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세상의 디스토피아 판타지
“작가 마누엘라 살비는 이탈리아의 김동식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독자의 눈길을 끄는 자석 같은 매력이 있다.”
원고를 읽은 작가 정명섭이 무릎을 치며 내뱉은 말이다. 소설 같은 현실을 냉혹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리면서도 판타지를 연상시키는 짧은 글 속에 촌철살인의 유머를 녹여낸 작품의 감동은 팬데믹과 싸우며 고난의 강을 건너는 독자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유럽 국가 가운데 첫 번째 코로나 희생국인 이탈리아는 지난 3월 초 전 국민 이동제한명령을 내렸다. 저자는 자신의 집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소설의 주제로 여겨졌던 것이 갑자기 현실이 되자, 처음 며칠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지냈다. 그러던 중 작가적 사명감으로 자신이 겪고 있는 디스토피아 상황을 기록하기로 했다. 격리기간 동안 하루에 소설 한 편씩을 쓰자는 생각으로 발전하였다. 초인적인 노력으로 3월 15일부터 하루에 한 편씩의 소설이 생산되었다. 완성된 소설은 일주일분을 모아 이북으로 서비스되었다. 1회분 Covid-19: Storie dalla zona rossa - WEEK ONE에 이어 WEEK TWO, WEEK THREE, WEEK FOUR가 순차적으로 서비스되었다. 저자는 4월 11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모두 28편의 소설을 썼고, 이로써 Covid-19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인쇄본 책이 바로 출간되지 못한 것은 팬데믹으로 이탈리아 출판계가 공황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한국어본이 전 세계 최초의 단행본이 되었다.
봉쇄령 속의 레드 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비극적 디스토피아 현실을 작가는 상세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추적해간다. 고통을 못이겨 병원 창문으로 몸을 던지는 환자, 넘쳐나는 화장장의 시체, 강제 자가격리중인 주민들이 겪는 공황장애, 부모와 자식 그리고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바이러스를 둘러싼 세대간 갈등, 연금 수령을 위해 바이러스로 숨진 아버지의 시체를 은닉하는 비정한 자식, 팬데믹 병상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첫 키스…. 뿐만이 아니다.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는 국제음모와 가상의 0번 환자, 바이러스 확산범을 단죄하기 위한 제2차 뉘른베르크 재판 같은 추리소설 기법이 등장하는가 하면 판타지 기법을 사용해 코로나 이후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포스트 바이러스 세계를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하나하나의 장면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탈리아 비평가 안토니아 프란세스코는 작가가 “판타지라는 출구를 사용해 팬데믹 문학 장면을 창조해냈다”고 평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세계가 이 소설에서 위로받을 수 있기를 작가는 소망한다. 『소설 코비드19』는 팬데믹 속에서 피어난 사랑과 헌신, 국제연대에 바치는 문학적 헌정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미증유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오랜 봉쇄조치로 고통을 겪은 이탈리아 작가로서 코로나의 피해를 슬기롭게 극복한 한국에 깊은 연대를 느낍니다. 팬데믹이라고 하는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 세계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단결하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습니다.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지금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 개인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저의 소설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더불어 다양한 인간 군상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탈리아 작가이지만 세계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집필하였습니다. 우리가 같은 인간으로서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공포와 불확실성 속에서 글쓰기를 계속하는 일은 몹시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믿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견지하며 창작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의 독자들께 가없는 사랑을 보냅니다.
이탈리아에서
머리말
2020년 3월의 일이다. 전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의 작가인 나는 돌연 완전한 고립 속으로 내몰렸다. 대재앙을 다룬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반복되는 것으로 한동안 여겨졌던 주제들이 갑자기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처음 며칠은 불신과 불안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나머지 격리기간 동안 하루에 이야기 한 편씩을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자 상황이 좀 더 명료해지고 기분전환이 되었다. 뉴스, 과학 기사, 소셜 미디어에서 발견된 사실들이 작가의 상상 속에서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가상의 0번 환자,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미래, 그리고 팬데믹 기간 동안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장면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탄생한 이 소설 시리즈는 독자들로 하여금 환상적인 여행을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이 소설들은 세계적인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반유토피아적 고전소설과 현실세계의 장면을 혼합하였다. 상상력은 이러한 시기에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작가와 독자 모두가 머지않아 직면하게 될 가장 힘들고 어려운 도전을 이겨내도록 도울 것이다. 이 소설의 수익금 중 일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에든버러 로열 병원에 기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