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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 은희경
  • |
  • 문학과지성사
  • |
  • 2019-08-30 출간
  • |
  • 344페이지
  • |
  • 128 X 188 mm (B6) / 344g
  • |
  • ISBN 978893203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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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이젠 처음 보려고 했던 풍경을 다시 볼 거예요. 처음 쓰려 했던 소설을 다시 쓰고 싶어요.”
―2012년 작가와의 만남에서

읽는 내내 중얼거리고 말았다. 나의 은희경, 우리가 바라보고 걷는 등, 한국 문학의 가장 전율적인 작가……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와 닮은 목소리를 드디어 만나 그이의 차분하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말에 과녁처럼 관통당하는 일이다. 
―정세랑(소설가)

은희경이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첫째,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둘째,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셋째, 또렷한 젠더 렌즈에 포착된 한국 근대성의 성별을 폭로할 것이다. 넷째, 적절한 관념어와 압착된 구문으로 대상을 틀어쥐는, 악력握力 넘치는 문장이 매력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변은 없다. 이번에도 우리의 기대는 어김없이 충족된다.
―신형철(문학평론가) 

*

어떤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은희경 7년 만의 새 장편소설 『빛의 과거』
당신에게도 있는, 그런 기억을 만나다
‘나’는 오랜 친구의 소설을 읽고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삶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 순간순간 빛나지만 모든 것이 서툴던 시절. 그러나 같은 시간을 공유했어도 그녀와 내가 본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 “그들 중 누구도 그립지 않지만 또한 잊히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과거의 어떤 진실은, 나의 오늘을 바라보게 한다. 

“성년이 되어가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낯선 세계에 대한 긴장과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기숙사라는 집단은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잖아요. 불완전한 나이에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기숙사’
“기숙사는 출신지와 부모로부터 벗어나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십대 초반 여자 대학생들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지점으로부터 다른 조건을 지니고 떠나왔다. 이제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야 하는 만큼 의식하든 안 하든 자기라는 존재가 다름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같은 생활공간에서 그 다름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그리고 그 개별적인 ‘다름’은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pp. 27~28) 

- 322호 룸메이트 소개
김유경: 국문과 1학년
“내가 온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리 속에 끼어들어 남들과 비슷해 보이는 것뿐이었다.”
주인공.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 상경했다. 낯선 상황에서 종종 말을 더듬기 때문에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 그 콤플렉스 탓에 모범생처럼 보이는 것을 선택했지만 진짜 모범생은 아니다. 

최성옥: 화학과 3학년
“모성과 처녀성이 다 있는 여인상을 창조했다는 게 무슨 뜻이야?”
322호의 서열 1위.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다. 고시생 남자친구와 그의 보수적인 집안 때문에 고민이 많다. 송선미의 베스트 프렌드. 

양애란: 교육학과 2학년 
“남자들, 걔네가 뭘 알어. 립글로스 바른 거랑 군만두 기름 묻은 것도 구별 못 하는데.”
미팅을 60번쯤 하고 지금은 세 명의 남자를 동시에 만나는 중. 실전 연애 경험이 많아 때로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남에게 과시하는 걸 좋아하며 자기중심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 

오현수: 의류학과 1학년 
“인간이 다 틀에 넣어 해석할 수 있는 시시한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 
집순이. 취향 있는 사람, 말수는 적어도 의사 표현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 듯 보이지만 실은 다 보고 있다. 취미는 전용 잔에 커피 마시기, 소녀소설 읽기, 클래식 음악 듣기, 기타 연주. 

- 417호 룸메이트 소개
송선미: 산업미술과 3학년
“날도 천지빼까린데 공부 쫌 미라놓고 놀 수도 있는 기지.”
늘 물 빠진 긴팔 티셔츠에 판탈롱 청바지 차림. 얼굴 반을 덮는 덥수룩한 사자 머리 아래 엄청난 미모가 숨어 있다. 걸걸한 목소리로 사투리를 쓰며 우스꽝스럽게 행동하지만 어딘지 슬퍼 보인다. 최성옥을 무한 신뢰한다. 

곽주아: 가정관리학과 2학년
“성경에도 있잖아.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위해 등잔에 기름을 채워놓고 기다리는 신부들만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어.”
어설프게 청순한 외모와는 달리 내면은 군인 혹은 꼰대. 특기는 잔소리로, 상대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 동정하고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어 용서해주는 식. 교회 오빠만 많고 사귀는 남자는 없다. 이름은 ‘주님의 아이’의 줄임말. 

이재숙: 식품영양학과 1학년 
“아니, 제가 예쁘다거나 그런 뜻은 아니구요. 아닌 건 저도 아는데요.“
집 밖에선 화장실을 못 가는 한약방집 딸. 소박하고 무던하며 호기심이 많으나 눈치는 없다. 해보고 싶은 건 꼭 하는 성격으로 무전여행을 갔다가 호되게 고생한다. 미팅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김희진: 불문과 1학년
“단체생활은 적성에 안 맞지만, 하숙보다 싸니까요.”
서울에서 재수 생활 1년을 거친 뒤 입학. 그래서 신입생 2회 차 느낌이다. 꾸밈이 세련되고 성격도 당당해 보이지만, 도가 지나쳐 직설적이다 못해 까칠한 수준. 늘 바빠서 항상 점호 시간이 다 돼서야 들어오는데 데이트 때문인지 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목차

2017
1977―3월, 4월
1977―5월, 6월, 7월
2017
1977―9월, 10월, 11월
1977~2017

저자소개

은희경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이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14년 황순원문학상, 2007년 동인문학상, 2006년 이산문학상, 2002년 한국일보문학상, 2001년 한국소설문학상, 1998년 이상문학상, 1997년 동서문학상, 1996년 문학동네 소설상,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은희경(지은이)의 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나쁜 버릇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소설을 따라가는 일기”라는 제목의 파일에는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그럴듯함,을 경계하자. 가장 비겁하고 천박한 것. 

―자꾸 외연을 넓힌다. 힘이 덜 빠진 것이다. 힘을 잘 빼면 안 무거워지는 한편 안 가벼워진다. 

―왜 집중이 안 돼? 아무 쓸모 없는 화려한 문장만 공들여 만들고 있다니. 이게 공허한 무기 자랑이 아니고 뭔가. 

결국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버리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썼다. 

이 책은 나의 여덟번째 장편이다. 10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여섯번째였을 것이다. 8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제목은 “번개 들판”이었겠고 내 주인공은 처음 계획대로 오십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3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내 어머니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연희문학창작촌으로 나를 찾아와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의젓한 아이였는지 몇 번이고 얘기해주었다. 그해 가을 잠을 설친 어느 새벽 토지문화관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다음 해 21세기문학관에서 가까스로 이 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모두 감사드린다. 

연재를 끝낸 뒤 원고를 고치는 과정에서도 실패는 계속되었다. 왼쪽 눈의 망막에 구멍이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책의 저자가 되는 일에 의욕을 잃은 것이 더 큰 실패였다. 이렇게 마칠 수 있었다는 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다. 

글 쓸 공간을 마련해준 분들과 오래 기다려준 출판사, 나의 독점 피처링 편집자 K, 그리고 문지의 이민희 편집자와 이경진 디자이너께 감사드린다. 정세랑 작가와 신형철 평론가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하나, 무조건 짧게, 빨리 쓰자. 그것이 내게는 가장 새로운 소설이다. 

둘, 이해받으려고 하거나 편을 들어달라고 하는 글에는 결코 ‘발견’이 없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신랄한 외부 시선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나는 단지 조금 빠를 뿐이에요’라는 설정은 '단지 조금 느릴 뿐이에요’보다 약간은 신선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속셈은 뭐지? 결국 변명 아냐? 라고 반박하는 시선이 반대 방향의 장력으로 잡아당겨야만 이야기라는 평면이 펼쳐지고, 그래야만 누군가가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셋, 그 시절 우리 참 치졸하고 나이브했지. 그래도 과거의 나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없다면 현재의 내 삶에 어떤 새로움이 있겠어. 

넷, 도대체, 이 망할 장편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아시는지? 끝난 소설은 무조건 해피엔드이다. 

 

 

2019년 늦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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