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에서는 한국시의 좌표 찾기에 초점이 놓인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의 한국시의 현황을 살피며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있는 글들이다. 특히 ‘세월호’에 대한 한국시의 대응을 심도 있게 읽어나간다. 또한 그러한 변화의 질곡 속에서 비평가로서의 자의식이 실린 문학의 관점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흐른다. 그것은 예술적, 미적, 윤리적, 사회적인 총체적 범주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최근의 한국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문학, 특히 시가 대중적인 영향력을 회복한 것과, 문학장(場)에서 ‘비평’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비평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덧붙인다.
제2부에서는 젊은 신예시인들의 시 읽기를 하면서, 감정, 서정, 정동(affect), 알레고리 등 문학의 기본적 개념들에 대한 재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가령, “우리는 ‘분노’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정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규정은 오늘의 문학, 특히 시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몇몇 시인이 작품에 분노의 감정을 투사하고 있으나, 지금 한국시의 주력으로 평가되는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분노’의 감정이 표면에 드러나는 장면을 찾기는 힘들다.”는 진술은 오늘날 달라진 문학지형 속에서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비평의 원리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제3부에서는 최승자, 송재학, 나희덕, 유강희, 함기석 등의 시 읽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시단의 중견시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다양한 문학적 경향은 한 비평가가 결코 한데 어우르기 쉽지 않은 시도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고봉준의 비평 의식이 이전 시대에 횡행했던 문학적 경향에 대한 예각화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로운 한국시에 대한 내재적인 고민이 물씬 느껴지는 지점이다.
시는, 특히 한국시는 매 시기마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발 빠른 응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고봉준은 한국시에서 한국의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 충만하게 담겨 있는 예술적 이해를 읽어내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럴 때마다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그것마저 끌어안으며 한국시에 대한 반성과 전망을 담아 미래의, 즉 문학 이후의 문학을 고민하고 사유하는 비평의 존재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고봉준의 이번 평론집은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