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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 티머시스나이더
  • |
  • 부키
  • |
  • 2019-09-27 출간
  • |
  • 456페이지
  • |
  • 152 X 224 X 27 mm /670g
  • |
  • ISBN 9788960517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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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민주적인 파시즘, 정의로운 포퓰리스트, 법과 절차를 지키는 독재자
오늘의 권위주의는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온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강력 추천
*《타임》 《가디언》 《포린어페어스》 강력 추천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고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인류사회 최후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했을 때만 해도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파른 경제성장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 복지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진보와 번영이 필연적인 미래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러나 3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오늘, 경제성장은 둔화됐고 불평등이 확산됐으며 세계화의 부작용이 시민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가중되는 불안과 분노 속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소멸됐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결함과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권위주의 후계자들은 이를 쉽게 활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푸틴은 어떻게 러시아를 지배할 수 있었나

소련 해체 이후 다른 동구권 나라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러시아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옐친은 소비에트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다시 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러시아 대통령이 되었다. 그냥 러시아가 독립된 뒤에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한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 구소련의 국가 자산을 불법적으로 차지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oligarch)’들이 재빨리 권력을 장악했다. 이들이 자신의 부와 생명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관리, 통제’하기 위해서 찾아낸 새 지도자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다(75~76쪽).
구소련 정보기관 요원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보좌관 시절에 벼락부자가 된 푸틴의 지지율은 1999년 당시 2퍼센트에 불과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올리가르히들은 테러를 연출하고 그것을 진압하는 영웅으로 푸틴을 등장시킨다. 이와 더불어 압도적인 텔레비전 등장 횟수, 투표 조작, 테러와 전쟁의 분위기를 풍긴 덕분에 2000년 3월 푸틴은 손쉽게 권력을 승계받는다(77~78쪽). 올리가르히들은 위의 방법을 2000년 선거는 물론 2004년 재선에도 써먹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푸틴은 법적으로 2008년에 3선에 도전할 수 없었기에 대신 무명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후계자로 선택됐다. 메드베데프 치하에서 러시아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뒤, 2012년에 치러진 외관상 민주적인 선거로 푸틴은 대통령직 복귀에 성공한다.
그러나 투표 조작에 관한 의혹과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에 항의하는 러시아 시민의 시위 또한 연일 계속됐다. 푸틴과 올리가르히들의 계획은 2012년,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해 최소 20년간 집권하는 것이었기에 타계책이 필요했다. 첫째로 개헌과 부정선거로 승계 원리는 사라졌으므로 푸틴에게는 이를 뒷받침해주고 국민을 통합할 만한 이데올로기가 시급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반세기 전에 죽은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Ivan Ilyin)이다. 푸틴은 ‘교육 받은 상층 계급이 무지한 하층 계급을 영적으로 인도하는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유의 그의 사상을 과두제를 공고히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는다(54~56쪽).
둘째는 현재의 통치 체제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들이 미국 같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외부의 적이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계획은 ‘유라시아 구상’으로 옛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이 유럽 연합에 합류하는 것을 막고 다시 한 번 러시아 제국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계획의 시작점이자 교두보인 우크라이나가 유럽 연합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신(新)권위주의의 부활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유령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다

2014년 2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처음 총성이 울렸을 때, 세계는 어리둥절했다. 한쪽 편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상대편의 정체는 모호했다. 러시아 군복을 입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군인들이 러시아 무기로 공격을 가하는데, 정작 러시아는 자국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우크라이나의 ‘폭정’에 억압받던 러시아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를 거쳐 17세기에 러시아로 편입되었던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해체된 뒤 여느 동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시장 경제를 안정시키는 힘겨운 도정에 나섰다(157~163쪽). 다행스럽게도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권력의 주인이 바뀌었고,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국민들은 법치를 지키고 부패를 벗어나게 해줄 치료책으로 유럽 연합 가입을 염원했다(168쪽). 그런데 2013년 말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다수 국민의 의사와 정반대로 유럽 연합 가입 시도를 중단하고 친러시아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가뜩이나 부패와 독재에 진력이 났던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유로마이단 혁명을 일으켰다.
야누코비치를 꼭두각시로 세워 우크라이나를 제국으로 합류시키려 했던 당초 계획이 실패하자 러시아는 2014년 2월 24일을 시작으로 표식 없는 군복 차림의 러시아 특수 부대원들을 우크라이나 북쪽으로 이동시킨다. 3월에는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거하고 가짜 국민투표로 독립 선언과 병합을 추진한 뒤(192쪽), 5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즉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 장교, 러시아 오지에서 온 지원병, 우크라이나 러시아계 주민 등으로 구성된 반군으로 주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각각 인민공화국을 선포한다(228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전술은 군사적인 면에서는 대단할 것이 없지만, 정보전의 경우 전쟁 역사상 가장 정교한 전술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눈여겨볼 만하다. 푸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적이 없으며,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전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그럴듯하지 않은 부인(implausible deniability)’으로 일관했다(217~222쪽). 텔레비전 방송을 이용해 러시아 특수 부대, 첩보 기관, 사령관, 지원병, 무기 등의 존재를 부인했고, 트위터 봇과 인터넷트롤을 이용해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서 잔혹 행위를 하고 있다’ ‘MH17 격추 사고는 우크라이나의 짓이다’라는 유의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우크라이나의 철도, 항만 당국, 국고, 재무부, 기반 시설, 방위 시설, 수도 키예프의 송전소까지 해킹해 무력화시키는 실제적인 사이버 공격이 벌어졌다(256~257쪽). 이 방법으로 러시아는 국제 여론과 서구 언론은 물론 심지어 우크라이나 국민들까지 교란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사이버전,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의 실효성을 확인한 러시아가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유럽 연합이었다. 유라시아 구상의 성공은 유럽 연합의 분열을 담보로 하고 있었고, 푸틴은 자신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럽 연합을 러시아의 항구적인 위협으로 정한 터였다. 또한 이는 러시아가 강대국이 될 수 없다면, 다른 나라를 약화시키면 된다는 ‘전략적 상대주의’에 의거한 바였다.

유럽 연합에 부는 권위주의 광풍과 파시스트 협력자들

2016년 베를린에서 13세의 러시아계 독일 소녀가 난민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다는 가짜 뉴스가 러시아투데이(RT)를 필두로 한 러시아 방송을 시작으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는 메르켈이 연간 50만 명의 난민을 독일에 받아들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였다. 2017년 선거 운동 중에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독일의 소셜미디어는 이민을 위험한 것으로, 제도권 정치를 비겁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로, 독일대안당을 독일의 구원자로 묘사했다. 2017년 9월 선거에서 독일대안당은 전체 투표의 13퍼센트를 얻어서 전체 3위에 올랐다. 1933년 나치 이래 극우 정당이 독일 의회에서 의석을 얻은 첫 번째 사례였다(264~267쪽).
2014년 바르샤바의 한 음식점에서 현직 장관과 대변인이 로비스트, 사업자들과 바닷가재를 먹으며 정치적 책략과 거래에 대해 토론을 벌인 사실이 도청을 통해 드러나 폴란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들은 10년간 폴란드 정부를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 가입을 지지한 시민연단당 소속이었는데 도청이 이루어진 음식점 두 곳은 러시아 마피아 두목 세미온 모길레비치(Semion Mogilevich)와 관련이 있었다. 이 일로 2015년 시민연단당은 실각하고 우익 경쟁자인 법과정의당이 정권을 잡았다(268~269쪽).
2015년 5월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현실화되었다. 2016년 6월 투표를 앞두고 영국 인터넷에서는 이질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트위터에서 브렉시트에 관해 이루어진 논의의 3분의 1 정도가 봇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고, 정치적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는 봇의 90퍼센트 이상, 즉 트위터 계정 419개가 러시아의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 적을 두고 있었다. 국가의 운명을 가름하는 선택을 놓고 숙고한 영국인들은 당시에는 자신들이 봇이 살포하는 내용을 읽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또 이 봇들이 영국을 약화하기 위한 러시아 대외 정책의 일환이라는 것도 꿈에도 몰랐다. 득표수를 보면 탈퇴 찬성 52퍼센트, 반대 48퍼센트였다(150~151쪽).
유럽 연합은 민주주의 국가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탈퇴를 주장하는 정당들에 의해 약해질 수 있었다. 또한 창설 이래 한 번도 유의미한 반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인터넷에 관한 논쟁이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외부 세력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유럽 연합을 파괴하려는 러시아의 정책은 위의 사례처럼 그에 부합하는 몇 가지 형태를 띠었다. 유럽을 해체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유럽 지도자들과 정당들을 발탁하고, 유라시아를 대중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극단적 민족주의자와 파시스트를 발탁하고, 온갖 종류의 분리주의를 지지한 것이다(142~143쪽). 세계 도처에는 여전히 나치 사상을 간직하고, 민족의 순수성을 찬미하며, 과거의 전체주의를 그리워하는 협력자들이 존재했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영국 브렉시트당의 나이절 패라지, 스코틀랜드민족당의 앨릭스 새먼드 등은 러시아의 재정 지원을 받아 활동한다는 사실적 정황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위력을 발휘한 것은 더욱더 정교해진 가짜 뉴스와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사이버전 전문 중추부의 인터넷 여론 조작 방식이었다. 이 업체가 만들어낸 트위터봇, 인터넷트롤이 브렉시트를 성공시키는 것을 확인하자 러시아는 민주주의의 심장을 겨누기 위해 미국으로 고개를 돌린다.

트럼프타워의 러시아인과 트럼프 당선 뒤의 설계자들

미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트럼프타워는 뉴욕시 5번가에 있는 화려한 빌딩이다. 반면 러시아인의 관점에서 보면 국제적 범죄를 유혹하는 장소다. 러시아 마피아들은 1990년대에 트럼프타워에 있는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돈을 세탁하기 시작했다. 트럼프타워에는 미 연방수사국이 오랫동안 추적한 러시아의 가장 악명 높은 청부 살인업자가 살았다. 1999년과 2001년 사이 맨해튼 동쪽 유엔 본부 근처에 세워진 트럼프월드타워는 호화 아파트의 3분의 1을 구소련 출신 사람들이나 단체가 사들였다. 사우스플로리다에 있는 트럼프 부동산 매물 700개를 매입한 것은 페이퍼 컴퍼니들이었다. 2004년 파산한 트럼프에게 유일하게 대출을 해 준 은행은 도이체방크였는데, 이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러시아 고객들을 위해 100억 달러 정도를 세탁해 준 곳이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코앞에 둔 2015년 10월, 트럼프는 러시아인들이 모스크바에 고층 빌딩을 세우고 자기 이름을 붙이게 하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그러고는 트위터에 “푸틴은 도널드 트럼프를 사랑한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인의 친구가 된 것은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서 누구든 자기 마음대로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거물 역할을 맡으면서다. 2억 1,400만 달러 이상 벌어들인 이 쇼의 클라이맥스는 그가 “당신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말하며, 노동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순간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그 밑바탕에는 세상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법을 무시하고, 제도를 경멸하며, 공감이 결여된, 가공의 부를 가진 가공의 인물이 고통을 유발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트럼프는 수년 동안 텔레비전에서 가공의 인물을 연기한 덕분에 토론에서 공화당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292쪽).
2015년 6월 트럼프가 후보 출마를 발표했을 때, 러시아의 사이버전 전문 중추부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는 미국부를 증설하는 등 규모를 확대했다. 90명 정도의 신입 직원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현장 근무를 시작한 한편, 미국에도 다른 직원들이 파견되었다.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는 또한 100명가량의 미국 정치 활동가를 끌어들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는 러시아 비밀 정보부와 함께 ‘피자게이트(pizzagate)’와 ‘정신 요리(spirit cooking)’ 등 힐러리를 겨냥한 가짜 뉴스들을 제작해 소셜미디어에 퍼뜨렸다. 미국인의 44퍼센트가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미국 정치 단체나 운동 집단으로 위장한 가짜 페이스북 페이지와 가짜 콘텐츠를 만들어 수십억 번 공유되게 했고, 결과적으로 1억 2600만 명으로 하여금 페이스북에서 러시아 콘텐츠를 보게 만들었다(298~307쪽). 선거가 끝난 후 트위터는 러시아 봇 5만 개를 찾아냈고, 3814개 계정이 러시아의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서 가동하는 것임을 확인했다. 선거 당시 이 계정들이 140만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러시아가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키기 위해서 거친 세 가지 단계였다. 각 단계마다 미국의 취약성에 의존했고 또 미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정리하면 첫째, 러시아인들은 파산한 부동산 개발업자를 그들 자본의 수령인으로 바꿔 놓았다. 둘째, 이 파산한 부동산 개발업자는 미국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성공한 사업가 연기를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성공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가공의 인물을 지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입해서 성공을 거두었다(287~288쪽).
러시아의 사이버전이 미국 대선에서 실제로 얼마나 파괴적인 작용을 했는지를 제대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유럽 연합에서 실험한 사이버전을 얼마나 정밀하게 발전시켰는지, 노련하게 다루게 되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무엇보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교란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가장한 신(新)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전작《20세기를 생각한다》《폭정》에서 이미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를 경고한 바 있는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 책을 통해 2012년 푸틴의 장기 집권 수립,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16년 브렉시트와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훑으면서 러시아가 민주주의로 가장한 신권위주의를 어떻게 부활시키는지 치밀하게 기록한다. 선거는 이루어지지만 투표는 조작되고, 정당은 존재하지만 껍데기일 뿐이다. 침공은 이루어지지만 전쟁은 부인하고, 언론은 실재하지만 국가가 통제한다. 국내 위기는 외부의 위협으로 대응하고 자유로운 여론 속에 거짓을 퍼뜨린다. 논리적 정합성이나 사실적 근거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 현실과 아무 관련도 없는 대안 현실, 대안 세계를 버젓이 제시하는 것. 이것이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신권위주의를 동구에서 서구로 팽창시킨 방식이었다.
오늘날처럼 정교한 가짜 뉴스가 사방에서 몰아치며 진실을 가리고, 현재의 불평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엄습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로 가장한 권위주의에 이끌리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것에 현혹되는 것은 ‘사회는 진보하고 번영은 계속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저자는 2010년대에 세계가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변해 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독특한 개념인 ‘필연의 정치학’과 ‘영원의 정치학’을 제시한다.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참여와 번영이 증대하는 사회로 당연히 나아가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 즉 ‘필연의 정치학’에 매몰될 때 영광스러운 과거, 그러나 실제로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과거의 순간들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이용해 국가를 지배하는 ‘영원의 정치학’에 너무도 쉽게 이끌리고 만다는 것이다.
필연성에서 영원성으로 이어지는 이 생각 없는 여행을 멈추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20세기 전반기 전체주의가 어떤 희생을 낳았는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인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역시 ‘역사’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교훈을 준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본다면, 역사 속에서 우리가 놓인 자리가 어디인지,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짜 민주주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불확실한 미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책임의 정치’이며, 우리가 갖춰야 할 역사의식이다.


목차


옮긴이의 말 7
프롤로그 23

CHAPTER ONE 개인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39
이반 일린, 부활하다 43 | 전체주의의 도래 46 | 순결한 러시아 48 |적을 만들라 51 | 대속자라는 환상 54 | 필연과 영원 사이 57’

CHAPTER TWO 계승인가 실패인가 67
볼셰비키에서 러시아 연방까지 68 | 정치가가 쓴 소설 74 | 민주적 부정 선거 77 | 영웅과 파괴자 81 | 콘돔과 원숭이 84 | 유럽 연합과 미국을 겨냥하다 88 | 복종과 반역 90 | 외부자의 잘못 92 | 영원한 동거 95 | 영원의 환상을 조성하다 99

CHAPTER THREE 통합인가 제국인가 103
유럽 통합과 러시아 108 | 민족의 대속자 116 | 러시아가 꿈꾸는 유럽의 모습 120 | 유라시아주의 123 | 알렉산드르 두긴 128 | 이즈보르스크클럽 132 | 러시아의 대외 정책 140 | 후원자들 142 | 협력자들 148 | 필연인가 영원인가 153

CHAPTER FOUR 새로움인가 영원인가 155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것 164 | 마이단 광장 168 | 품위와 용기 171 | 법률을 따르라 175 | 본질을 흐리는 방법 180 | 꼭두각시 세우기 182 | 시위대를 향한 폭력 184 | 크림반도의 바람 188 | 스키조파시즘 196 | 진짜 파시스트 200 | 이후의 풍경들 203 | 가려진 진실 208

CHAPTER FIVE 진실인가 거짓인가 213
그럴듯하지 않은 부인 217 | 노보로시야를 위하여 222 | 동결된 분쟁 228 | 죄책감을 덜다 234 | 텔레비전의 역할 237 | 항공기 격추 사건 238 | 오토바이 공연 243 | 전투와 휴전 248 | 새로운 형태의 전쟁 256 | 사실성을 파괴하라 258 | 승리인가 패배인가 260 | 독일의 문제 262 | 폴란드 이야기 267 | 주목받지 못한 경고 275

CHAPTER SIX 평등인가 과두제인가 285
성공한 사업가 287 | 트럼프타워에서 일어나는 일 288 | 허구의 승자 291 | 이제 미국이다 293 | 미국 주권, 공격받다 298 | 알려진 이야기들 307 | 가짜 뉴스의 홍수 321 | 미국을 무너뜨리는 방법 328 | 러시아식 과두제 337 | 위대했던 시절의 향수 340 | 오피오이드 드림 345 |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349 | 러시아라는 거울 앞에 선 미국 350

에필로그 362
감사의 말 366
주 370
찾아보기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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