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사유는 냉소적 인식 태도에서 비롯된 부정주의가 아니라 ‘규정적 부정(bestimmte Negation)’을 토대로 한 생산적 부정, 방법론적 부정이다. 규정적 부정이 생산적이고 방법론적 성격을 갖는 것은 그것이 ‘지금’, ‘여기’의 구체적 사태의 부정성을 폭로함으로써 ‘비판 속의 다른 가능성’을 지향하는 사유의 모델이자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이다. 규정적 부정이 생산적인 이유는 부정성에 눈을 떼지 않는 인식 태도 속에 이미 비판이 잠재성으로, ‘아니오’에 기초한 다른 가능성이 잠재태로 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가능성에 대한 잠재력은 긍정적 가상이나 그것에 기초한 유토피아주의를 배제하는 비판에 함축된 생산성을 말한다. 결국 부정의 사유는 비판적 사회인식론의 추동체이자 변증법적 사회이론의 단초이다.
부정의 사유가 규정적인 이상, 그것은 그 자체의 성격으로 인해 긍정적 가상을 산출하는 유토피아주의를 배격한다. 유토피아주의는 역사의 ‘발전’과 발전의 법칙성에 대한 승인을 전제로 하며 유토피아주의에 내재한 사이비 미래상의 전개가 가져오는 모순과 불의의 은폐는 현실에 대한 거짓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와 달리 아도르노의 철학이 유토피아 사상과 관련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혹자는 ‘상의 금지(Bilderverbot)’ 원칙을 유토피아의 금지 원칙으로 이해한다. 나는 이 책에서 아도르노 철학의 기저에 유토피아적 모티브가 깔려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성적 사회의 건설, 비동일성, 미메시스, 아우슈비츠 재발을 막기 위한 교육의 정언명법, 사회적 자유, 계몽의 자기완성, 회상과 화해, 유토피아의 선취로서 예술, 철학적 사유에 함축된 구제의 이념 등의 개념들은 ‘객관적 야만으로 인한 고통’의 인식과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아도르노 사유의 실천적 면모를 보여 준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철학은 사회인식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