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존재들이 있다.
보잘것없고 느린 벌레같이
늙을수록 꼬마 철학자가 되는 라바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52번가 횡단보도 앞
하수구 밑 작은 벌레, 라바
“오늘도 하수구 위에서는
온갖 찌꺼기들이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하수구 아래로 무언가를 흘리거든요.
이곳은 어둡고, 더럽고, 초라하죠.
우리는 하수구를 탈출하기도 했어요.”
숨이 컥 막히는 지하철 속에서 터질듯 꽉 끼인 채로, 또는 출 퇴근 버스 속에서 미친듯이 몸이 흔들리며. 그때 문득 지쳐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두 벌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기억하는 두 애벌 레는 그렇다. 땀 내음, 나른한 하품, 키득키득 웃음, 서러운 눈물……. 흔들리는 우리의 일상 속으로 그렇게 천천히 기어들어와 도시의 한 풍경이 된 이 두 벌레에게는 언어도 없고 감탄사도 없다. 無言의 대화로 그들이 나누는 감정은 우리의 뇌를 거치지 않고 직관적인 철학으로 다가와 무의식을 파고든다. 하 수구에서 출발한 그들의 여정은 도심 한복판을 지나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우리가 잊고 있는 순간에도 라바는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으며 작은 발자국, 아니 몸자국을 남겼다. 이 두 벌레는 천천히 사는 생애가 훨씬 더 즐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천천히 산다는 것의 즐거움.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아침마다 저녁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철학적 순례의 길인지도 모른다. 라바가 쓰레기 폭탄 같은 길거리 라이프 속에서 찾았던 생존의 길처럼 말이다.
유튜브 750만, 페이스북 200만 팔로워를 거느린
세계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의 레전드, 라바.
두 벌레가 전하는 도시인의 슬로우 라이프
천천히 사는 존재들의 휴식 같은 아포리즘
라바는 아스팔트 아래에서 산다. 아스팔트 위는 전쟁 같은 도시의 공간으로 쉴 틈 없이 자동차가 달려가고 지하로는 오물이 투척된다. 우리가 버리는 찌꺼기들이 떨어지는 두 벌레의 작은 쉼터, 길거리 라이프 속에는 온갖 싸움과 쟁탈전 그리고 교감과 사랑이 공존한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우리는 그 두 벌레의 길거리 라이프를 왜 그토록 멍하니 들여다봤을까? 이 두 벌레는 도시를 천천히 유랑하며 우리에게 무언無言으로 이야기한다. 느리게 기어가는 그들의 여정도 이 도시의 한 풍경이었음을,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삶의 일부분이었음을……. 라바는 우리로 하여금 잠깐의, 몇 분의 꿈을 꾸게 했따. 그 슬로우의 발걸음이 우리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줄 수도 있음을, 그래서 라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레드와 옐로우, 이 두 벌레는 그저 잠깐의 유희를 주고 떠나는 희극의 캐릭터가 아니다. 라바는 이름 그대로 애벌레이자, 가장 어둡고 축축한 공간의 소외된 존재이며, 세상에서 가장 느리지만 치열한 몸짓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나 열광하는 라바는 그 자체로 귀여운 벌레이자 사랑이요, 솔직한 혐오이자 가엾은 도시인의 자아가 되어 이 도시를 떠돈다. 거리두기로 서로 멀찍멀찍 서 있는 우리들의 발끝을 간질간질 쓰다듬는다. 뉴욕 어느 하수구로부터 출발하는 이 한 권의 아포리즘 에세이는, 출퇴근길 눈이 마주쳤던 그 두 벌레가 이끄는 잠깐의 ‘슬로우 세상’ 속으로 지친 당신을 데려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