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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깊이 읽기

삼국유사 깊이 읽기 우리 고전으로 벌이는 잔치 열 마당

  • 신종원
  • |
  • 주류성
  • |
  • 2019-07-25 출간
  • |
  • 372페이지
  • |
  • 176 X 225 X 21 mm /623g
  • |
  • ISBN 978896246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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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이 책은 2017년에 정년을 맞은 신종원 교수가 오랜 기간 연구한 업적의 일부를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낸 노작이다. 지은이는 한국고대사 전공으로서 주로 신라사에 힘을 기울였는데 그 분야 사료의 상당 부분이 『삼국유사』에 있는 만큼 신라 관련 조목은 물론 고조선조나 백제의 무왕조도 심도 있는 연구를 한 바 있다. 지은이는『신라초기불교사연구』라는 첫 저서를 공간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책에 실린 내용은 불교전래라든가 신라불교사에 대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볼 때 지은이는 계속 관심 분야를 넓혀왔음을 알게 되었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오면 주요 인물과 그들이 행위에 대해서는 문자/글이 남아 있다. 역사시대 연구의 본령은 문헌고증에서 시작하여 문헌연구로 끝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문헌의 가치를 가늠하고 취사선택하는 과정은 논리가 기본이 되어야 하고, 이를 방증하는 2차 자료가 절실히 요구된다. 『삼국유사 깊이 읽기』를 읽다보면 지은이는 의외로 관심이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그것도 보통 정도가 아님에 놀란다. ‘면죄부’로 잘 쓰는 말 “사료가 영성한 고대사 연구‘라지만 그럴수록 연구자의 상상이나 어림짐작이 통용되는 게 결코 아님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깨닫게 된다. 고대사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어차피 그 주변/배경도 잘 알아야 비로소 ’사료가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연구나 역주가 어떠했기에 지은이의 관심과 오지랖이 미덕이 되는 것일까? 『삼국유사』가 언급하고 있는 분야는 역사는 물론, 문학, 미술사, 불교학, 민속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한 마디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종합보고서라고 해야 될 판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우리네 삶의 방식과 놀이, 순례방식을 눈여겨봄으로써 천 년 전의 광경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필요에 따라 적절히 구사하지 않으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기왕의 연구서는 자신의 알량한 관심에 따라 그라운드 한 켠에서 서곡(序曲)만 부르다가 그친 듯한 책이 없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의 제1 고전에 대한 연구방법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십여 년 전에 지은이는 『삼국유사 새로 읽기(1)』라는 책 서문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사학계에서 이 책을 다루는 방식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사료로 인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설화로 치부하여 외면했다. (건너뜀) 어문학 쪽에서는 고대의 시가(詩歌)와 더불어 문자로 정착된 문학이라는 관점을 중시한 나머지 역시 원전이 가지는 절반의 가치 즉 역사책이 말해주는 사건의 배경을 놓치기 일쑤였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넓은 안목과 예리한 분석을 거친 다음 사료해석에 몰두한다면 비로소 바람직한 번역이 나올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 장점은 내용에 꼭 필요한 사진을 실은 것. 흔히 조목과 관련되는 지역이나 사찰 또는 배경 사진을 ‘의무감’ 때문인지 적당히 실어주는 세태에 비해 마치 논란을 해결해주기 위한 것인 듯 사진 자체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물론 사진 자체도 빼어난 것으로 엄선했거니와 일부러 가서 찍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취지의 책이니만큼 『삼국유사』의 모든 조목을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자면 몇 권으로 써야할지 모를 정도로 조목 하나를 심도 있게 여러 방면에서 논하고 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말한다. “이제는 『삼국유사』를 재미있게 읽자고 한다. 이야기, 설화란 원래 흥미진진한 것인데 그런 콘텐츠를 등한히 하여 맥이 빠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우선 흥미가 있어야 관심과 연구도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매 챕터[章]를 놀이판의 과장(科場) 같이 ‘마당’이라 이름 붙여 지금까지의 통설/상식을 되짚어봄으로써 논의를 시작하였으니 그야말로 ‘볼거리’를 열어 재쳤다. 도합 열 마당으로 구성하여 풀어나가되 전체 결론에 와서는 ‘뒷풀이’라 이름 붙여 『삼국유사』의 역사나 설화에 대한 일연 자신의 인식과 태도 또는 그 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지은이의 관점이라고 할까 ‘공부’를 적어놓았다. 하지만 내용에 들어가서는 『삼국유사』의 다른 조목과 비교를 한다든지 소개를 함으로써 결국은 『삼국유사』 전체에 대한 안목이나 이해가 생기게 되어 있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미덕이라면, 『삼국유사』라는 책과 책쓴이 일연에 대해 개괄하고 있는 점이다. 사실 내용상으로는 당연한 의무사항이며, 다양한 독자를 위한 배려다. 『삼국유사』라는 책에 대하여 그 저술과 유통 문제에 대한 다방면의 논의를 실어주고 있으며, 원전 자체의 체제라든가 편찬상의 특이점 및 오류에 대해서도 지적을 놓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자국어로 번역한 세계 여러 나라의 『삼국유사』를 소개해주고 있다. 이 또한 오랜 기간 정보를 수집하여 모아놓은 결과일 것이다. 에필로그가 인상적으로서 『삼국유사』를 세계 고전의 반열에 넣고자 했다.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 사람들이『삼국유사』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 논쟁의 열 마당 (문제 제기)

(1) 우리 겨레가 생겨나서 나라를 열었다는 단군신화. 단군의 가계도는 어떻게 이어지며 ‘신시’가 저잣거리이고 도읍이라면 이미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왜 우리의 생태 및 문화 속 제1 짐승인 호랑이가 실격되고 곰을 환웅의 배우자로 만들었는지?

(2) 신라 궁정에서 불공드리는 스님(분수승)이 불륜을 저지르다가 죽임을 당했다. 소지왕 때 정치·종교의 지형은 어떠하며, 여기에 등장하는 쥐와 새(까마귀)는 어떤 존재인가? 국왕의 생사를 가르는 ‘수수께끼’라니 … .

(3) 서라벌에 도깨비가 판친다. 이들 귀신은 다리도 놓고, 그 우두머리인 비형은 위대한 조형물 황룡사구층탑도 감독했다. 귀신들은 비형의 이름만 듣거나 보아도 도망간다고 하는데, 그는 신라 중대(中代)의 첫 임금 무열왕의 아버지다. 이즈음 신라 왕통은 성골과 진골로 갈린다.

(4) 경주 서쪽 교외의 선도산에서 비구니 지혜스님은 봄·가을로 점찰법회를 연다. 이 참회수행은 세속오계를 설한 원광스님의 가르침이다. 지혜스님은 이 산에 터 잡고 살던 천신이나 산신을 부처님 아래로 거두었으니 비로소 불교는 토착종교와 더불어 살게 되었다. 다종교시대의 오늘날 우리는 신라인들의 자비와 관용을 배워야할 때다.

(5) 우리 역사 최대의 여주인공(heroine)은 선덕여왕이다. 이웃나라 황제가 추파를 던졌다고도 하고, 여왕 자신은 족집게 같이 예언을 했단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려고 역대급 공사를 마무리하고 부처님과 같은 신성한 혈통(성골)임을 내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의문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는 남아돈다.

(6) 신라 양지스님은 자신의 지팡이에 주머니를 걸어놓으면 지팡이가 스스로 날아다니면서 시주를 받아왔다. 그는 손재주나 예술감각이 뛰어나서 영묘사의 불상을 비롯하여 탑도 쌓고, 절의 현판도 손수 썼다. 이때 장안의 남녀들은 환희심으로 흙을 나르면서 노래를 불렀으니 곧 ‘풍요(風謠)’라는 향가다. 그가 살았던 석장사터에서 ‘民貢’이라 쓰인 기와가 출토된 이상 풍요를 공덕가로 보기 어렵고 노동요로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7) 문화재청의 ‘문무대왕릉’ 설명이다.
사적 제158호, 1967.07.24 지정.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혀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문무대왕릉 → 경주 문무대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지정시기는 호국정신을 한창 부르짖던 제3공화국 때. 이 중요한 사안을 ‘추측’으로 했단다.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은 『삼국유사』 문무왕법민조 내용이다. 『삼국사기』와 혼동·조합하였다. 이런 넌센스는 오늘날도 변함이 없고, 잘못된 고증과 믿음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문무대왕릉’을 ‘경주 문무대왕릉’으로 바꿨다니 다른 지방에도 문무대왕릉이 있는 모양이다.

(8) 옛 기록을 그대로 베껴놓거나 듣고 본대로 적어두기가 『삼국유사』의 본령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사건이나 테마의 자료일지라도 조목을 달리 하거나 편목이 다른 데 실린 예도 더러 있다. 기이편 <효소왕대 죽지랑>조와 탑상편의 <백률사>조는 각각 모량부의 몰락과 사량부의 약진을 알려준다. 익선 아간이라는 개인의 뇌물 수수로 왕비족 모량부(점탁부) 사람들이 연좌죄를 받았다는 내용이 석연치 않던 차에 금석문 <단석산신선사조상명기>는 많은 것을 밝혀준다. 서악(선도산)의 ‘잠탁(점탁)’부 사람들은 왕권에 버금가는 불사를 조영하여 견제를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9) 〈욱면비염불서승〉조에 나오는 중심인물로는 시대를 전후하여 발징(팔진)과 욱면 두 사람이 있다. 종래의 연구는 팔진이 곧 (발)징(옮겨적기의 차이)임을 알지 못하여 욱면만 대상으로 삼았고, 따라서 이 조목은 번역조차 안 되는 사료로 버려두었다. 강주(剛州. 경북 영주시) 주변에 사는 욱면은 귀진의 계집종(婢)으로서 주인 몰래 지극정성 염불하여 서방정토에 왕생했다. 그녀가 왕생할 수 있었던 것은 1차결사 때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내세에 제도해 준다는 약속 덕분이라는 재생의 모티프다. 욱면은 신분을 망각하고 불사에 몰래 참여한 죄로 처벌받은 것이 사실에 가깝다. 욱면 왕생 이야기는 사찰쪽에서 나온 것이며, 이 영험설화를 적어둔 지식인도 승려임을 잊지 않는다면 욱면조에서 우리는 오히려 당대의 숨겨진 폭력을 읽을 수 있다.
욱면왕생의 결정적 증거는 그녀가 기도하던 채로 왕생한 통로 즉 법당지붕에 뚫린 구멍이다. 욱면의 육신등공을 이보다 더 생생히 전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화재를 막아준다는 구슬 화주(火珠)가 내려앉은 자취다.

(10) 무왕과 미륵사·서동요는 익히 논의된 테마다. 근년의 순차적 발굴을 통하여 《삼국유사》 무왕조의 절 지은 기록이 대부분 사실과 합치됨을 확인하였고, 마지막 단계에 미륵사 서탑에서 사리기가 발견됨으로써 미륵사를 창건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염원까지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사리기에 적힌 발원자는 뜻밖에도 왕비 ‘사택’씨이므로 이제 선화공주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중앙탑이나 동탑 사리기에 선화공주가 언급되었을 ‘기대론’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지금까지 쏟아 부은 공력이 아깝기 때문은 아닐까.
‘못에 사는 용’의 자식으로 무왕이 태어났다는 영웅설화는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동과의 결혼이야기 또한 설화를 빌어 무왕의 즉위를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지금까지 너무 역사적으로 접근했다. 그 설화성이란, 횡재/운수대통이 즉위 ? 절짓기로 이어지는데 이 모두가 ‘셋째 딸/공주’의 타고난 복 때문이라는 서사를 말한다. 이러한 전개야말로 사실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이야기문법’이다. 당대의 기록 사리기는 미륵사 조영에 대하여 친절히 기록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2016년 익산 쌍릉 발굴에서 유골과 치아가 나와서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니 <무왕>조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목차


길잡이

첫째 마당. 이 땅에 사람이 나서, 나라를 세우다 - <고조선>
(1) 환인·환국 그리고 환웅
환인인가 환국인가?
‘환인’은 하늘(한울)님
환인과 환웅, 얼마나 다르고 같은가?
(2) 단군신화와 곰·호랑이
단군신화의 생성과 발전
곰인가 범인가? - 호랑이, 권리를 되찾다
곰은 신이다
『묘향산지』
여성 산신들
호랑이가 불러 물어간 사람들
‘호랑’이란 이름
(3) ‘신시’인가 ‘신불’인가? - 수풀 속의 제단
(4) 단군조선
단군기원
기자조선
신화와 역사
(5) 고조선의 실체
왕조이름
아사달과 고조선 영역
고조선의 국가 단계 - 물질 문화
중국학계의 도전
홍익인간

둘째 마당.. 소지왕이 죽을 뻔하다 - <사금갑>
(1) 매끄럽지 못한 서사(narrative)
어색한 동행
왕권의례인가 세시풍속인가?
(2) 왕궁의 풍경
신라고[新羅琴]
궁주는 누구인가?
(3) 신궁 제사
정월 대보름
신궁
(4) 세계문화유산 급(級)의 동물 캐릭터
까마귀·쥐 그리고 멧돼지
사료에 보이는 짐승
(5) <사금갑>조를 통해 본 소지왕의 신변불안
수수께끼에 대한 중대한 오해
내전 분수승
지증왕의 즉위 배경

셋째 마당. 서라벌에 판치는 도깨비들 - <도화녀·비형랑>
(1) <비형랑>조는 중국 기담(奇譚)의 아류인가?
(2) 진지왕의 가족관계
진지왕
용춘과 비형
지도부인과 도화녀
(3) 귀신도 도와주는 태평성대
신라·고려시대의 또 다른 정신세계 ? 토착종교
처용 이야기
비형·처용·지귀
처용은 서역사람인가?
(4) 비형, 귀신세상의 질서를 잡다
두두리 본풀이[鬼祖神話]
두두리/도깨비
비형, 악귀를 물리치는 신들의 조상되다
(5) <비형랑>조의 정치·사상적 배경
진지왕의 주변
화랑제도
(6) ‘불교왕명시대’라는 ‘신화’

넷째 마당. 선도성모 기꺼이 불사를 하다 - <선도성모수희불사>
(1) 선도산(=서악)은 다종교(多宗敎) 기도처
(2) 절 짓기 전에 무속신앙을 다스리다
(3) 점찰법회
(4) 성모는 누구이며, 중국에서 왔는가?
(5) 이웃에 있는 산, 산신 모시기

다섯째 마당. 선덕여왕에 얽힌 소문의 진실 - <선덕왕지기삼사>
(1) <선덕여왕 이야기>의 머리글
(2) 첫 번째 이야기
선덕여왕의 혈통과 프라이버시
(3) 두 번째 이야기
(4) 세 번째 이야기
사천왕사 창건
성골 왕통을 뒷받침한 안홍 스님
문제의 예언서 - 『동도성립기』
(5) <선덕여왕 이야기>의 마무리
첨성대

여섯째 마당. 양지스님, 지팡이를 부리다 - <양지사석>
(1) 양지 스님
스님의 전기
스님의 집안과 활동 시기
(2) 스님이 지은 절
석장사
영묘사
(사)천왕사·법림사
(3) 스님의 놀라운 솜씨[神技]
‘탑 아래의 팔부신장상’
부처 새긴 벽돌탑
영묘사 장육존상 빚기
(4) ‘풍요’라는 향가
‘풍요’의 유래
향가 ‘풍요’는 일노래[勞動謠]인가 공덕가(功德歌)인가?
(5) 기타
‘민공(民貢)’ 기와글자가 말해주는 것
‘’이라 쓴 글자
장육존상의 비용

일곱째 마당. 문무왕과 대왕암 - <만파식적〉
(1) 대왕암과의 인연
처음 답사한 뒤 저서를 내기까지
어느 미술사학도와 만나다
가슴 벅찬 발견 - 세계 유일의 해중릉?
(2) 사료 읽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사실에서 멀어진 서사(敍事)
<만파식적>조
해신(海神)의 신격(神格)
감은사, 감응사(感應寺)
대왕암이 먼저인가? 이견대가 먼저인가?
더 포장되어가는 수장설(水葬說)
왜병
(3) 신의 높임말 ‘대왕’의 여러 갈래
역사상에 보이는 자연신 ‘대왕’
살아 있는 대왕신
상사(相思)대왕
수많은 ‘대왕암’
(4) 고려시대의 스토리텔링, 현대에 와서 더 고조되다

여덟 째 마당. 향가 <모죽지랑가>의 역사적 배경 - <효소왕대 죽지랑>
(1) <효소왕대 죽지랑>
부산성·모량부의 위치
죽지랑은 누구인가
납득하기 어려운 서사
(2) 금석문이 말해주는 사실
단석산 신선사와 마애불
바위의 새김글 - 단석산신선사조상명기
새김글의 미륵상생 신앙
(3) <백률사>조
<백률사>조가 말해주는 진실
역사연구의 냉혹함과 한계

아홉 째 마당. 계집종 욱면의 염불왕생 - <욱면비염불서승>
(1) 결사(結社)는 누가 언제 하였나?
결사(結社) 연대
결사 장소
결사 인물
제3의 자료, 『건봉사사적』
연대와 인물, 다시 정리
(2) 도움되는 자료 - 해석의 문제
속담 “내 일 바빠 한댁(큰집) 방아”
‘용맹정진’인가 처형(處刑)인가?
함경도 무가(巫歌)의 본풀이
(3) 욱면, 서방정토로 날아가다
왕생의 증거 - 지붕 구멍
왕생의 논리
여인 성불

열 번 째 마당. 신라의 선화공주가 백제 미륵사를 지어주다 - <무왕>
(1) 사료 읽기
무왕·무강왕과 말통대왕(서동)의 결합
새로운 증거물
사리를 모신 기록 [舍利奉安記]
(2) 서동설화의 신화적 사고
‘밤손님’ 이야기
‘내 복에 산다’ 및 ‘바보사위[痴壻]’ 계통 설화
선화공주 이야기의 숨겨진 논리
(3) 역사와 설화
얼마나 사실인가?
문헌사학의 한계
미륵사 건립 발원자와 그 신앙
<무왕>조의 사료가치
향가 <서동요>의 연대
(4)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자부심, 그리고 현재와 미래

뒷풀이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 ‘캬라멜 고개’라는 땅이름
(2) 사실에서 진실로
(3) 삼국유사, 지난 시대의 사실을 적어 진실을 말하다

책쓴이와 책에 대하여
(1) 책쓴이 문제
(2) 일연 : 출생에서 입적까지
(3) 일연이 쓰거나 편찬한 책
(4) 『삼국유사』의 판본과 유통
1) 나무판본
2) 활자책·영인책·번역서(일본)
3) 활자책·영인책·번역서(한국)
4) 연구서·공구서(工具書)
5) 번역서
(5) 찬술시기와 편찬 오류
(6) 책쓴이의 관점
(7) 사론(史論)의 한계
(8) 개국신화의 품격

도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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