성적 문란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까?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음악사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록되는 이야기가 클래식사에 있다. 바로 슈만과 클라라, 클라라와 브람스의 이야기로, 2장 <낭만주의 시대를 음악으로 채운 두 개의 러브 스토리>에서 서희태 지휘자는 다음과 같이 그들의 이야기를 요약한다. 

 

“장래가 불투명한 남자와 아홉 살 연하의 유명 피아니스트가 사랑에 빠진다. 여자의 아버지는 극심한 반대를 하고 연인은 아버지와 법정 소송까지 벌인 끝에 결혼을 한다. 남자는 음악가로 대성하지만 정신병에 시달린다. 남자의 제자인 또 다른 음악가는 스승의 아내를 연모하게 된다. 스승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제자는 스승의 아내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하지만 제자는 평생을 순애보로 그녀를 위한 헌신의 삶을 산다. 훗날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마치 그녀를 따르듯이 제자 또한 세상을 떠난다”(57쪽).

 

이 장에서 주목할 만한 관점은 클라라를 슈만의 아내, 브람스가 흠모한 대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엄연한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이다. 저자 서희태는 클라라를 일컬어 “가장 감성이 풍요롭고 명성이 높은 피아니스트”, “리스트에 견줄 만한 명연주자”라는 평가를 소개하는 동시에 “연주자 겸 작곡가로서의 활동은 여성 음악가에 대한 편견을 깼을 뿐 아니라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으로 만들었다”고도 설명한다. 한 사람의 독립된 음악가로서의 클라라를 다루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클라라의 음악적 재능이 있었기에 슈만과 브람스도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천재 소녀 피아니스트로 절정의 명성을 얻고 있던 클라라는 연주 여행에서 무명의 작곡가 슈만의 곡을 연주하며 그를 응원했고, 슈만 사후 피아니스트로 재기한 클라라는 슈만의 음악뿐 아니라 브람스의 곡까지 연주함으로써 무명의 작곡가 브람스의 곡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뿐인가. 슈만은 클라라에게 피아노 소품 열세 곡으로 구성된 모음곡 〈어린이의 정경〉을 선물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결혼한 1840년에만 평생 동안 작곡한 가곡의 절반 이상인 130여 곡을 작곡함으로써 그해를 ‘가곡의 해’로 만들었고, 브람스 역시 슈만의 병으로 상심한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피아노 3중주 제1번 B장조> <슈만을 위한 변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클라라를 중심으로 낭만주의 시대 두 거장의 음악적 역량이 성장한 것이다. 세 사람이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을 실현할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피와 살의 인간 - 모차르트

“저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 역시 온 마음으로 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여자를 바랄 수 있을까요?”

 

낭만주의 시대보다 앞선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모차르트다. 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로 추앙받는 모차르트의 결혼은 평탄하게 시작되지 못했다. 가난한 악보 필경사의 딸 콘스탄체를 모차르트의 아버지와 누나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황제 요제프 2세조차 왜 돈 많은 여자랑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상남자 모차르트는 “저의 재능으로 얼마든지 돈을 벌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요.”라고 답한다(194쪽).

5장 <음악의 힘으로 죽음의 어둠을 이겨나가리>에서 이채훈은 사실 콘스탄체 가문은 모차르트 아버지의 생각만큼 그렇게 형편없지 않았다고 설명한다(187쪽). 콘스탄체 자매들은 제대로 된 종교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음악과 노래 훈련을 받은 유명한 성악가였다. 실제로 모차르트와 콘스탄체의 관계는 음악적 교감에 바탕을 두었다. 그는 콘스탄체의 독려에 힘입어 <환상곡과 푸가 C장조>를 작곡했고, 가족이 결혼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영감을 얻어 오페라 <후궁에서 구출하기>를 완성했다. 결혼 3주 전 병으로 앓아누운 콘스탄체를 위해 치유와 결혼을 기리는 미사곡 <대미사 C단조>를 작곡해 콘스탄체가 소프라노 파트를 노래하기도 했다. 결혼 뒤에는 결혼의 일상을 담은 <바이올린 소나타 C장조>를 작곡했고, 모차르트 사후 29세의 젊은 콘스탄체는 그의 오페라 작품에 직접 출연했을뿐더러 남편의 악보를 출판해 유럽 음악 팬들에게 널리 알렸다. 모차르트의 걸작들을 후대에 전해준 첫 공로는 콘스탄체에게 돌려야 한다는 것이 저자 이채훈의 생각이다. 

이 글은 후대에 콘스탄체가 사치스럽고 계획성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으로 그려진 까닭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의 인식에서 비롯됐을 뿐이라고 설명하며, 연인인 동시에 음악적 동지로서 나눈 두 사람의 교감에 집중하고 있다. 이채훈의 글이 돋보이는 점은 흔히 천재라고 하면 일탈, 이성 편력, 성적 문란함, 괴팍함 혹은 보기 드문 순애보를 기대하지만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조차 한 여인을 사랑했으며, 때로 일탈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자신의 재능 하나로 가정을 책임지려 했던 한 사람의 남자로 묘사한 점 아닐까. QR 코드로 본문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세상의 편견에 엄격한 자기 관리로 극복한- 패티김

- “고음을 완벽히 부를 때 떠나고 싶었습니다”

 

1970년대 여성으로는 드물게 167센티미터의 늘씬한 신장, 서구적인 몸매와 얼굴, 시원한 목소리,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 반세기 넘도록 한국 팝의 대모로 군림한 슈퍼스타(140쪽). 바로 패티김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길옥윤과의 열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 외국인과의 재혼 등으로 패티김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모든 스캔들의 가해자로만 인식됐다. 이에 4장 <짧은 사랑과 아름다운 이별>에서 최규성은 패티김의 음악적 역량, 그녀가 길옥윤과 이루어낸 음악적 컬래버레이션에 집중한다.

길옥윤이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패티김을 붙잡기 위해 만들었던 <4월이 가면>이라는 곡이 두 사람이 이룬 음악적 성취의 시작이었고,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결혼 기념 음반 발매, 애틋한 부정을 담은 노래 <1990년>을 비롯 〈사랑의 세레나데〉 〈사랑은 영원히〉 〈그대 없이는 못살아〉 〈9월의 노래〉 등 많은 사랑 노래로 히트 퍼레이드를 펼치며 한국 대중가요의 획을 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비 같은 이미지였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길옥윤과 달리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했던 패티김은 결혼 3년 만에 결별했고 세상은 화려하고 도도해 보이는 패티김에게 책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음악적 교류는 결별 뒤에도 이어졌다. 4회 도쿄 국제가요제 출전해 길옥윤이 만든 <사랑은 영원히>로 3위에 입상한 것은 물론 1994년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길옥윤의 고별 무대에서도 그가 만든 <사랑은 영원히>를 열창함으로써 많은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저자 최규성은 길옥윤이 작곡가로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보컬리스트를 만났기 때문이며, 패티김이 국제적인 가수에서 한국 팝의 대모로까지 칭송받게 된 것은 그녀의 가창력과 역량을 정확하게 이해해 그녀에게 최적화된 사랑 노래를 만들어준 작곡가 길옥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170쪽). 실제로 길옥윤의 창작한 사랑 노래의 대부분이 패티김과의 연애 시절에 탄생했으며, 2013년 10월 가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며 밝혔던 패티김의 소회에서도 길옥윤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지금도 1974년에 발표한 <사랑은 영원히>라는 곡의 고음을 원키로 부르고 있어요. 고음을 완벽히 부를 수 있을 때 떠나고 싶었습니다”(169쪽). 현실 부부 관계는 짧았지만 그들은 음악적으로는 환상적인 커플이었고, 이 커플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 지금도 한국 팝은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목차

종교인의 연애 

 

1 꿈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 문익환 & 박용길 _ 김형수

2 봄의 정원으로 오세요 / 루미 & 샘즈 _ 현경

3 익명의 사랑 / 카를 라너 & 루이제 린저 _ 이충범

4 무소유함으로 전부를 소유한 사랑 / 프란체스코 & 클라라 _ 오강남

5 사랑과 이별은 하나이며 나와 당신 또한 하나라 / 일엽 & 백성욱 _ 유진월

6 성속 합일의 에로스 / 마저리 & 그리스도 _ 성해영


정치가의 연애 

 

1장 이제 나의 연인은 권력이다

나폴레옹 & 조제핀 _ 원종우

 

2장 조국을 사랑하듯 서로를 사랑하다

쑹칭링 & 쑨원 _ 이양자

 

3장 태양왕의 비밀 결혼

루이 14세 & 마담 맹트농 _ 김응종

 

4장 개혁 군주와 정치적 파트너

고종 & 명성황후 _ 김태권

 

5장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요

에비타 & 후안 페론 _ 이강혁

 

6장 사랑의 열정마저도 정치적 한 수

헨리 8세 & 앤 불린 _ 박경옥

 

7장 유언 같은 결혼식

히틀러 & 에바 브라운 _ 김태권



과학자의 연애 

 

1장 사랑은 상대적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밀레바 마리치 _ 박병철

 

2장 프랑스와 폴란드가 사랑한 과학자

마리 퀴리 & 피에르 퀴리 _ 박민아

 

3장 아내에게 자서전을 헌사받다

엔리코 페르미 & 라우라 페르미 _ 이은희

 

4장 타잔이 아닌 제인의 남자 친구

제인 구달 & 휴고 반 라윅 _ 홍승효

 

5장 컴퓨터와 사과를 남겨두고 떠난 천재

앨런 튜링 & 남자들 _ 이인식

 

6장 과학과 역사에 혁명의 씨앗을 뿌린 연인

 

에밀리 & 볼테르 _ 최세민



철학자의 연애


음악가의연애
 

1 내가 널 가질 수 없다면 / 에릭 클랩턴 & 패티 보이드 _ 임진모

2 낭만주의 시대를 음악으로 채운 두 개의 러브 스토리 / 슈만 & 클라라 & 브람스 _ 서희태

3 영원한 갈구의 대상, 재즈 그리고 사랑 / 마일스 데이비스 & 여자들 _ 황덕호

4 짧은 사랑과 아름다운 이별 / 패티김 & 길옥윤 _ 최규성

 

5 음악의 힘으로 죽음의 어둠을 이겨나가리 / 모차르트 & 콘스탄체 _ 이채훈

 

도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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