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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유물

따뜻한 유물

  • 이순남
  • |
  • 전망
  • |
  • 2020-06-30 출간
  • |
  • 216페이지
  • |
  • 145 X 200 X 17 mm /298g
  • |
  • ISBN 978897973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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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아귀가 딱 맞다. 뜯은 바느질 선을 맞댄 삼베는 원래 하나였던 것이라 그런지 위아래가 맞물리며 직사각형을 만든다. 어른에게는 작을 것 같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적당한 크기이다. 삼베는 한여름 홑이불로는 제일가는 천연 소재이다. 까슬하니 몸에 붙지도 않고 통풍도 잘 되지만 은근히 따뜻한 면도 있다. 더위는 물리면서도 배앓이를 막아주는 이불을 만들면 좋겠다 싶다. 나는 바늘을 곧추 잡고 한 땀 한 땀 조각 삼베들을 붙인다.
이 삼베는 어머님이 손수 잣은 실로 직접 짜신 것이다. 어머님은 힘든 농사일을 하며 틈틈이 길쌈을 하셨다. 삼을 삶고, 말리고, 찢고 하는 수많은 손길이 닿은 후에야 겨우 실을 얻을 수 있었다. 베틀에 앉아 북을 철컥거리며 베를 짜는 수고는 또 어디에 비하랴. 이렇게 몸속에서 실을 자아내는 누에처럼 자신의 정성을 다하여 짠 삼베와 모시는 아버님의 옷이 되었다.
아버님은 고향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시절, 어머님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내 남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골에서 사셨다. 아버님은 농사일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선비셨다. 유난히 깔끔하고 정갈한 성품이시기도 했다. 여름철 읍내 면사무소에 출근할 때에는 어김없이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다고 한다. 모시 적삼이 주는 정갈한 모습은 다른 어떤 옷과는 견줄 수가 없다. 한 올 한 올 아내의 애정이 깊이 배어있는 옷이다. 잠자리 날개 같은 시원한 모시옷을 입고 당당하게 나들이를 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골 생활을 접고 부산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아버님은 항상 양복 차림으로 멋을 부리셨다. 정갈한 분위기가 있는 집안의 며느리가 된 나는 아버님의 양복을 다듬어 드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양복의 먼지를 떨어내고 반듯하게 바지 주름도 잡았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면 아버님은 다시 모시 적삼과 삼베옷을 찾으셨다. 어머님이 건강하실 때는 해마다 모시와 삼베옷을 풀 먹이고 마름질하여 준비했지만, 어머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지자 그 옷들은 보퉁이에 싸여 장롱 깊숙이에서 잠자는 처지가 되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이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자주색 보자기에 싸인 보퉁이를 내놓으셨다. 보퉁이를 풀어보니 젊은 시절에 입으셨던 모시 주 적삼, 두루마기, 삼베 주 적삼, 명주 바지저고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님의 삼베적삼도 있었다.
올해 아흔넷을 맞이하신 아버님이시다. 거동이 불편하여 바깥출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신다. 다행히 정신은 맑으시다. 당당하고 멋쟁이시던 아버님은 이제 좋은 옷을 두고도 입으실 수가 없다. 보자기를 밀어주시는 아버님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코끝이 아려왔다. 생전에 보물처럼 여기시던 그 옷들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싶으셨던 것일 게다.
“네가 알아서 처분하거라.”
아버님은 이런 말씀을 하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나는 아버님의 눈빛에서 그걸 읽을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머님의 정성으로 지은 그 옷들만큼은 직접 정리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어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겠는가. 나는 보퉁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시옷과 삼베옷은 두세 번 입은 듯 멀쩡하고, 명주옷은 한 번 정도 입은 것처럼 맑고 품새가 살아 있었다. 오래된 옷이라고는 하지만 보관이 잘 된 새 옷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이 아버님 옷을 입어 보니 품이 맞지 않았다. 아버님이 아끼던 옷을 남편이 물려받아 입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삼베 바지를 손에 들었다. 삼베는 활용도가 많을 것 같았다. 올이 굵어 따기도 어렵지 않았다. 남편과 둘이서 찬찬히 박음질 된 곳을 조심조심 한 땀 한 땀 따기 시작했다. 남편이 잡아주면 실밥을 놓칠세라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하며 뜯어갔다.
바지를 다 따서 천 조각을 맞춰본다. 신기하다. 가랑이 쪽은 좁고 엉덩이 부분은 넓다 보니 엉덩이 쪽을 가랑이 쪽에 붙이자 직사각형이 된다. 옛사람들이 옷을 만들 때 천을 조각조각 자르지 않고 필을 살려서 만든 지혜가 새삼 놀랍다. 바지를 딴 삼베를 이어보니 작은 여름 이불을 만들 수 있겠다 싶다.
순간 손자가 떠올랐다. 아버님이 주신 삼베옷으로 증손자 홑이불을 만들어 대물림한다면, 아버님도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님도 기쁘게 여기실 것이다. 마치 당신의 손으로 안아 품듯 이 홑이불이 손자를 감싸 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혈육의 온기가 이 홑이불을 통해 전해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진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것도 혈육으로 짜가는 베가 아닐까. 씨줄과 날줄로 짜는 삼베처럼 말이다. 아버님과 어머님, 남편과 나, 아들과 며느리는 씨줄과 날줄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대를 이어가며 가족이라는 베를 짜오지 않았던가. 그 끝에 손자라는 그 어떤 옷감보다도 고운 베가 탄생하지 않았는가. 혈육이라는 그 따뜻한 실을 생각하니 삼베에서 점점 온기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이 삼베 이불이 시부모님의 마지막 유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모시 바지저고리를 입고 당당하고 패기에 찼던 젊은 시절 아버님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버님은 산마루에 걸린 노을빛처럼 하루하루 사위어 가신다. 그러나 아버님과 어머님의 애틋함과 그리움이 삼베 홑이불이 되어 되살아나고 있다.
마지막 땀을 뜨고 풀리지 않게 단단히 매듭을 짓는다. 이 따뜻한 유물을 덮고 손자는 더운 여름에도 뒤척이지 않고 편안한 밤을 보낼 것이다. 손자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귀에 삼삼하다.
-「따뜻한 유물」

단장을 마치고 서랍을 연다. 나들이 목적에 맞게 옷도 챙겨 입었고 깔끔하게 화장도 마쳤다. 들고 갈 핸드백도 골랐다. 이제 남은 건 손가락에 낄 반지이다. 나는 외출을 할 때 손가락에 반지가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마지막 단추를 채우지 못한 것처럼 마음이 허술해져 힘이 빠지기도 한다. 투박하고 굵어진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봐야 그리 맵시가 나지도 않건만, 나는 같이 외출할 친구를 고르듯 서랍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서랍 깊숙이 구리반지가 보인다. 빛이 나기는커녕 주위의 빛을 흡수하며 묵직하게 앉아있다. 시집에서 물려받은 반지이다. 그 옆 다른 반지들에 눈길이 간다. 처녀시절 끼고 다녔던 실반지, 결혼식 때 받은 결혼반지, 결혼 10주년 때 남편으로부터 받은 기념반지,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만들어 나누어 낀 학교 마크가 찍힌 동창반지, 생전에 어머니가 주신 순금반지 등이 있다. 서랍 속에서 고이 앉아 있는 반지들이 각각의 사연을 안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랍 속에는 없지만 아마도 내 손가락에 처음 끼워진 반지는 꽃반지였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말이다. 특별한 놀이가 없었던 유년시절이었다. 친구들과 풀밭에 주저앉아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다가 지치면 하얀 꽃을 따서 꽃반지를 만들었다.
꽃반지를 만들려면 두 개의 꽃송이가 필요했다. 눈송이같이 희고 둥근 꽃의 목대를 갈라 그 속으로 다른 꽃의 줄기를 밀어 넣었다. 그 가녀린 풀꽃들은 이제는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한 몸으로 얽혔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만든 꽃반지를 서로의 손에 끼워주었다. 내 손가락에도 두 개의 꽃송이가 엇갈린 반지가 끼워졌다. 예쁘고도 연약한 반지였다.
사회 초년생이 되자 출근길에 스치는 아가씨들이 링 반지를 끼고 있는 하얀 손이 참 예뻐 보였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가 부러웠다. 나는 월급을 아껴 모은 돈으로 가느다란 18금 링 반지 두 개를 샀다. 링 반지가 큰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항상 끼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잘 부풀은 식빵의 속살처럼 가슴이 설레곤 했다.
심장을 고동치게 했던 결혼반지가 씩 웃는다.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비주얼에 있어서는 단연 돋보인다. 그 당시 다이아몬드를 받고 시집가면 결혼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역시 다이아몬드와 행복한 결혼생활은 아무 관계가 없다. 다만 초심만은 잃지 말라며 반지가 반짝인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하는 외출이니 아무래도 결혼반지가 좋겠다. 굵어진 손마디에 걸리는 반지를 힘을 주어 손가락에 끼운다.
외출에서 돌아와 결혼반지를 도로 서랍 속에 넣는다. 그 옆에서 초등학교 동창반지가 제게도 눈길을 달라며 질투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붙어 다녔던 그때의 친구들처럼 같이 나가자고 성화다. 그래도 동창회가 있는 날, 56회가 찍힌 금반지를 끼고 마냥 철없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기다리라며 슬쩍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골동품처럼 보이는 구리반지는 오래전에 시어머님이 시할머니께 물려받은 반지라고 했다. 그 반지를 시어머님이 다시 내게 주신 것이다. 그 반지는 할머니께서 남겨주신 유일한 유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쇠고리마냥 아주 보잘것없어 보이는 반지다. 처음에는 하찮게 생각하고 내팽개쳤다. 자칫하면 그 반지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버릴 뻔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눈길이 갔다. 빛이 나지 않았기에 더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항상 새벽에 일어나 몸을 정갈히 하시고 정화수 한 그릇을 장독대에 떠 놓고 소원을 비셨다. 반지를 낀 손을 마주 비비며 자손들이 무탈하기를 온갖 정성으로 빌고 또 비셨을 것이다. 어느 새벽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던 굽은 등이 내게 남은 할머니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물려주신 반지는 무언의 훈계로 다가온다. 반지가 가문의 연결 고리가 되어 대를 이어 잘 이끌어 가라는 마음이리라 여겨진다. 요즘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구리반지를 보면 힘이 솟는다. 동그란 반지처럼 둥글둥글 모나지 않고, 이해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살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구리반지를 끼어본다. 어느덧 구릿빛을 닮아있는 내 손에 제법 잘 어울린다.
옆에 있는 노란 순금반지가 반짝인다. 친정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소장하신 패물을 뭉쳐서 자식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신 반지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수술을 하시다가 마취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심한 심장질환을 앓았었다. 심장 수술만 하면 더는 고통 없이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웃으면서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이별을 나누지도 못하고 멀리 보내드린 것이 못내 걸린다. 이산가족이 되어도 이 반지만 지니고 있으면 우리 4형제를 찾을 수 있는 증표처럼 어머니가 남겨주셨다. 어머니가 주신 반지는 반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솜씨를 보는 듯해서 정겹다. 새삼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진다.
옛날 두 송이의 꽃으로 만들었던 꽃반지처럼 반지는 누군가와 얽혀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다. 반지는 마치 내가 그들과 손이라도 잡고 있는 것처럼 온기를 전한다. 절대 반지라도 되는 양 그 온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이 작은 동그라미들이 그들과 나를 하나로 묶는다. 반지의 신비한 능력이다.
새삼 서랍 속 반지들이 살갑게 다가온다. 하나하나 닦아서 가지런히 정돈한다. 언젠가는 이 반지들이 또 다른 누군가와 나를 하나로 엮을 것이다. 나는 결국 며느리이거나 친구이거나, 아니면 인연이 닿는 누군가에게 이 반지들을 물려줄 테니 말이다. 면면히 이어지는 둥근 고리들의 행렬을 떠올린다. 그 중간에서 나의 반지들이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다.
-「반지」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말발과 글발
말발과 글발
봄바람이 불면
양파에 대한 단상
비둘기
인자론忍字論
정든 세탁기
당갈
발을 소재로 한 군말
여든여덟 번의 손길
물 예찬론

제2부 오카리나를 불면 눈물이 난다
봉선화 꽃잎에 물들다
수영강변 풍경
오카리나를 불면 눈물이 난다
꽃시절
백기를 들다
리폼Reform
들깨 순지르기
관음죽
나무 아래 서다

제3부 따뜻한 유물
아버지의 산소
따뜻한 유물
반지
목욕
테트라포드
엄마와 바느질
사랑의 밧줄
연둣빛 잎새
서랍
수수떡

제4부 파랑새 날다
동굴
마법의 불티
목침 하나
설문대할망
우연偶然
채석강
파랑새 날다

제5부 시베리아 횡단열차
시베리아 횡단열차
독일 기행
인도기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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