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대표 사진가들을 엄선해 그 생애과 작품을 소개하는 ‘열화당 사진문고’는 아담한 판형에 부담 없는 가격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다. 한 권씩 사 모으는 재미를 붙였다는 분, 출근길이나 여행길에 펼쳐보며 위안을 삼는다는 분, 가까운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했다는 분 등, 이 문고판 사진집이 가진 매력은 특별하다. 비록 몸집은 작아도 그 구성은 전문적이고 알차다. 당대의 뛰어난 비평가나 문인이 쓴 작가론, 주요 작품들과 거기 덧붙여진 사진설명, 사진가의 전 생애를 정리한 연보까지 ‘사진예술의 작은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하다. 2017년 41번째권부터는 새로운 디자인과 제본으로 기존의 단점을 개선하고, 이후 출간되는 개정판과 신간에 이를 적용했다. 이번에 출간하는 『워커 에번스』 개정판 역시 새 표지로 단장하고 오류 및 최신정보 등을 보완하여 다시 내놓는다.
워커 에번스(Walker Evans, 1903-1975)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 지방 소읍에 끼친 영향을 기록한, 역사상 가장 훌륭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같은 시기 비슷한 작업을 한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어떤 메시지를 담거나 스스로를 하나의 양식에 묶기도 했던 이들의 경향을 거부한 채, 에번스는 사진으로부터 감정을 제거하고 대상 인물을 하나의 표본처럼, 거리 풍경을 조각이 장식된 벽처럼, 초상사진을 현상 포스터처럼 만들었다. 그의 인물들은 모두 감정 표현을 현저하게 자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저마다의 모습은 묘한 아름다움을 발하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에번스는 예술처럼 드러나지 않게 예술을 이루어내는 마법사와도 같은 천재성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