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우리글로 사유한 순우리 철학의 역사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의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학한 고려와 조선 시대 양반들의 철학은 한국철학이 아니다. 이 땅 역사의 주체는 “홀로 있는 흩어진 ‘낱사람’의 덩어리로서의 민중이 아니다. 더불어 있는 ‘우리’로서의 민중이다.” 바로 그런 민중이 철학의 주체가 되는 철학이 진짜 우리 철학이라는 전제 아래 이 책은 민중 스스로 ‘나’의 철학이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는 이들의 철학을 살펴봄으로써 대한민국 철학의 역사를 새로이 정립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위계의 사회였던 조선을 제대로 뒷받침해준 성리학과 이후 사민평등 사상을 가진 양명학의 전개를 소상히 살펴보며 한국철학의 등장 배경을 조망한다. 그리고 《주교요지》와 같은 서학(西學)서를 통해 백정과 노비도 더불어 ‘우리’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상을 만나 평등의 희망을 품음으로써 한국철학이 ‘회임’했음을 알리며, 한국 민중의 현실과 민중의 치열한 주체적 고민 속에서 수운 최제우의 한글 사상서 《용담유사》가 한국철학의 출산을 알렸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중국과 일본이라는 이웃 국가와 오랜 시간 다양한 관계 속에 있어왔음을 상기하며, 한국철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 그 조건으로 있었던 일본의 난학(蘭學)과 양학(洋學), 그리고 중국에 유입된 유럽 사상을 살펴본다.
한국철학은 한국을 구성하는 일부 계층만의 자기인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 민중 전체의 자기 돌아봄의 행위여야 한다. 이 땅의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이 땅 이 민중의 눈물에 고개 돌리지 않은 철학만이 이 땅 민중의 철학으로 뜻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뜻을 가진 한국철학의 다양한 몸짓을 이 책은 윤동주, 류영모, 문익환, 장일순, 권정생, 그리고 함석헌의 철학을 정리함으로써 대한민국철학의 역사를 갈음한다.
대한민국철학의 나아갈 길
영웅을 기다리는 인간에게 철학은 없다. 철학은 게으름뱅이에게 주어지는 지적 허영이 아니다. 철학은 지독한 고난 가운데 스스로 돌아보며 스스로의 부재를 자각하며 그 부재를 채울 충만을 향해 달리는 ‘고난의 주체’에게 주어진다. 고난의 주체만이 당당히 진짜 철학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의 부재를 강요받은 민중의 독립운동이 한국철학이어야 한다. 식민지 조선이란 상황에서 임시정부가 철학 속 관념으로 존재하는 한국을 현실 공간 속 실태가 되기 위해 싸우며 존재하였듯이, 지금 이 땅의 철학자는 아직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한국철학을 위해 자신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독립운동을 이어가야 한다. 아직 한국철학은 독립운동 중이다. 오랜 시간 대학(원) 안과 밖에서 지중해 연안 중세철학을 공부해온 저자 유대칠은 서유럽 중심의 중세철학이 아닌 서유럽, 동유럽, 이슬람, 유대의 중세철학‘들’을 연구하며 어느 순간 한국의 형이상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홀로 있음’과 ‘더불어 있음’이란 화두를 잡고 ‘뜻’ 있는 한국철학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첫 결실로 이 책 《대한민국철학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