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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헨델

런던의 헨델

  • 제인글로버
  • |
  • 뮤진트리
  • |
  • 2020-03-13 출간
  • |
  • 524페이지
  • |
  • 140 X 210 X 33 mm /653g
  • |
  • ISBN 9791161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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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헨델의 오페라 집중 탐구
17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전문가이자 지휘자이며 영국 BBC에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저자 제인 글로버가 헨델의 런던 시절과 그의 오페라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풀어냈다. 세계 여러 곳에서 헨델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메시아〉의 경우 100회도 넘게 공연한 헨델 음악 전문가인 저자는 18세기의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헨델의 작품을 분석하고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까지 주목함으로써, 헨델의 런던 시대를 매우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헨델의 대표작이 〈메시아〉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왕궁의 불꽃놀이〉와 〈수상음악〉도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그러나 헨델 스스로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한 장르는 오페라였고, 그가 평생 46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말년에 대작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작곡가로서의 명예에 정점을 찍고 그에 걸맞은 숭고함으로 삶을 마감했기에, 오페라에 열정을 바쳤던 질풍노도의 세월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까. 또는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오페라 단장으로서의 그의 활동사가 호사가들에게 그의 작품보다는 외적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 탓일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제 우리는 음악 학자 제인 글로버의 연구를 통해 헨델의 오페라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휴스 칼리지에서 17세기 베네치아 오페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글로버는 수년 동안 전 세계의 대학과 연구소의 도서관들에 소장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헨델의 오페라들을 연구하여, 이미 나와 있는 헨델 전기들과는 다른 매우 독창적인 헨델 연구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헨델이 무엇보다 사랑하고 편안함을 느꼈던 분야, ‘오페라’
헨델에게는 일찍부터 오페라의 맛을 보여주고 매력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향 할레 시절 친구이자 작곡가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 헨델에게 오페라를 작곡해보라고 격려했던 함부르크 겐제마르크트 극장 지휘자 라인하르트 카이저, 동료 작곡가이자 다재다능한 음악가 요한 마테손이 그들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헨델을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초대한 토스카나 대공의 아들도 있었다. 제인 글로버는 헨델이 함부르크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연주자로 활동하며 여러 사람을 만난 그 시기를 “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다”고 표현한다.

헨델의 호기심 많고 활달한 성격도 그가 기악곡보다 오페라에 끌렸던 데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머문 4년 동안 헨델은 이탈리아 전역의 우수한 오페라 공연을 즐기며 이탈리아 가수들에 대해 배우고 동료 및 지지자들과의 인맥을 구축해나갔다. 그러한 자산은 훗날 헨델이 런던에서 오페라를 작곡하고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 귀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헨델은 오페라를 위해 살았고 그의 모든 대외적 활동은 오로지 오페라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페라를 좋아했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에 이미 오페라에 관해 상당한 경험과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만들었고, 삼십 대부터는 매년 거의 두 편 이상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을 보면 열정과 실력 중 어느 것이 더 앞섰다고 말하기조차 어렵다. 더구나 직접 해외에까지 가서 가수를 발굴하고 훈련하고, 오페라단 단장까지 맡아 작곡가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총감독의 역할을 해냈던 그 세월을 책을 통해 따라가다 보면, 헨델이 창작에의 대단한 의지와 무한한 에너지를 지닌 음악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런던에 처음 도착할 때 스물다섯이었던 그는 이미 가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서 최고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가수의 목소리를 한번 들으면 그 목소리에 딱 들어맞는 음악적 재단을 해내는 비상한 능력도 갖고 있었다. 가수들에게 맞추고, 가수들의 공백을 메꾸고, 스타 가수들의 변덕과 이탈에 대응하느라 곡을 고치고 또 고치는 모습에서는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헨델이 그토록 다양하고 까다로운 기교가 필요한 아리아들을 쓸 수 있었던 것 역시 최상급의 가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니, 그들로 인한 그 모든 환희와 고통이 대작 〈메시아〉를 탄생시킨 촉발제가 되었으리라.

헨델이 독일을 떠나 50여 년을 살았던 런던과 런던 사람들
스물다섯에 런던을 처음 여행하고 2년 후 삶의 뿌리를 아예 런던으로 옮긴 헨델은 평생 다양한 후원자들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강력한 후원자는 단연코 하노버 왕가 사람들이었다. 적극적인 후원자였던 하노버 가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런던으로 떠났었으나 몇 년 후 하노버 가문은 영국의 왕위를 차지했고, 그렇게 다시 만난 하노버 가문은 헨델의 음악 인생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18세기 초 영국은 오페라에 흥미를 느꼈던 헨델을 끌어당겨 정착시킬 만큼 충분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정치적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유럽 전역에 퍼진 이탈리아 오페라의 유행은 런던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런 영향으로 수도 런던에는 이탈리아 성악가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다. 게다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오페라를 맛본 런던의 귀족들은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 이후 이렇다 할 작곡가가 없던 차에 런던에 온 열렬히 환영했다.

귀족들의 오페라 사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들은 회원권·시즌권·정기권 등 다양한 방식의 회원제를 통해 오페라 공연이 유지되도록 지원했다. 자신들이 헨델을 위대한 음악가로 만들었다고 할 만큼, 오페라를 즐기고 지지하는 런던인들이 없었다면 헨델 역시 그렇게 오래도록 오페라에 열정을 쏟지 못했으리라.
또한, 헨델이 놀라운 속도로 그 많은 작업을 해낼 수 있었던 데는 그를 뒷받침해준 개인 사단의 공이 컸다. 대본 작가 하임, 대를 이어 충성한 악보 필사자 스미스 부자, 그리고 헨델의 모든 악보를 출판한 월시 가문은 늘 헨델과 함께하며 그의 속도와 열정을 감당해냈다. 그 시대에 이미 그런 시스템이 가동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이렇듯 헨델에게 런던은 숙명과도 같은 곳이었음에도, 헨델의 대작 〈메시아〉가 런던이 아닌 더블린에서 초연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영국을 떠날 결심을 하고 들른 더블린에서 〈메시아〉로 성공하지 않았다면 헨델은 그때 영영 영국을 떠날 뻔했으니, 어찌 보면 더블린에서의 〈메시아〉가 헨델을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게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영국인들이 보는 헨델
영국인들이 게오르크 프리드리히가 아니라 조지 프리데릭으로 부르는 헨델. 스물다섯에 〈리날도〉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연달아 걸작 오페라를 작곡해서 런던에 이탈리아 오페라를 뿌리내리게 한 작곡가. 50여 년의 세월을 런던인들과 함께했고 영국 음악의 기준이 된 음악인. 영국인들이 헨델을 어떻게 여겼던지는 글로버가 묘사한 헨델의 장례식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헨델의 장례식은 4월 20일 금요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시즌마다 자주 노래를 불렀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왕실 교회의 성가대가 크로프트의 장례 음악을 노래했다. 로체스터의 주교이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주임사제였던 재커리 피어스 박사가 예배를 진행했다. 〈런던 이브닝 포스트〉는 ‘3,000명 이상의 사람이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고, 〈유니버설 크로니클〉도 동의했다. ‘한 유명인을 기리기 위해, 주교 등 성직자들과 모든 합창단이 참석했다. 또한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엄청난 규모로 모였다.’”

또한 제인 글로버는 헨델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관여한 찰스 버니 박사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영국인들에게 헨델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헨델은 영국 태생은 아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영국 국민을 위해 썼다. 그는 50년 이상 영국 국민의 취향을 발전시키고, 교회와 극장 그리고 음악실에서 영국인들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훌륭한 음악을 영국인들에게 소개했다. 유행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서가 박수갈채를 이끌었고, 영국인들은 다른 기준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소용돌이 속에서 위대한 음악은 번창한다.”
30년 이상 런던을 음악으로 지배했고, 영국의 국민음악가가 된 헨델. 그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70편이 넘는 극작(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을 비롯해 종교 음악과 세속 칸타타, 기악곡, 건반 음악 등의 작품일 것이다. 52세에 뇌졸중을, 66세에는 시력 상실을 겪으면서도 삶의 마지막까지 음악에의 끈을 놓지 않았던 놀라운 창작에의 의지와 회복력은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다.
그는 작곡뿐만 아니라 불후의 명작을 공연하는 면에서도 최고의 전문성을 보여주었다. 가수에 대한 평가와 팀 구성, 재능 있는 예술가에게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한 방식, 그 많은 음악을 직접 리허설한 것, 작품의 시각적 요소가 음악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무대와 공간을 중시한 점 등, 그가 모든 면에서 영감을 발휘하고 최고 수준의 기준을 치열하게 추구한 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제인 글로버는 헨델의 음악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답게, 전기적 삶의 기록에 음악적 분석을 능숙하게 엮어내며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헨델의 작품을 다뤘다. 다른 장르에 비해 무대라는 현장성이 중요한 오페라 공연을, 그것도 300여 년 전의 상황들을 마치 실황 중계하듯 리얼하게 설명하고 풍부한 해설을 덧붙였다.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헨델이 고민하고 고려했던 수많은 요소도 소개했다. 그리하여, 헨델의 외적인 활동에 치우친 경향이 있는 우리의 시선을 독창적이며 영감으로 가득한 이 창조적인 예술가의 작업에 돌리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선율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리고, 궁금하게 만든다. 18세기 초에 헨델이 런던으로 옮겨오지 않았다면, 영국인들은 음악이라는 지적인 즐거움을 누구한테서 구할 수 있었을까? 헨델이 없었다면 이후 영국 음악의 역사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영국인이자 음악인으로서 헨델의 작업과 삶에 대한 저자의 공감과 존중이 결코 과하게 느껴지지 않거니와, 복잡다단하게만 느껴졌던 영국과 유럽대륙의 정치사를 음악을 축으로 이렇게 명료하게 설명한 저자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목차


ㆍ머리말 7
ㆍ참고 노트 12
ㆍ서문 14

01 초창기 19
02 1710년 런던 35
03 스튜어트 왕조의 말년 50
04 런던의 하노버 90
05 로열 아카데미의 발족 119
06 로열 아카데미의 운명 150
07 새로운 시작 207
08 새로운 종말 239
09 저항 286
10 회복과 재창조 338
11 메시아 383
12 단계적 축소 411
13 마지막 막 474

ㆍ후기 504
ㆍ감사의 말 505
ㆍ옮긴이의 말 507
ㆍ참고 문헌 510
ㆍ찾아보기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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