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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봄날
  • |
  • 반비
  • |
  • 2019-11-29 출간
  • |
  • 428페이지
  • |
  • 146 X 205 X 29 mm / 514g
  • |
  • ISBN 9791190403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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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그들이 산 것, 내가 팔지 않은 것
기나긴 터널 끝에서 증언하는 생존과 치유의 이야기

“한국 남성들의 성폭력 문화와 놀이 문화가 얽혀 있는 성매매라는 거대한 산업 구조에 압사되지 않고 살아남은,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은 한 여성의 이야기.”―이나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성매매 경험 당사자인 작가의 이야기는 구체적이며 담담하다. 그래서 힘이 세다.”―최진영(소설가)

“성착취 카르텔을 눈앞에 두고 ‘강제냐 자발이냐’, ‘착취냐 아니냐’라는 불필요하며 사악한 질문이 또 떠오른다면 이 책부터 완독하기를 권한다.”―김홍미리(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이것은 당신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과연 성매매가 성매매 자체만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20여 년간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이 써내려간 삶의 기록이다. 저자 봄날은 열여덟 살에 성매매 업소에 유입되기까지, 그리고 그 후 업소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증언한다.
저자가 기록한 삶의 경험은 많은 한국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처하게 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서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가계를 짊어져야 했던 상황, 가족 내 성차별과 아버지의 가정폭력, 청소년 여성 노동자로서 겪은 부당한 노동착취, 저개발된 지방 도시, 직장 내 성폭력과 잘못된 사건 처리, 자원이 없는 젊은 여성이 당하게 되는 성 착취.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여성들이 생애단계마다 겪게 되는 전형적인 피해의 경험들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들이 한 여성의 삶에서 어떻게 서로 얽히고 교차하면서 성매매에 유입되고 또 빠져나오기 힘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 책은 개인의 생애사를 통해서 성매매가 결코 특수하고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며, 한국 사회의 수많은 젠더 이슈들이 첨예하게 만나는 지대임을 보여준다. 저자가 세밀하게 기록한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빈곤, 성차별, 노동 문제, 지역 간 격차, 남성들의 성폭력적 놀이문화 등이 성매매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나는 20여 년 동안 성매매를 경험한 여자입니다. 내게 성매매 경험 당사자라는 정체성은 내 몸의 일부와 같기에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성매매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가난한 집안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그 뒤에는 불어나는 빚을 갚기 위해서 빠져나오기 힘든 긴 터널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내게도 누군가의 딸로, 보살핌 받아야 할 어린 학생으로, 가난을 짊어진 여공으로 살아왔던 삶이 존재합니다.(7)

“동생들은 어쩔 거냐?” 그 한마디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자식의 앞날을 위한 교육보다 먹고사는 것이 우선인 부모 앞에서 아무리 고집을 피워봤자 소용이 없었다. 이 집안에서 나의 존재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내가 희생함으로써 동생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했다. 결국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자퇴서를 제출하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22)

아버지와 엄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일할 공장을 물색하고 있었다. 당시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의 3저 시대였기에 한국 경제는 호황이었고, 저임금 덕에 생산 공장들은 활기를 띠었다. 내가 살던 도시에는 신발공장, 고무공장, 봉제공장이 많이 생겨났고 작은 인원으로 하청을 하는 공장들도 생겨났다. 생산량은 많고 일할 사람이 없어서인지 구인광고가 넘쳐났다. 나는 봉제공장에 취업해 소위 ‘공순이’가 되었다. 그때의 내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이었을까? 아마 나는 그 순간부터 내 삶이 아닌 남의 삶을 대신 살았던 것은 아닐까.(24)

내가 20여 년간 경험한 성매매 업소는 나를 때린 아버지와 어린 나를 성추행했던 삼촌과 나를 강간하며 웃던 그놈, 임신한 나를 버리고 간 군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46~47)

아버지는 오히려 얼굴이 좋아보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이제 술을 안 마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의 말에 아버지는 웃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싫었고 불편했다. 집으로 오지 말고 밖에서 엄마만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76)

마담의 말에 따르면 업주는 그동안 익명으로 기부와 후원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익명으로 하는 이유는 세상에 드러나기 싫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원자를 밝혀야 하는 곳은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쓰지만 시에서 후원자에게 상을 준다고 연락해도 받으러 가지 않는다며, 술을 마시러 오는 공무원들이 직접 가져다준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빚이 많은 아가씨들을 데려와 업소에서 일을 시키고 선불금이자, 숙소비에 지각비, 결근비를 다 받아내고, 외상 술값과 카드 수수료까지 아가씨들에게 물리고 안주와 술을 재사용해가며 돈을 벌어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152)

“여기 첨 왔을 때 마담이 증명사진 한 장 달라고 하지 않더냐? 그 사진, 공항 보안팀에 가 있어. 업주랑 아주 친한 사이인가 봐.” 나는 너무 놀랐다. 증명사진을 달라고 했지만 이런 용도로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비행기를 타려고 티켓을 끊으려 인적사항을 적는데 공항 직원이 다가와 잠시 같이 가자고 했다며 그 아가씨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그 아가씨는 이제 자신은 어디론가 팔려갈 것 같다고 하며 여기보다 지옥이 있겠냐고 말했다.(155)

벽에는 장기매매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전화번호를 적어오지 못해서 머릿속으로 외워 집에 돌아와 수첩에 적어놓았다. 다음 날 장기를 팔면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장기매매 스티커에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한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장기를 팔아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마저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팔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전부 팔아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은 나 스스로를 더 원망하게 만들었다. 부모 잘못 만난 죄, 강간을 당한 죄, 임신을 해서 차인 죄, 모든 것이 내 죄였다. 더 비참한 것은 내일이 없는 이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177)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때 아가씨 한 명과 아줌마 한 명이 같이 들어왔다. 아가씨는 옷을 벗어서 옷장에 넣고 열쇠를 돌려 잠그더니 옆에 있던 아줌마에게 옷장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 아줌마는 옷장 열쇠를 들고 나가며 “목욕 다 하면 전화해.”라고 말했다. 이곳은 유리방, 사창가 옆 목욕탕이라 아가씨들이 목욕탕에 간다는 핑계로 도망갈까 봐 낮 이모들이 직접 따라오는 것이었다. 아가씨들이 다른 곳으로 외출할 때도 낮 이모들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202)

엄마는 몇 년 전에 보았을 때보다 몸이 안 좋아 보였고 아버지는 여전했다. 나는 엄마보다 안색이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엄마에게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건넸다. “네가 무슨 돈이 있냐.” 엄마는 미안해하며 돈을 받았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돈을 얼마나 주면 엄마가 편해질까? 늙고 병들어가는 엄마의 손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228)

당사자의 육성으로 고발하는 성매매 현장의 착취와 폭력

‘버닝썬 게이트’는 연예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남성 카르텔이 자본을 불려나가는 데에 어떻게 성접대를 이용하는지 보여줬다. 최근 주거지역이나 초등학교 인근까지 퍼져 있는 오피스텔 성매매에 관해 집중 보도되며 한국 사회 곳곳에 성매매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여성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는가, 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는가, 왜 벗어나기 어려워지는가 하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는 20여 년간 룸살롱, 성매매 집결지, 보도방, 티켓다방 등 여러 업종을 전전하며 직접 겪고 목격한 성매매 현장의 구체적인 현실을 전방위적으로 고발한다.
저자의 기록은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여성들의 발목을 잡아 탈성매매를 어렵게 만드는 선불금이 왜 불어나게 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업주들이 여성을 업소로 데려올 때 미리 주는 선불금은 1할, 많게는 2할까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이며, 이들은 ‘영업’에 드는 모든 비용, 업소에서 입는 의상부터 강요되는 성형수술 비용까지 여성들에게 고스란히 부담하게 한다. 더불어 미용실부터 직업소개소, 사채업자, 심지어 점집까지 성매매 업소 주변의 산업 생태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여성들을 착취하며 돌아가는지도 고발한다. 저자는 구매자들이 여성들에게 휘두르는 신체적, 언어적 폭력 또한 낱낱이 밝힌다. 이들의 이런 행태는 돈을 냄으로써 여성의 서비스, 신체, 인격까지도 모두 ‘샀다’고 여기기 때문임을 꼬집는다. 또한 경찰을 비롯한 여러 공적 기관과 성매매 업소의 깊은 유착에 대한 고발은 여성들이 성매매 현장에서 당하는 폭력이 왜 제대로 해결되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기록한 현실은 성매매가 ‘강제냐 자발이냐’와 같은 단순한 질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임을 알려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현장에서 온 목소리’는 성매매를 둘러싼 다방면의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성매매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논의를 발전시켜나가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마담은 겉옷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자는 속옷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속옷은 꼭 세트로 입으라고 했다. 속옷을 세트로 입지 않은 아가씨들에게는 “네가 때밀이 이모냐?”라면서 면박을 주었다. 속옷조차도 업주나 마담이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존재는 뼛속까지 성매매 여성임을 알려주었다. 내 몸은 구매자들 기분을 맞춰주는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업주나 마담은 내 마음대로 내 몸을 꾸밀 수 없게 했고, 어떻게 내 몸을 다뤄야 하는지 철저하게 교육시켰다.(71)

여자 업주는 몇 군데 매장을 말해주며 그곳에 가서 옷을 사라고 했다. 홀복 매장과 업주는 서로 돕는 사이였다. 업주는 홀복 매장을 이용해 카드깡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홀복 매장은 업주에게 홀복을 많이 팔 수 있도록 로비를 하는 등 이익으로 엮인 사이였다. 매장에서 홀복을 두 벌씩 샀고, 외출복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옷을 몇 벌 더 샀다. 화장품도 몇 개 샀다. 여자 업주는 “진작 꾸미고 그러지 그랬냐?” 하고 흡족해했다.(92~93)

업주는 선심 쓰듯 원래는 하루에 50만 원씩인데 임신중절 수술을 했으니 하루 30만 원만 받겠다고 했다. 30만 원씩, 3일 90만 원이라는 계산에 어이가 없었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니까 업주는 “야. 몸뚱이가 네 밑천인데 네가 관리해야지 누가 관리하냐? 누가 임신하래? 그리고 당분간 2차도 못 나가는데 손님은 어떻게 가려서 받냐?” 소리를 질렀다. 수술비에 결근비에, 빚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81)

쓰레기통에는 담배꽁초, 먹다 만 안주, 가래, 침 등 쓰레기와 우리가 버린 술이 섞여 있었다. 나는 술을 거르는 작업을 하는 아가씨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쓰레기통에서 걸러지는 술의 색깔은 붉다 못해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한 남자가 술을 잔에 따르라고 시키고 아가씨들에게 마시라고 했다. 아가씨들이 인상을 쓰며 술을 못 마시고 있자 남자는 거친 욕을 했다. 웨이터에게 “주인 불러 와!” 하며 고함을 쳤다.(100)

업주와 보살의 말에 현혹되어 몸 안 아프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굿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궁금했지만 함부로 물어보지 못하고 보살의 눈치만 봤다. 보살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250만 원을 불렀다. 갚을 빚이 많은 내게는 큰돈이라 얼른 대답을 못 하고 있자 업주는 그 정도는 소개소 삼촌에게 융통할 수 있을 것이라 꼬드겼다. 보살도 굿하고 나면 그 돈은 돈도 아니라며 맞장구를 쳤다.(128~129)

업주는 희한하게 수익을 올렸다. 과일안주, 화채, 마른안주 등은 늘 재사용되었다. 그 사실을 아는 아가씨들은 안주를 잘 안 먹었다. 맥주는 재사용하기 어렵지만 양주의 경우 구매자들이 마시다 남은 술을 모아서 새 병에 담아냈다. 주류회사에서 위조 방지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 기술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업주는 가짜 양주를 만들어냈다. 내가 매일 두통을 호소하고 구토가 심해서 약을 먹었는데도 소용이 없어 괴로워하자 S가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145)

큰 마담이 그달 매상이 많이 올랐다며 ‘주사 이모’를 불러서 아가씨들에게 주사를 맞히기도 했다. 2차를 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질염과 골반염을 앓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이 방법은 업주만의 아가씨 관리법이었다. 마담은 염증 주사라고 했지만, 그 주사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고 맞는 아가씨는 없었다.(169)

그 아가씨는 “보건소에서 일부러 한 업소에만 계속 이렇게 하는 것은 업주에게 돈 봉투 들고 오라는 뜻이에요.”라고 말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나 싶어 돈을 갖다 주는 것을 봤냐고 묻자 그 아가씨는 자기도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업주가 보건소에 인사를 하러 가면 몇 개월은 그 업소에서 성병 확인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때는 경비 아저씨가 새벽에 보내줬지만 이번에는 유리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쉬고 싶었다. 그 아가씨도 여기서 쉬어야겠다고 했다. 보건소 당직실에 오는 아가씨들이 정말 성병에 걸린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210)

우리를 본 마담은 “야, 돈 벌어먹고 사는 게 쉽냐? 손님 비위 하나 못 맞추는 것들이 무슨 일을 하냐? 얼른 꺼져.” 하고 화를 냈다. [……] 홀복을 입은 채로 업소를 나가려는데 업소 상무라는 사람이 “손님 비위를 맞춰야 할 것들이, 어찌 손님이 너희 비위를 맞추냐? 프로 의식이 없네, 이것들이.”라고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상무의 말에 더욱더 화가 났다. 프로 의식? 상무가 말하는 ‘프로’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250)

일주일이 지나자 업주는 남자 네 명을 데리고 와서 접대를 했다. 나는 눈치로 이 남자들이 경찰인 것을 알았다. [……] 업주와 마담은 그 남자들이 어느 회사의 부장과 직원들이라고 소개했지만 나의 직감은 적중했다. 그 남자들은 세 번 정도 업소에 와서 2차를 두 번 나갔다. 그 덕분인지 업소에 경찰 단속은 없었다. 그러나 상무는 계속 업소 단속 교육을 하면서 성매매특별법이 통과되면 다들 죽는 거라고, 너희들은 선불금을 당장 내놔야 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했다. 아가씨들은 상무의 말을 듣고 겁이 나는지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선불금을 갚든 못 갚든 업소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당장 내일을 내다보기 힘든 삶인데 죽는 것이 무서울까?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더 비참한 것을.(262~263)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구매자에게 맞아서 피를 흘려도 나는 인권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 나는 오랫동안 내가 겪은 구매자들의 더러운 행위들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라고만 생각하고, 그 폭력을 혼자서만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은 성매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폭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332~333)

생존자 여성이 써내려간 담담하고 힘 있는 치유의 기록

이 책은 긴 시간에 걸친 폭력 안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이 써내려간 힘 있는 회고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러 번 죽음을 생각할 만큼 앞이 보이지 않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면서도 결코 무력한 피해자로만 남아 있지 않는다. 수많은 자책과 자학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자신이 겪은 폭력을 성찰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삶을 살아낸 저자의 기록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준다.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저자가 계속해서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저자는 꿈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하염없이 걷는다. 터널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한 발짝만 더 가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환하게 빛나지만 그곳으로 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긴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걸어가는 이 꿈은, 저자가 무수한 장벽과 상처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어온 인생과 꼭 닮아 있다. 착취가 정당화되고 당연시되는 환경 안에서도 자신이 처한 부당함을 똑바로 인식하고, 다른 여성들을 돌보고, 상처를 직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지나온 삶의 경험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에 감동적이다.
저자는 탈성매매 후에도 계속해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과거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들려준다. 정신적 고통의 후유증으로 아파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며, 다른 성매매 여성들을 돌보고, 때로는 그들 인생의 마지막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아직도 과정 속에 서 있는 사람임을 힘주어 말하는 이 생존자 여성의 이야기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에 맞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2차가 빨리 끝나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미친 듯이 깡소주를 마셨다. 취하기는커녕 더 또렷해지는 내 감정들을 버리고 바다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내 삶이 원망스럽고, 아픈 내 마음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외로움이 싫었다. 술집 여자로 늙어가는 내 모습이 저주스러웠다. 이대로 바다로 뛰어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시커먼 바다로 차마 몸을 던지지 못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없이 울었다.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을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143)

길 건너 큰 마트가 보였다. 유리방에서 보낸 시간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트로 들어가니 그동안 다른 세상을 살아와서인지 못 보던 상품들이 꽤 많았다. 유리방 업소 근처 마트에는 주로 아가씨들이 일을 하면서 필요한 상품을 팔았다면, 이곳에는 이제 내게 필요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마트를 둘러보며 상품의 가격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신상품 앞에서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며 제품 설명을 읽어보기도 했다. 어느새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리고 눈길 가는 제품을 들여다봤다. 이제는 무리한 다이어트도 할 필요가 없어진 나는 라면과 간단한 요깃거리,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들고 마트를 나섰다. 양손 가득 먹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 이 길이 너무나 행복했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224~225)

꿈속에서 또 터널 속을 걷는다. 이번에는 간간히 불빛이 보이기도 했다. 웬일로 불빛도 보이는지, 언제쯤이면 이 꿈도 끝날 것인지. 터널 속을 걷는 나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발에는 곧 벗겨질 것처럼 사이즈가 큰 신발을 신고 터벅터벅 걸었다. 걷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몰랐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른 채 그저 불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227)

그날이 그 동생과 마지막으로 보냈던 시간이었다. 일주일 뒤 그 동생이 자살했다고 전해 들었다. 허탈했다. 나를 만나러 온 그날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 빚이 뭐라고 죽기까지 하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거야?”라고 묻던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먼저 떠나간 그 동생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 동생이 죽어서 선불금을 받아내지 못해 억울하다고 했다던 업주는 장례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264~265)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담당 상담원과 식사를 했다.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담당 상담원에게 이 직업이 잘 맞느냐고 물었다. “이 일요?” 담당 상담원은 자기와 이 직업은 너무 잘 맞는다고 하면서, 일을 하며 많이 배운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가 “누가 좋아서 일하나. 다 먹고 살려고 마지못해 하는 거지.”라는 말이었다. 담당 상담원의 대답에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예상을 깨는 그 한마디가 감겨 있던 내 눈을 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295)

전국 여러 곳에서 집결지가 폐쇄되기도 했지만, 내 눈으로 목격한 성매매 업소는 너무나 견고했다. 아직도 호황중인 집결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재개발뿐이었다. 키스방, 귀 파주는 방, 오피스텔 성매매, 조건만남, 채팅 앱 등 더욱더 진화된 성매매 현장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성매매 업소 후기 사이트, 업소 광고 등으로 벌어들이는 그 많은 돈이 흘러가는 경로의 마지막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 분노하는 마음을 달래기 힘들었다.(377)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이제는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아프고 고달팠던 내 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시장을 둘러보면서 음식 재료를 장만하고, 상인들에게 조리법을 물어봐가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밥을 잘 못해서 설익기도 하고, 죽밥이 된 적도 있고, 음식을 까맣게 태우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게 즐거웠다.(379)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참 많은 죽음을 보고 산다고 생각했다. 업소에 있을 때 가까이 지내던 동생이 죽었고, 간접적으로 성매매 여성의 사망 소식을 접할 때도 있었다. 그 죽음을 바라볼 때면 어떨 때는 내가 죽은 것 같았고, 어떨 때는 그곳에 두고 와서 미안한 마음이었다.(383)

그렇게 웃는 그녀에게 죽음을 이야기하기가 힘들어 입을 떼지 못했다. 어릴 적 가족들에게 당한 폭력을 담담히 말하는 그녀가 애처로웠다. 그녀가 살아갈 곳은 거리였다. 어린 나이에 그녀가 처한 환경들이 결국 성매매로 이어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 되었다. [……] 조용히 나의 말을 듣던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울지 말아야 한다고 속으로 외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으니 그녀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녀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다.(388)


목차


추천의 말
책을 펴내며 | 나는 왜 말하는가

1부 긴 터널

1장 “어떻게 성매매를 하게 되었나요?”
2장 열여덟 살에 유입된 업소
3장 바다 건너 낯선 섬으로
4장 유리방 골목
5장 “우리는 어차피 진상처리반이야.”
6장 시골의 티켓다방 아가씨로

2부 나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

7장 나의 과거에 살고 있는 업주
8장 돈으로 여성의 인격을 사는 자들
9장 얼굴 없는 여자와 얼굴 없는 남자
10장 나는 누구일까?
11장 지난날과 이별하기 위해
12장 몸이 말해주는 트라우마
13장 그녀들을 떠나보내며
14장 경험의 재해석
15장 성매매, 그리고 성폭력

에필로그 | 나는 과정 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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