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한동일
『라틴어 수업』 이후 다시 시작되는 명강의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Ius vivendi ut vult.
유 스 비 벤 디 우 트 불 트 .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권리.”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의 신작이 출간된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로서,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작가와 법조인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가는 그가 『라틴어 수업』의 뒤를 잇는 명강의를 책으로 공개한다. 우리나라에서 라틴어와 로마법의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서강대학교의 ‘라틴어 수업’에 이어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로마법 수업’을 이끌어왔다.
인류법의 기원이자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를 이루어나가기 위한 로마인들의 길고 치열한 고민의 기록이었던 ‘로마법’에 대한 그의 강의는,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고대의 법 안에 숨겨진 뜨거운 인류애와 정의로운 삶에 대한 신념을 심어주었다.
연세대 법무대학원에서 열린 세계인의 인생학교 <로마법 수업>
생활인들의 가슴을 파고든 단 하나의 질문
“당신은 자유인인가 노예인가?”
“이것은 법이 아니다!
성실한 노예로 사는 것이 너의 운명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했던 인류의 오랜 꿈이다.”
로마시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며 무엇이 인간답고 나다운 삶인가를 묻는 저자의 시선은, 역사와 법문을 파고드는 지적인 즐거움와 함께 오늘의 삶을 성찰하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로마의 신분제도를 통해 ‘당신은 자유인인가 노예인가?’ 질문을 던지고, 재판의 판결을 조작하거나 여성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약이나 낙태약을 먹인 파렴치범은 가차 없이 로마 밖으로 영구 추방했던 로마인을 통해, 사법농단과 일부 아이돌들의 일탈로 충격에 빠진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법문이 아니라 삶과 세계에 대한 잠언처럼 보이는 여러 철학자와 법학자들의 법률 격언들을 라틴어 원문과 한국어로 동시에 읽고 공감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Haec sit propositi nostri summa: quod sentimus, loquamur: quod loquimur, sentiamus: concordet sermo cum vita.
핵 시트 프로포시티 노스트리 숨마: 쿼드 센티무스, 로콰무르: 쿼드 로퀴무르, 센티아무스: 콘코르데트 세르모 쿰 비타.
“이것이 우리의 최고 생활철학이다.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생각한다.
즉, 말에 삶을 일치시킨다.” _세네카
Mulieribus tunc succurrendum est, cum defendantur, non ut facilius calumnientur.
물리에리부스 툰크 수쿠렌둠 에스트, 쿰 데펜단투르, 논 우트 파칠리우스 칼룸니엔투르.
“여성들이 쉽게 무고당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방어가 필요할 때 도우러 가야 한다.” _파울루스
Homo sum: Humani nihil a me alienum puto.
호모 숨: 후마니 니힐 아 메 알리에눔 푸토.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_티렌티우스
나의 자존감을 넘어 너를 향한 이타심과 사랑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한동일의 『로마법 수업』. 이 강의를 모두 읽고 나면 세상의 온갖 참혹하고 절망적인 소식들 가운데서도 이 문장만은 가슴에 품게 될 것이다.
Homines nos esse meminerimus! 호미네스 노스 에세 메미네리무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로마법은 숱한 압력 속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싶어했고, 끝내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나의 아집과 편견을 넘어 너와의 소통과 상생을 꿈꾸었던 로마인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렸던 돌탑과도 같습니다. 거대하고 휘황한 문명은 우리를 저마다의 인격과 이상을 지닌 인간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무수한 소비자이자 무지한 대중의 일원으로 전락시키려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단독하고 존엄한 인간일 것입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가슴에 와닿는 로마법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내 삶과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는 공부는 금방 잊히며, 결국 아무데도 써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조직과 사회생활의 압력 속에서 함부로 짓이겨지고 뭉뚱그려지고 구석으로 밀렸던 우리들의 자아와 인간적 소망을 복원하는 긴 여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