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項羽)가 용맹과 고집의 화신이라면, 유방(劉邦)은 인덕과 포용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항우가 인간미 넘치는 단순 직선형이라면, 유방은 능수능대한 임기응변형에 가깝다. 이 두 영웅이 불꽃을 튀기며 펼치는 천하 쟁투는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의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병불염사(兵不厭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싸움에 정도(正道)는 없다. 정도는 필패(必敗)로 이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속고 속이는 권모술수의 세계에서는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음을 당할 뿐이다.
그러나 그 속을 맥맥히 흐르는 하나의 진리는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순리(順理)’가 아닐까 한다. 순리야말로 바로 하늘의 뜻일 것이다.
이 책 <초한지(楚漢誌)>는 난세 영웅들의 갖가지 인간상을 통해 순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순리에 따르는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장량의 지략(智略)과 한신의 용병(用兵), 그리고 범증의 책모(策謀)는 읽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동시에 그 속에 순리에 대한 해답을 얻을 열쇠가 숨겨져 있다.
신의와 배신이 엇갈리고 용력과 지혜가 한데 어울리며 빚어내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는 얼음보다도 차고 불꽃보다도 뜨겁다. <초한지>가 중국 역사 소설 중에서 ‘가장 차갑고도 뜨거운 소설’로 일컬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한 중국 역사 소설을 시대적 배경에 따라 나눈다면, <초한지>는 <열국지(列國誌)>와 <삼국지(三國志)>의 중간쯤에 해당된다.
따라서 오늘날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 중의 하나인 <삼국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초한지>, 나아가서는 <열국지>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나간 한 시대를 깊고 폭넓게 이해함으로써 그것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오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