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걸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또 다른 세상 이야기
재활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중 단계는 낮지만 가장 중요한 시작이 바로 의학적 재활이다. 신체 기능을 잃어버리거나 대신하기 힘든 경우 남은 어떤 기능으로라도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의 삶이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가시적 재활에 앞서 먼저 그들이 봐야 하는 낮은 시선과 그들을 보는 높은 시선의 차이를 메워야 하는 사회적 재활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를 위해 우리 사회 역시 지금보다 그 기능과 역할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출발을 위해 작가는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신체적인 제한이 있다고 모두가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게 삶을 재단하면 그 불편함은 곧 익숙함이 되고 만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많이 불편할수록 조그마한 것에 감사하고 고마워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항상 아파할 것 같고 슬퍼할 것 같은 이 책의 주인공들 역시 나름대로 행복의 이유와 조건을 찾아 소중한 일상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신체적·환경적 제한으로 인해 불편해진 삶이 과연 그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을 갖게 할 것이다. 심지어 몇몇 시선들은 비참해진 자신의 삶에 의미를 갖기는커녕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할 바에야 다른 선택을 하고 말겠다는 단호한 결정들을 내린다.
여기서 작가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단순히 그들의 일상을 공개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해 조용히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그들 역시 괜찮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방적인 시선의 틀 안에 가둬버린 것처럼 우리 역시 그들의 시선에서 과연 괜찮은 사람일지 한 번쯤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를 작가는 바라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불편한 것이 많을수록 그 가치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 흔한 칫솔 하나만이라도 없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고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불편할 뿐이다. 이렇게 불편해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 깨달음을 알게 된다.
내 몸이 아프거나 가까운 사람이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모자란 몇백 원만으로도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굳이 조심스러운 동정과 어쩔 수 없는 슬픔으로 자신을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다가가도 된다. 오히려 당신의 감정 때문에 아픈 그들이 눈치를 봐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큰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이 먼저 깨달은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용기와 그 기회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