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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회 우재룡

대한광복회 우재룡

  • 이성우
  • |
  • 선인
  • |
  • 2019-08-15 출간
  • |
  • 415페이지
  • |
  • 160 X 231 X 33 mm / 877g
  • |
  • ISBN 979116068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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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우재룡은 1884년 1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세 되던 1902년 대구진위대에 들어갔다.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력 대항밖에 없다고 생각한 끝에 결행한 입대였다. 그 후 1907년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에도 곧바로 산남의진에 참여했다. 대구진위대에서 근무하던 중 투옥되어 있던 산남의병장 정용기로부터 큰 감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재룡은 정용기와 의형제를 맺고 경북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벌였고, 일본군 장교를 참수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정용기·정환직 의병장이 순절한 뒤 대구 동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고 말았다. 첫 번째 투옥이었고,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우재룡은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이 되면서 ‘합방 특사’로 풀려났으나 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으로 은거했다. 그러나 1915년 7월 광복회를 조직해 다시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우재룡은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을 양성해 무력이 준비되면 일제와 전쟁을 치른다’는 광복회의 독립전쟁론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만주에 길림광복회를 설치했고, 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했다. 경주 광명리에서 일제의 세금 운송마차를 공격하기도 했으며,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8년 1월, 광복회가 일제에게 발각되면서 만주로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다.
만주 망명생활도 잠시, 우재룡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곧바로 귀국했다. 그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근거를 마련하고 군자금 모집에 착수했다. 일제에 의해 해체된 광복회를 부활시키기 위해서였다. 우재룡은 자금 모집이 이루어지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한훈과 장응규를 상해에 파견했고, 임시정부와 연계해 국내에서 조선독립군사령부와 주비단을 조직했다. 우재룡은 자금을 모집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며, 일제의 관리들을 처단하는 의열투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1921년 4월, 전북 군산에서 또다시 체포되었다. 두 번째 투옥이었다. 일제 검사는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일제에 강력하게 투쟁했던 그의 활동으로 볼 때 사형은 막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제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우재룡은 1937년 17년에 이르는 옥중생활을 마치고 풀려났다. 그의 나이 54세 때였다. 그는 다시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18세에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나 환갑이 되어서야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맞았던 것이다.
그는 생존한 동지들과 유족들을 중심으로 광복회를 재건했다. 광복된 조국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자신의 독립운동의 출발이었던 산남의진의 동지들을 추모하기 위해 ‘산남의진 위령제’도 거행했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꿈은 1946년 3월 산산이 부서졌다. 그가 애써 재건한 광복회가 강제 해산되었기 때문이다.
우재룡은 20년에 이르는 수형 생활의 고초를 겪는 등 길고도 험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두 번의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리고 그토록 염원했던 조국의 독립을 쟁취했다. 광복이 되던 날 ‘하늘의 이치는 올바른 것이어서 죄악이 많은 적敵이 항복하니 나도 이 세상에 살아서 분을 풀 날이 있구나!’라는 그의 절규는 변절하지 않고 단 한 번도 주저함이 없이 항일투쟁을 벌였던 그의 한恨을 말해준다.
국망國亡의 책임을 져야 할 지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일제로부터 당한 두 번의 무기징역과, 20년에 가까운 수형생활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그의 꿈은 좌절되었고, 1955년 3월 독립운동가의 삶을 마감했다. 

목차


화보
백산 우재룡

01 대한제국 군인이 되어 의병장 정용기를 만나다
 대한제국 군인이 되다
 산남의병장 정용기를 만나다
02 의병전쟁에 참여하다
 삼난의진 연습장이 되다
 정환직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재봉기하다
 팔공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펼치다
03 비밀결사 광보회를 조직하다
 다시 독립운동을 시작하다
 광보회를 조직하다
 길림광보회를 조직하다
 군자금을 모집하다
 친일파 처단에 참여하다
04 주비단을 조직하다
 만주로 망명하다
 광복회를 부활시키다
 주비단을 조직하다
 투옥과 옥중생활
05 광복 후 광복회를 재건하다
 광복회를 재건하다
 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산남의진 위령제를 거행하다
06 서거와 남겨진 가족들

연보
부록
발간사(이명식 백산우재룡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축사(문희갑 전 대구광역시장)
축사(김능진 제9대 독립기념관장)
축사(김부겸 전 행정안전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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