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 안에 숨겨진 ‘동물의 파일’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이 책『털 없는 원숭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류의 진화 발전은 자연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특성이라는 점이다. 그런 동물적 특성은 특별하며, 따라서 인류는 특별한 동물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모욕적 언사가 아닌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동물 종 가운데 가장 성공한 비범하고 놀라운 종의 일원이라고 강조하면서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있다.
사회적 물의(‘털 없는’이란 단어는 출간 당시에도 여전히 외설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를 일으킨 멋진 제목과는 별도로 책의 논조 역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모리스는 이를 ‘고단했던 격정의 4주’로 묘사된 글에 담아냈다. 4주는 책 한 권을 완성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이다. 저자의 글쓰기가 숨 막힐 만큼 빠르게 전개됐다는 사실을 독자는 알아차릴 수 있다. 그의 글쓰기는 대개 연구 자료에 대한 참조가 아니라 직접 얻은 지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벨상을 수상한 니코 틴버겐에게서 동물 행동학자로 훈련받은 모리스는 대개의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물 종의 특이한 습관을 정확히 묘사한다. 그는 마치 이방인이 된 것처럼 독자가 객관적 시각으로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색다르면서도 더욱 진지한 의미에서 고전에 속한다. 가령 모리스는 인간의 잡담이 사회적 유대와 결속을 유지하는 데 있어 영장류의 털 손질과 동일한 기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그의 이런 생각은 진화가 어떻게 털 손질을 수다로 대체시키고 언어 발전을 촉진했는지 설명해주는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모리스는 암수 한 쌍의 결합 관계가 무리의 암컷을 수컷에게 동등하게 분배함으로써 포악한 우두머리 수컷에 대응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수컷들이 함께 사냥하러 나가거나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암컷에 대한 경쟁이 줄어든 것으로 여겨졌다. 수년 전 아르디피테쿠스(약 4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의 줄어든 송곳니가 일부일처제를 암시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간주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생각은 인류학 분야에서 여전히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런 진화론적 견해는 『털 없는 원숭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공로를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필독서로 읽혀 왔으나 과학의 주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보노보(으리으리한 남근을 가진 또 다른 원숭이)의 성적 습성, 협동과 이타성이 진화해온 다양한 방식처럼 우리의 지식은 그동안 놀라울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최신의 지식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출간 반세기를 맞은 책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전히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데, 이는 책의 주요 동력이 수집된 자료나 이론에 있기보다는 앞으로 설명할 사고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생존과 번식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근거로 인간의 행동 양식을 설명하는 진화 생물학자처럼 생각한다. 그는 몸에 털이 없어지고 직립보행을 하게 된 기원, 여성이 느끼는 성적 쾌감과 동성애의 기원, 예술과 문화에서 놀이의 역할에 관한 의문처럼 여느 생물학자라면 해결해보고 싶은 일련의 문제를 통해 인간종이 보여주는 특이한 사회적, 성적 습성을 제시한다. 이 모든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이 더욱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도출된 결론보다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근래에 다시 읽어보더라도 생물학적 성별에 대해 고찰하는 부분에서처럼 저자가 천성을 양육보다 중시한다고는 좀처럼 의식하기 어렵다. 생물학이 당연시되다 못해 대수롭지 않게 돼버린 오늘날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털 없는 원숭이』가 출간될 당시만 해도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거나 인간의 성성향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인간성은 스스로 창조된다고 여겨졌다. 문화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며 인간이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유전학은 이러한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런 금기 사항을 깨는 일은 모리스 같은 생물학자에게 진일보한 조치였으며 이 점이야말로 『털 없는 원숭이』가 남긴 가장 큰 공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