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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냄새

수영장의 냄새

  • 박윤선
  • |
  • 창비
  • |
  • 2019-11-29 출간
  • |
  • 160페이지
  • |
  • 152 X 223 X 19 mm /265g
  • |
  • ISBN 9788936477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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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네모난 집과 반듯한 교차로를 오가는
아파트키드 민선의 하루하루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에 살면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아파트촌에 자리한 ‘어린이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배우는 주인공 민선은 오로지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아파트키드’다. 아빠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가사를 도맡으면서도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재산을 모아 값이 오를 만한 아파트를 산 엄마는 다른 학부모들과 경쟁하며, 공부도 운동도 빠짐없이 잘하는 언니 민진에게 온 신경을 쏟는다. 무심한 가족들 사이에서 민선은 엄마가 하라는 대로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과 수영장을 전전한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아파트 상가에서 혼자 김밥을 사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나날의 연속이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로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는 듯하지만 네모반듯한 아파트와 교차로 사이를 오갈 뿐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도, 대화할 친구도 없는 민선의 하루하루는 한없이 무미건조하다. 작가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 무렵의 서울 대치동 아파트 단지의 풍경을 참고하여 외롭고 쓸쓸한 민선의 일상을 서늘하게 연출했다. 무심한 듯 단순하게 당시의 분위기를 담아낸 그림은 ‘밀레니얼 세대’ ‘에코 세대’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지극히 일방적인 진단과 평가를 받는 이삼십대 독자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수난과 섬세한 감정의 결을 생생하게 되살려 당사자의 눈으로 돌아보게 한다는 점도 이 작품의 힘이다.

텔레비전 크기로 가난을 평가하던 시절
은밀하게 배워나가는 어른들의 세계

아이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놀이와 친교 관계는 어른들의 정치와 사교만큼이나 비정한 구석이 있다. 『수영장의 냄새』는 유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친구 사이에 권력 관계가 생기면 과감히 서로의 호칭을 “주인님”과 “쫑”으로 바꾸어 부르는 민선의 모습과 친구 집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 크기로 빈부를 저울질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씁쓸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작품에 그려진 여덟살들의 세계는 대답을 못하는 아이를 “찌질이”라고 욕하고, 조금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는 “지랄하네”라고 일갈하는 선생님,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이기는 데 집중하는 부모들의 사회와 닮아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조리한 사회의 규칙을 은밀하게 배워나가야 했던 유년시절을 그린 이 작품에서는 앞으로의 경쟁을 위해 관리되고 소독된 수영장의 냄새가 난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그야말로 지옥,
그때 우리는 치열하게 자랐다

이 작품에서 어른들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우연히 저지른 도둑질로 느낀 최초의 죄책감과, 비행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에서 우러난 공포를 민선은 혼자 감당한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서 민선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행동을 한다. 친구를 도둑질에 끌어들이며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하고, 권력을 확인하고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함께 병원놀이를 하는 친구에게 “너는 이제부터 왼발을 다친 거야. 왼발 절어”라고 서슴없이 명령하기도 한다. 또래 무리에서 배제되면 그야말로 지옥이므로, 어떻게든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소심하고 무기력했던 민선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아이로 만든다. 작가는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민선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어른 못지않게 복잡한 한 아이의 내면을 거짓 없이 그렸다. 덕분에 독자들은 민선이 이 모든 부조리와 편견을 마주하고 마침내 어른이 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오래된 성장의 지층을 돌아보고,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깨닫는다. 독자들은 잊힌 유년을 복원한 『수영장의 냄새』를 통해 한때 아이에 불과했던 자신과 만나 그 아이에게 따뜻한 포옹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자라주어서, 조금 부족할지언정 드디어 지나온 과거를 돌아볼 줄 아는 어른이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목차


1화
2화
3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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