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다양한 창작적 실험을 시도해
20세기 한국 희곡의 스펙트럼을 한층 다채롭게 만들었다!
흔히 채만식의 희곡 창작은 그의 문학적 본령에서 벗어난 부수적인 그 무엇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인식의 빌미는 채만식이 제공한 것이다. 채만식은 소설이 아닌 희곡 또는 희곡과 유사한 글쓰기 형식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희곡으로 자신 있게 명명하기 어려운 텍스트들에 ‘대화소설’, ‘촌극’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채만식이 명명한 의도를 존중한다면 1부에 포함된 ‘대화소설’ '조고마한 기업가'(1931.12)와 '부촌'(1932.7)은 ‘대화’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이기에 희곡집에 수록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아마도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쓰고자 했던 실험 의식의 연장선에서 희곡 창작으로까지 확장된 것이 아닐까?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희곡을 창작해 보니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성에 대한 탐색의 열망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채만식은 서사적인 것과 극적인 것의 넘나듦에 대해 같은 시기의 작가들 중 가장 오랜 기간 관심과 실험을 지속했다. 장막극 5편 중 2편이 동명의 '심봉사'인데, 서막과 7막 19장의 1936년 텍스트와 3막 6장의 1947년 텍스트는 채만식의 극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추적하는 데 의미 있는 자료이다.
만일 채만식이 자신의 문학적 명성만을 의식했다면 굳이 희곡까지 손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채만식의 희곡이 도달한 예술적 성취가 그의 소설과 동일한 위상을 점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외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많아야 서너 편의 희곡을 남긴 일제 강점기의 다른 소설가들의 경우와 달리 채만식의 희곡 창작은 본격적인 차원에 속한다. 채만식이 어떤 의도에서 이러한 창작 실험을 지속하였는가를 추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페터 손디는 극적인 것에 서사적인 것이 개입하는 것을 극의 위기로 보았지만, 채만식은 양자의 충돌 또는 혼합을 즐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서사적/소설적인 것과 극적인 것의 변별성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그 감수성이 다양한 창작적 실험을 감행하도록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그로 인해 20세기 한국 희곡의 스펙트럼은 보다 풍요롭게 됐다.
이 책의 1부는 1927년부터 1937년 동안의 단막극 23편을, 2부는 1930년에서 1947년 동안의 장막극 5편을 수록하였다. 부록 좌담회는 당시의 작가들이 희곡의 인물처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채만식의 육성을 들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록하였다. [엮은이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