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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

여성, 오래전 여행을 꿈꾸다

  • 의유당
  • |
  • 나의시간
  • |
  • 2019-11-21 출간
  • |
  • 228페이지
  • |
  • 118 X 188 X 19 mm / 220g
  • |
  • ISBN 979119535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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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여성, 오래전부터 여행을 꿈꾸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지만 누구에게나 실현 가능한 꿈은 아니다. 누구에게는 설레는 계획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갈망이자 삶을 건 결단이기도 하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오스트리아 여성 이다 파이퍼의 경우도 오래된 한 예다. 그녀는 1842년 43세 나이에 유언장을 남기고 홀로 팔레스타인으로 떠난 후 생애 마지막까지 16년간 세계 곳곳을 돌며 자연연구가로 일한다.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19세기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 이런 ‘모험적인’ 서구여성들에 대한 얘기는 간간이 접할 수 있다. 같은 시대, 외출조차 쉽지 않았던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떠했을까?
1830년 14세 나이로 남장하고 금강산으로 떠난 김금원, 그 이전과 이후에도 바깥세계를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제약과 금기를 넘어 어렵게 내딛은 걸음들이 있었다.

남편의 관소에 따라갔다가 잠시 유람한 것으로 인해 문제가 되었다는 기록들이 더러 나오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여성들이 얼마나 여행을 하고 싶어했는지 그 마음이 짚인다. 담헌이 중국 여행을 다녀와서 한글로 쓴 《을병연행록》이나 《열하일기》 한글 번역본은 여성에게 읽히기 위한 것으로 여행에 대한 갈증을 얼마간 채워주었다. 애초에 여성들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여행기나 여행을 다녀온 남자들이 이야기하거나 보여주는 이국의 물건들로 그 지적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도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관아 뒷간 옆에서 숨을 참으며 기생들을 구경하거나, 남편을 졸라 기어이 일출을 보거나, ‘여자로 태어났으니 깊이 들어앉아 문을 닫고 경전과 법도나 지키고 있어야 옳단 말인가’라고 질문하면서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 혼자 여행을 감행하거나, 명절을 앞두고 집을 떠나 서울 구경을 하고 여행기를 남긴 여성들이 그들이다. 연안 이씨의 〈부여노정기〉, 은진 송씨의 〈금행일기〉, 의유당 남씨의 《의유당관북유람일기》, 금원의 《호동서락기》, 강릉 김씨의 〈서유록〉은 바로 그 여행의 기록들이다.
_〈조선여성들, 여행하고 기록하다〉 17~18면

규방 여성의 ‘구경 욕심’, 자기 발견

중문 밖 막 나서니 구경처는 지척이요
행랑은 게서 머니 다 각각 틈을 얻어
몸을 숨겨 엿보니 구차도 막심하다
좌편은 책실 측간 앞으로 마구간 벽
악취가 밀고 들어오나 구경 욕심으로
처음과 끝 보려 하니 전후 차례 점고 절차
고을마다 한가지라 차례로 기생점고
모양도 볼 것 없고 복색도 기괴하다
_〈금행일기〉 중에서

측간과 마구간의 악취를 맡으며 구차하게 숨어서 기생 점고를 엿보는 모습이다. 양반여성이 다른 지방에 가서 낯선 문화를 경험한 바를 그린 기행가사 〈금행일기〉 일부다. 구경 욕심, 이는 규방의 여성들이 가진 원초적인 호기심이요, 욕구였을 것이다.
유교적 규범이 강화되면서 조선여성들은 외출이나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양반여성들은 친정에 가거나, 남편이나 아들이 지방 관아로 부임하는 경우 같이 갈 수 있었다.(지방에 부임하는 관리가 가족을 동반하는 것도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가능했다.) 《의유당관북유람일기》도 의유당 의령 남씨가 남편의 부임지 함흥에 따라가서 유람한 내용을 쓴 것으로, 〈낙민루〉(1769), 〈북산루〉(1771), 〈동명일기〉(1772) 등의 한글 작품이 실려 있다. 〈동명일기〉만 주로 불리지만 〈낙민루〉와 〈북산루〉도 주목할 만한 글이다. 이 글들은 정자나 누각 같은 건축물을 둘러보고 쓴 누정기(樓亭記)의 형식을 띤 듯하나 누각이나 주위 경관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글쓴이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더 치중한다. 누각에서 즐긴 풍류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하는데, 특히 종일 놀다온 뒤 현실로 돌아오는 부분의 묘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좌우의 불빛과 군악이 내 호기를 돕는 듯, 몸이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앉아 대로를 달리는 듯, 뛸 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오다가 관문에 이르렀다. 내아의 마루 아래서 가마를 내리니 화려한 초롱이 뭇별이 햇빛을 받아 떨어지듯 사라졌다. 심신이 아찔하여 몸이 저절로 대청에 올라 머리를 만져보니 구름머리 꿴 것이 고아 있고 허리를 만지니 치마가 둘러 있었다. 이 몸이 여자임을 분명히 깨닫고 방 안에 들어오니 바느질하고 옷감 짜던 것이 좌우에 놓여 있어 손뼉을 치며 웃었다._〈북산루〉 59면

불을 밝히고 풍악을 앞세우고 돌아오는 길, 여자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호쾌한 기분이지만 집에 들어서는 순간 화려한 불빛이 사라진다. 흥이 다한 뒤의 씁쓸함을 나타낼 듯싶은데 ‘여자임을’ 깨달은 의유당은 방 안에 들어가 바느질감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웃는다. 대반전이다. 우리는 “그 웃음소리에서 얻어맞듯 여자라는 존재의 위치를” 보게 된다.
〈동명일기〉는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에 몹시 ‘들썩여’ 여러 차례 간절히, 적극적으로 청한 끝에 이뤄진 결과다. 〈동명일기〉에서 일출에 대한 묘사는 한글 산문 중 빼어난 문장으로 꼽히는데, “섬세하고도 화려하며, 생동감”이 있다. 의유당은 기존의 관습적인 표현이나 관념적인 표현 대신 자신이 본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하며 ‘차마 끔찍하였다’라고 직설적인 탄성을 토한다.

금원의 삶의 기록 《호동서락기》
1830년 봄 강원도 원주에 사는 열네 살의 김금원(金錦園)은 머리를 사내아이처럼 땋고, 남자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부모에게 여러 번 간청한 끝에 어렵게 길을 나선 금원은 ‘매가 새장을 나와 저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고, 천리마가 재갈을 벗어 던지고 천 리를 내닫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며 제천 의림지부터 금강산, 관동팔경의 긴 여정을 밟는다. 이어서 설악을 거쳐 서울까지 간 금원은 자신을 돌아보고, 여행을 마친다. 금원은 후에 이 여행의 경험을 《호동서락기》라는 한문 여행기로 남긴다.
《호동서락기》는 1850년 금원이 34세에 펴낸 여행기로 어린 날 금강산 일대를 돌아본 내용과 결혼 후 의주에서 지내고 서울로 돌아와서 용산 삼호정에서 여성 시인들과 시회를 하며 지낸 일을 기록하고 있다. 금강산, 설악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서울, 의주 같은 도시의 번화함을 묘사하고, 여행 틈틈이 쓴 시들을 곳곳에 실어 시인으로서의 금원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호동서락기》에 대해서는 금원이 한미한 집안의 딸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도전적인 생각을 밝히는 앞부분이 주로 언급되어왔지만 여행을 반추하는 뒷부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슬프다. 천하 강산의 큼이여! 한 모퉁이 좁은 나라는 큰 볼거리가 되기에 부족하구나. 고금 세월의 장구함이여! 백년의 덧없는 인생은 유쾌하게 즐기기에는 부족하구나. 비록 그러하나 한 끝을 들어 그것으로 미루어보면 천하가 모두 이 강산 같고, 백년으로 보면 고금이 모두 이같은 시대다. 그렇다면 강산의 크고 작음과 일월의 멀고 가까움을 또 어찌 족히 논하겠는가. 그러나 지난 일과 거쳐온 곳이 눈 깜짝하는 순간의 꿈일 뿐이니 문장으로 써서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오늘날 금원이 있었음을 알겠는가._《호동서락기》 162~163면

‘아름다운 곳을 두루 다녀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고 ‘소원도 이루었’으나 곧 금원은 정작 자신의 여행이 넓고 넓은 세상의 한 모퉁이를 본 것일 뿐이고, 덧없는 인생이 즐기기에도 부족한 한 순간일 뿐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금원은 적극적으로 글을 남기게 된다. 마지막 부분을 시모임 삼호정시사에 할애한 것도 의미가 있다. 금원은 의주에서 돌아와 서울 용산에 머물며 동생 경춘, 박죽서, 김운초, 경산 등 여성 시인들과 어울려 시회를 열곤 한다. 이들은 모두 소실들로 시재(詩才)가 뛰어난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모임은 ‘삼호정시사’라 불렸는데 삼호정(三湖亭)이라는 정자에서 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동서락기》 권말에는 이들의 발문이 실려 있는데 금원과 그 여행기에 대한 당시 평가라서 더욱 흥미롭다.

노부인의 서울 나들이, 〈서유록〉

떡전거리로 바로 가서 점심 요기를 잠깐 하고 홍릉거리에 다다르니 동대문까지 이십 리였다. 그곳에 쉬면서 구경하니 원산으로 왕래하는 화륜거가 번개같이 달아나고, 인력거며 자행거가 북같이 왕래하고, 나무바리 황아짐이 떼를 모아 출입하고, 구경하던 남녀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가운데 번갯불이 번득하며 수 칸 되는 유리집이 노상으로 굴러오니 그것은 전차였다. 정거장을 구경한 뒤에 가군은 나귀 몰고 행로로 오게 서로 약속하고 연아를 데리고 전차 위에 올라앉았다. 번개같이 구르는 바퀴가 잠깐 멈추어 전차에서 내려서니 동대문 안에 벌써 이르렀다. 서울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정신이 아득하여 어떠한지 알 수 없었다. _〈서유록〉 194~195면

‘굴러오는 유리집’에다 모든 게 새로운 서울에 정신이 아득하다. 강릉에서 열흘 가까이 걸어와 처음 서울과 만난 노부인의 얘기이다.
20세기 초 사회역사적 변화와 함께 여성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초래되면서 여성들의 여행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뤄지고, 여행기록도 늘어난다. 〈서유록〉도 그중 하나다. 글쓴이 강릉 김씨는 의유당이나 금원에 비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강릉 김씨는 1862년 강릉에서 태어나 인근 장현 마을 강릉 최씨에게 시집가서 7남매를 낳고 80세까지 살았다. 신식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책 읽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52세가 되던 해 장손과 손부를 연이어 잃는 큰 슬픔을 겪고 ‘원통함과 울분을 견디지 못해’ 남편에게 서울 구경을 청하여 남편과 딸과 함께 1913년 8월 3일부터 9월 8일까지 서울, 인천 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여행하는 틈틈이 기록하여 1915년 여행기 〈서유록〉을 완성한다.(〈서유록〉과 한글로 번역한 〈황성신문〉 일부를 엮어 《경성유록》이라는 제목의 책을 만든다.)
김씨 부인은 강릉에서 서울 도착까지 열흘간 오백오십 리 노정을 자세히 기록하는데, 지나치는 지명은 물론, 그곳과 연관된 이야기나 일화까지 소상히 들려준다, 서울의 거리나 처음 접한 신문물에 대해서도 눈앞에 보이듯 상세히 묘사한다. 김씨 부인은 새로운 문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일제 지배에 대한 적대감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한다. 신문물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표한 것은 학교, 특히 여학교이다. ‘서울 구경 중에서 가장 귀하고 반가운 것이 학생 다니는 모습’이라고 하며 여성 교육에 거듭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김씨 부인이 여성교육, 여학교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시 문명개화의 하나로 여성교육이 주장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생각에도 서울 구경하여 별수도 없고 효험도 없다고 말할 터이나 지금 세계에 이전 풍속만 생각하고 들어앉으면 더구나 여자계의 암매함을 면치 못할 듯하다. 우리나라 이천만 동포의 일천만은 여자인데 여자계가 어두우면 나라 앞 길 어이할까. 나도 이 구경 아니 하였더라면 세계가 무엇인지 여자계가 무엇인지 동포가 무엇인지 몰랐을 터인데 구경한 효험으로 이것저것 아는 것 어찌 별 수 없다 하리오. (...)
어서어서 구경들 하고 정신들 차리시오. 지금은 이전과 다른 것을 알지 못하오. 나의 노정기 일체로 서유록을 적어놓은 것 하나도 거짓말 없소. 얘기하기 장황하고 지리하기로 이 책을 적어서 구경 아니 한 여자계의 여러분에게 권고코자 하노니 보시는 이 허술하게 알지 마시오.
_〈서유록〉 218~219면

강릉 김씨 부인은 서울 여행을 통해 세계를 보고, 여자계와 동포에 대해 깨달았음을 토로하는데, 개인적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여성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절박함을 드러낸다. 〈서유록〉은신여성의 여행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문명의식, 여성의식 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글이라 하겠다.


목차


조선여성들, 여행하고 기록하다__김경미

들썩임과 간절함
의유당관북유람일기
낙민루·북산루·동명일기__의유당 남씨

남장하고 금강산행
호동서락기__김금원

시골 부인 서울 구경
서유록 __강릉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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