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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나카자와신이치
  • |
  • 동아시아
  • |
  • 2003-01-11 출간
  • |
  • 240페이지
  • |
  • 135 X 215 mm
  • |
  • ISBN 978898816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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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신화에 관한 책은 많지만,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 지평을 말한 책은 적습니다. 더욱이 인문학적 품위와 지적 긴장, 대중적 흡인력을 두루 갖춘 책은 거의 없습니다.

최근 신화가 붐이다. 왜 신화를 읽어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신화를 읽는다. 계속해서 신화를 재생산한 신간이 쏟아지지만, 몇몇 책을 제외하곤 신화 읽기의 독특한 지평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는 신화를 "이야기"의 대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신간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은 신화를 인간정신의 종합적 구현으로 파악한다.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우리가 배우는 "지식"이라는 것이 불과 15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근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하고, 심지어 "철학"이라 불리는 그리스의 지식도 2500년의 역사에 불과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인간은 이미 3만여 년 전에 축적해 놓은 지성이 있으며 이를 감히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이라 강조한다. 그리고 신화는 끊임없이 변화와 변형을 해왔지만, 그 중심에 타올랐던 철학적 사고의 마그마의 열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으므로, "신화를 배우지 않는 것은 인간을 배우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주창한다.

책은 일본 주오(中央)대학 비교종교학과의 강의를 기록한 것이다. 동서양의 경계를 뛰어넘고 원시와 현대를 넘나드는 "야생적 사고의 산책". 시공을 초월한 이 화려한 강의는 신화의 심오함과 매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며, 신화가 우리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며, 작은 책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따라서 책은 신화를 단서로 해서 태고 인류의 우주관·자연관에 접근을 시도한 신화학 입문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책은 강의록이어서 일반적인 저술에 비해 생동감이 살아 있고, 이해하기 쉬우며, 강의실에서나 가능한 유머와 자유로운 일탈들이 이 책의 묘미를 한층 더한다.

책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분석한 것이다. 전세계에 펼쳐 있는 다양한 신데렐라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저자는 분석의 차원을 넘어, 인류가 현실에 어떠한 철학을 갖고 대처해왔는지를 밝혀 간다. 그리고 변형된 신데렐라 이야기에 내포된 신화적 사고의 원형을 밝혀 주는데, 저자의 이 노련한 이끌림을 따라, 신데렐라 이야기의 화려한 퍼레이드를 감상하며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신데렐라의 "신발 한 짝"에 관한 해석에 펼쳐지는 지적 긴장감이다. 저자는 해박한 지식과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신데렐라의 "신발 한 짝"의 의미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레비 스트로스의 추론과 진즈부르그의 연구, 신데렐라와 오이디푸스를 거쳐 신데렐라의 신발이 망자의 각인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어느새 인문학적 논리의 그물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미크마크 신데렐라 이야기인 "보이지 않는 사람"의 분석에서는 인간정신과 그 상징적 산물인 내러티브가 지향하는 사회적 의식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며, 이 사회적 시각은 마지막 장인 "신화와 현실"의 관계에서 선명해진다. 신화는 항상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생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이버 공간의 홍수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신화가 갖는 의미를 설파한다. 즉 "구체성"과 "내용"이 결여되고 "양식만" 남은 가상의 세계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인간은 이 우주에서 균형을 잃게 된다는 것을 신화의 힘을 빌어 경고하고 있다. 그런 메시지에는 컴퓨터 기술이나 IT 혁명에 의해 생겨난 다양한 가상의 세계와 태고의 신화 세계에 대한 "중개기능"을 수행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신화의 인류학적, 민속학적, 사회학적 의미의 산종(散種)… 신화 읽기의 넓고 깊고 새로운 지평!

"신화적 사고는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일관된 야생의 사고를 담고 있다.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커다란 전체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볼레로처럼 말이다."

유라시아 동쪽 끝과 서쪽 끝에 동일한 신화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전파(傳播)로 설명하기를 거부한다. 신화적인 사고가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 중석기 시대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흩어져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공유했던 사고방식의 단편이나 파편이,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지역에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공통의 핵에 해당되는 것만은 불변의 것으로 유지되어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상드리용(재투성이 엉덩이의 아이)", 독일의 그림 형제 민화집에 등장하는 "재를 뒤집어쓴 소녀", 포르투갈판 "아궁이 고양이", 중국의 "섭한", 미크마크 인디언들의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불에 덴 흉터가 있는 소녀)" 등은 모두 동일한 신데렐라 이야기 전승의 잔해들이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위의 이야기들은 "원형"이 갖고 있었을 신화로서의 성격을 잃었기 때문에 "잔해"라 표현했지만, 거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완벽하게 고대적인 성격이 보존되어 있다.

신화는 이야기에 의해 전승되는 것이기에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서히 변형되어 간다. 하지만, 신화는 논리적 전체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 변형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변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면 환태평양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많은 신화들을 변형의 고리로 이어갈 수 있다.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이야기인 신데렐라를 통해, 그 변형의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이렇듯, 신화적 사고는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일관된 야생의 사고를 담고 있다.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커다란 전체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볼레로처럼 말이다.

"野生, 그것은 文明의 대립항이자, 野蠻의 대립항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 글에서 신화적 사고의 원형으로 "야생적 에티카"를 제시한다. 우리는 여기서 야생이란 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철학이라는 단어에 야생의 풍경을 회복시키려는 학자이다. 야생적 사고의 원형을 규명하기 위해서 신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은 그만큼의 남다른 깊이를 갖고 있다.

신화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탐욕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16세기 이후에 시작된 백인과의 접촉에 의해, 신화는 문자로의 기록이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백인과의 접촉은 곧 선주민의 고유 문화의 파괴를 의미하는 셈이므로 신화에 대한 지식을 얻은 대신에 신화를 전승하던 사람들의 문화는 사라지게 된다. 즉, "문자화된 야생적 사고"는 남아 있지만, "살아 있는 야생적 사고"는 파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를 올바르게 읽어내는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야생적 사고의 원형을 밝혀내는 작업일 것이다. "문명"과 "야만"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진화론적인 신화 읽기와 신화는 미신적인 것이며 미개한 것이라는 태도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동시에, 문명의 대립항으로 익숙하게 개념화되어 있는 "야만"과 "야생"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시선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신화는 감각의 논리를 구사해 우주 안에서의 인간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류의 대담한 철학 행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담하고 야생적인 사고들은 연결 고리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깊은 통찰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우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신화의 지향은 공간과 시간 속으로 퍼져서 본래의 연관성을 잃어버린 듯이 보이는 것에 대해 상실된 연관성을 회복시키는 것이고, 상호관계의 균형이 심하게 깨진 것에 대해 대칭성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현실세계에서는 양립이 불가능해진 것에 대해 공생의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연석(燕石), 자패(紫貝), 콩, 아궁이, 재" ― 문화인류학적, 민속학적 혜안

나카자와 신이치는 "연석" 등 신화에서 주요 기능을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9세기 일본에서 쓰여진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 미국의 "새집 뒤지기(Bird Nester)"라는 민간 풍속 등의 공통점을 밝혀내며, 연석 안에 담겨진 신화적 사고의 원형으로서의 야생적 사고의 본질을 찾아내고 있다. 한편, 저자는 여러 전승과 이본들에 대한 비교 분석을 통하여 "자패", "아궁이", "재", "제비" 등의 요소들이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중개기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망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를 연결하며, 그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가장 신화적인 논리를 구현해 내는 위의 요소들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탐구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문화인류학적·민속학적 혜안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크마크 인디언의 사회학, 그 따뜻한 시선"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되어버린 지금, 신화적 잔해로서의 신데렐라마저, 자본주의는 상업적인 캐릭터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미크마크 인디언의 신데렐라는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았으며, "문명"과 "야만"이 대립되지도 않았던, 주체와 객체의 분리라는 근대성의 문제도 야기되지 않았던 바로 그 시기, 아니 애초에 그런 경계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인류의 야생적 사고를 온전히 보존해온 미크마크인들의 가치를 담고 있다. 미크마크의 신데렐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누더기 옷을 입은 신데렐라, 얼굴엔 화상의 흉터가 남아있고, 불에 그을어서 오그라든 머리카락의 신데렐라, 유리구두 대신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털가죽으로 만들어 신던 신발인 "모카신"을 신고 있는 신데렐라가 등장한다. 물론, 경박한 해피엔드로 그 결말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즉,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 대한 욕망으로 오염된 현재의 신데렐라와 미크마크 인디언의 신화적 사고는 결코 화해될 수 없었던 것이다.

미크마크 인디언의 신데렐라는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진 현실 세계에서 이미 양립 불가능해진 것들을 공생의 관계로 억지로 끼워 맞추는 집단적인 최면으로서의 환상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동시에 열광적이기를 요구하는 종교와도 분명히 구별되는 야생적 사고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미크마크 인디언의 따뜻한 시선의 사회학은 바로 우리 시대의 대안적 사회학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소개

"신데렐라의 잃어버린 신발 한 짝에 대한 대답"이 궁금하세요? - 본문 190-191쪽에서 발췌
마지막까지 남겨둔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시다. 그것은 벗겨져서 두고 간 신데렐라의 신발 한 짝에 대한 문제입니다. (중략) 오이디푸스가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인간이 태어났다가 다시 돌아가는) 저승 세계에 발을 반쯤 들여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표현하면 그는 삶과 죽음의 두 영역을 중개하는 존재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기나긴 분석을 통해 검토해온 바와 같이, 신데렐라 역시 삶과 죽음의 영역을 중개하는 존재로서, 아궁이 옆에 있어 재를 뒤집어쓰고, 개암나무를 통해 망자의 영혼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고기 뼈의 중개에 의해 마법의 원조를 얻어 수중 세계의 왕궁으로 가서 왕자의 구혼을 받으며, 유리구두가 벗겨져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집으로 서둘러 돌아온 여성이었습니다. 그녀 안에 여성의 모습을 한 오이디푸스가 숨어 있는 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 걸까요?

신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대답이 있습니다. - 본문 30-31쪽에서 발췌
모든 신화에는 각각 나름대로 지향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 속으로 퍼져서(흩어져서라는 표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의 연관성을 잃어버린 듯이 보이는 것에 대해 상실된 연관성을 회복시키는 것이고, 상호관계의 균형이 심하게 깨진 것에 대해 대칭성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현실 세계에서는 양립이 불가능해진 것에 대해 공생의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찾아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의례나 신비주의에 근접하게 되는데, 신화는 이 세계의 현실 속에서 그런 원시 상태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열광적이기를 요구하는 종교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신화는 모든 것의 구별이 사라지는 세계의 실현 같은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것에 대해 사고하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앞으로도 아마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에 대해 정확한 관념을 갖는 것은 우리의 현재 상태를 올바로 판단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기"(레비 스트로스가 즐겨 인용하는 장 자크 루소의 말)를 바라며, 신화의 꿈은 완성되어 왔을지 모릅니다.

신화는 종교의 열광과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신화는 비합리적인 논리를 매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 비합리의 경계선 바로 앞까지 접근하면서도 그 선을 넘어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사고의 힘이 철저하게 작용해서 신화를 이성(이성이라는 말을 확대해서 사용하기로 하겠습니다)의 영역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은 국가라는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았던 사회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국가의 탄생은 인간의 삶에 일종의 해결 불능의 비합리 내지는 부조리를 초래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출현하기 이전, 즉 사람들이 아직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사고의 힘에 의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에는, 인간은 신화를 통해서 부조리의 본질을 생각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신화는 최초의 상태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화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타산적이 되거나 여론을 의식하거나 하지 않고 인간에게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신화에서는 철학과 윤리가 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야생의 에티카"라고 부르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힙니다.

- 본문 232-233쪽에서 발췌
이테리멘족은 광대버섯이 일으키는 환각작용을 매혹적인 자연의 유혹으로 표현한 셈인데, 신화에서 유혹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때는 좋은 효과를 발휘하지만 유혹에 푹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광대버섯을 사용하는 제의를 매우 좋아했던 사람들이지만, 신화는 사고하는 철학으로서 그것에 대해 우주적 차원에서의 결단을 내리고자 하는 겁니다.

이 때 신화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 서서 둘을 중개하고자 합니다. 게다가 환상 세계에 매몰될 경우의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화는 현실과의 대응 기능을 절대로 상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둥이 체리쿠토프처럼 현실 세계를 버리고 광대버섯 아가씨가 주는 쾌감에 빠져버리고 싶은 욕망도 몰래 갖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현실을 잃더라도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 버릴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현실 세계의 풍요로움과 복잡함을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동시에 마음속에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가상의 영역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광대버섯 아가씨의 유혹은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위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성에 대해 신화는 경고를 해왔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의 가상 영역에 너무 깊이 빠져 들어갈 때 인간은 우주 속에서도 균형을 잃습니다. 그러면 산은 폐쇄되고 빙하로 뒤덮여 지상에는 황폐함이 지배하게 될 겁니다. 우리의 현대 문명은 도처에 광대버섯 아가씨의 유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가상적인 성격이 강한 문화가 그것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신화라면 뭐라고 할까요? "구체성 세계의 풍요로움을 다시 한 번 확인하세요"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바로 "양식만"이 아니라 "내용"을 갖춘 신화라는 겁니다.

"미크마크 인디언"을 아시나요? 그들의 신데렐라에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본문 170-172쪽에서 발췌
눈에 띄는 것은 미크마크족의 비평 정신이 가장 먼저 페로판 신데렐라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는 "보이는 것" "보는 것" "보여주는 것"에 대한 집착을 향해 발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페로판을 비롯한 유럽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아니 섭한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판에서도!) 아름다운 이성을 찾으려는 욕망과 자신이 이성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였으면 하는 욕망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자님은 자신의 결혼 상대가 될 "아름다운 여성"을 열심히 찾고 있지만, 왕자님에게 있어서의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외관상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의미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데렐라(상드리용)는 어떤가 하면 파티에서 다른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호화롭게 차려입고 매력을 과시해, 어떻게 왕자님의 마음을, 아니 그보다도 욕망의 눈을 사로잡을 것인가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미크마크족은 경박한 인생관으로 본 겁니다.

그래서 유럽식의 신데렐라 이야기에 대한 근본적인 비평을 목적으로 한 미크마크판 신데렐라에서는 이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을 철저하게 부정해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왕자에 해당하는 인물은 이름 그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수렵의 명인으로 모든 소녀들이 이상적인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그 사람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녀들은 혈안이 되어 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려고 합니다. 그를 볼 수 있었던 소녀만이 결혼할 수 있기 때문에 소녀들도 필사적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초자연적인 힘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매우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인 샤먼과 같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소녀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결혼 상대로 보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왜 결혼하고 싶어했는가 하면 그가 뛰어난 사냥꾼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헤라지카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수렵에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인디언 소녀들이 품고 있는 최대의 소망은 멋진 사냥꾼과 결혼해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자님과 결혼하고 싶어했던 예전의 소녀들이나 부자이면서 핸섬한 청년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요즘 소녀들의 심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여동생과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로 불린 소녀뿐입니다. 여동생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영혼이 고귀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입니다. 영혼의 고귀함의 조건은 "모든 걸 겉모습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의 가치에 의해 아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는 학대를 받아 불에 데어서 얼굴 전체가 짓물렀으며, 머리카락은 오그라들었습니다. 겉모습을 보면 그렇게 더러운 여자아이가 없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입니다.

- 본문 175-178쪽에서 발췌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의 언니들과 다른 귀여운 소녀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기 위해 아름답게 치장을 합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기 위한 최악의 방법입니다. 아름답게 치장함으로써 소녀들은 자신의 겉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봐 달라고 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 사람은 공교롭게도 모든 것의 겉모습을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점이 유럽의 신데렐라 이야기에 나오는 왕자님과 매우 다른 부분입니다. 인디언은 아마도 유럽의 왕자님에 대해 참으로 정신적인 수준이 낮은 바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왕자님은 겉모양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욕망의 눈을 통해 보려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신데렐라의 성격이 좋았기 때문에 실패는 하지 않았지만, 이런 왕자님은 절대로 세계의 진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사람"이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인디언의 사고 안에서 아름다운 영혼은 고도의 초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영혼은 겉모양에 현혹되는 걸 피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겉모양이 아름다운 것을 봐도 그 속에 어떤 영혼이 숨어 있는지를 아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 안에서 발견합니다.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는 확실한 후원자도 없으며 작고 병약하며 더럽고, 재와 검댕과 먼지를 뒤집어쓴 상태이지만, 그녀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한껏 치장을 했습니다. 이 치장이 또한 매우 귀엽습니다. 인디언의 뛰어난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헐떡거리는 아버지의 신발을 신고 나갑니다. 헐떡여서 신발을 질질 끌어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겁니다. 게다가 방금 잘라온 자작나무를 벗겨서 그걸로 옷을 만들어 걸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묘한 차림을 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의 집을 향해 간 셈인데, 여기에서도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반전시키고자 하는 섬세한 배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는 아버지한테서 헐떡거리는 모카신(moccasin: 구두의 시초로 여겨지는 것으로,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털가죽으로 만들어 신던 신발―옮긴이)을 받습니다. 이것은 신데렐라가 받은 요정의 구두를 반전시킨 것입니다. 요정의 구두는 신데렐라의 발에(신데렐라의 발에만) 딱 맞습니다. "딱 맞는다"는 것에는 어쩐지 에로틱한 느낌이 따라다니는데, 여기에는 중국의 전족纏足과 같은 성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작은 신발입니다. 유리구두, 은으로 수가 놓인 신발, 금으로 된 신발. 어쨌든 전부 화려한 신발들입니다.

그런데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가 신은 신발은 아버지가 신던 신발입니다. 너무 커서 헐떡거렸기 때문에 물에 적셔서 작게 만들었는데, 물에 적셔서 작게 만드는 이런 행위도 구두가 딱 맞는 상대를 찾아서 임금님 일행이 전국을 헤매는 장면과 관계가 있습니다. 요컨대 모든 것이 패러디인 셈입니다. 이렇게 헐떡거리는 신발을 신고 처음으로 그녀는 "보이지 않는 사람"의 집을 향해 떠납니다. 여기서도 "신발"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데렐라는 작고 아름다운 신발을 신고 무도회에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와 왕자를 맺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이 신발이었습니다. 미크마크판 신데렐라에서도 신발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형태도 기능도 전부 반전된 형태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요정한테 받았으며 새것이고 딱 맞으며 다른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신발"이 "아버지한테 받았으며 헌 것이고 헐떡거려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신발"로 반전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이 미크마크판 신데렐라 이야기는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페로판 신데렐라를 반전시켜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반전이 이루어질 때는 이따금 메시지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여기에는 인디언의 결혼 철학이 나타나 있는데 그런 철학은 유럽판 신데렐라에 나타나 있는 사고방식과는 매우 이질적인 것입니다.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신데렐라 신화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층의 모든 레벨 사이에 존재하는 중개기능을 온 힘을 다해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으로, 결말에 해당하는 결혼에 의한 해피 엔드도 그런 중개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유럽의 민화로 변형되자 다른 중개기능을 이용해서 오로지 사회적 중개기능인 결혼이라는 해피 엔드로 몰아가려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의 내용 전체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 대한 욕망"에 의해 오염되어 버렸다고 인디언은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발견된 이 소녀가 초능력을 지닌 여동생의 손에 의해 화상의 흉터가 지워지고, 불에 그을어서 오그라든 머리카락도 그녀의 빗질에 의해 곱게 변해,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여성이 된 것을 보고, "뭐야? "보이지 않는 사람" 역시 예쁜 여자를 좋아하잖아?"라고 비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겠는데, 여기서 거론되고 있는 "아름다움"은 별이나 들꽃이나 동물과 같은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화장이나 치장에 의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이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숨어있는 것이므로 여러분 부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저자 소개
작가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
지은이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 교수는 일본 현대 지성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종교학자이다. 학문적 역량과 함께 전문적 주제의 무게와 깊이를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탁월한 인문학 저술가로서도 유명하다. 1950년 야마나시(山梨)현에서 태어나 도쿄(東京)대학 종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1979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티베트 승려 케쓴 삼보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3년간 닝마파 전승 밀교의 연구와 수행을 했다. 1982년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외국어대학 아시아 아프리카 언어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1983년 32세에 저서 [티베트와 모차르트]가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인문학의 차세대 사상가로 혜성처럼 떠올랐다. 이후 일본 출판계가 함께 일하기를 소망하는 일본 제일의 인문학자로 불리며, 주오(中央)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티베트와 모차르트] 세리카 書房, 1983. 산토리 學藝賞
[무지개의 논리] 新潮社, 1987.
[악당적 사고] 平凡社, 1988.
[숲의 바로크] 세리카 書房, 1992. 讀賣文學賞
[철학의 동북] 靑土社, 1995. 齊藤綠雨賞
[필로소피아 자포니카] 集英社, 2001. 伊藤整文學賞
[인류 최고의 철학](카이에 소바주 1) 講談社, 2001.
[곰, 왕이 되다] (카이에 소바주 2) 講談社, 2002.

옮긴이 김옥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일본 문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체육대학 교양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도마뱀] [상하이]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카이에 소바주에 대해서/6
최초의 철학/12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신화의 수수께끼/45
신화논리가 선호한ㄴ 것/71
신화로서의 신데렐라/91
신데렐라의 원형을 찾아/111
중국의 신데렐라/139
신데렐라에게 맞서는 신데렐라/161
신발한짝의수수께끼/179
신화와 현실/202
역자후기 시공을 초월한 야생적 사고/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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