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고疑古’를 넘어 ‘석고釋古’로
중국 고대 문명에 대한 리쉐친의 사유의 집대성
하·상·주 단대공정을 총 지휘한
중국 석학의 ‘광대무변의 학술 세계’
호기심과 공감, 비평적 읽기 또한 필요한 고대사의 향연
이 책은 중국 고고학과 고문자학의 대가 리쉐친 교수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집필한 논문 50편으로 구성되었다. 크게 중국 고대 문명의 기원, 상고 시기의 우주론cosmology, 도철문의 변천, 중원과 변경 지역의 문화 교류, 초기 중국과 외국의 관계로 나눠 상나라 이전 중국 고대사의 실체를 탐구하고 있다.
1992년 베이징대학에서 개최된 한 학술좌담회에서 리쉐친은 의고시대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리링李零과 웨이츠魏赤가 이를 정리하여 『중국문화』 1992년 제2기에 「‘의고시대’를 걸어나오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는 당시 학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동명의 저서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말하는 ‘의고시대’는 19세기 청말부터 시작되어 20세기 초 구제강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의고파’의 역사적 인식이 풍미하던 시기로, 당시 사람들은 서양의 지식을 구하면서 중국 고대 역사를 포함한 전통 관념에 의심을 품고 비판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의고 사조는 중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연구하는 외국 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외국 학계 일각에서 중국의 ‘하夏’를 부정하고, 갑골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상나라 말기 인쉬殷墟 시대부터 역사 시대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리쉐친 선생은 의고 사조가 사상사적 관점에서 봉건적 사상의 그물을 찢어버리는 데는 공을 세웠으나, 중국의 고대사와 고대 문화를 심하게 부정하여 고대 역사 문화의 공백을 초래한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리쉐친이 의고 사조라는 장벽에 선전포고를 날린 것은 어떻게 보면 갑작스러운 행보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당시 시대적·학술적 배경을 통해 봤을 때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먼저, 시대적으로 보면 ‘중화민족주의’가 강조되던 시기였다. 중국의 ‘인민’을 통합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사회주의가 개혁 개방을 맞아 그 힘을 잃어가고 있던 시기, 중국은 이를 대체하여 ‘인민’을 통합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이를 ‘중화민족주의’에서 찾은 것이다. 이는 페이샤오퉁費孝通을 거치면서 ‘중화민족 다원일체화 격국中華民族多元一體化格局’이라는 구호로 제창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의고 사조에 대한 리쉐친의 선전포고는 바로 그 구호와 내용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학술적으로 보면, 중국은 1928년 인쉬 발굴부터 당시까지 60여 년을 거치면서 수많은 고고학 자료를 축적해왔다. 또 이러한 학문적 축적을 통해 중원 중심의 일원론적 문명 발생론을 지양하고, 각 지방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동으로 발전해나갔다는 쑤빙치蘇秉琦의 ‘구계유형론區系類型論’은 중화 문명의 다원 일체적 발생론을 주장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