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철학
이 책은 철학자들의 철학자라 불리는 영국 철학자 갈렌 스트로슨의 국내 첫 번역서다. 원제는 ‘Things That Bother Me: Death, Freedom, The Self, etc.’로, 죽음, 자아 감각, 자유의지, 의식의 본성, 서사 등 철학자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온 주제를 다룬 에세이 일곱 편과 인터뷰 한 편, 그리고 1960년대를 회고한 자전적 에세이 한 편을 묶었다. 근현대의 수많은 철학자와 소설가, 심리학자 등의 글을 인용하면서 문학적 암시와 상징적 묘사, 그리고 개인적 경험을 주저 없이 사용해 전개하는 책의 내용은 여러 번 곱씹어 읽어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깊고도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스트로슨은 서론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무한이라는 개념에 집착한다.…무한성은 나이에 상관없이 중요하다. 특히 그것이 영원의 개념과 이어지면 자연스레 죽음에 대한 생각과 연결되기 쉽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독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시작하면서 “이 괴로움들은 죽음뿐만 아니라 자유의지와 의식에 관한 것이고, 철학적 의미에서 ‘진정한 자연주의자’, 즉 초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이 괴로움들은 자아에 대한 생각, 자아를 갖는다는 생각, 시간에 따른 자아의 감각, 삶에 관한 서사적 전망, 그리고 내친김에 인간 정신의 무제한적 성격에 관한 것이다”라고 책 전체의 내용을 요약해 준다.
갈렌 스트로슨은 호기심이 많고, 학식이 풍부하며, 참신하고, 논쟁적인 주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현대의 몽테뉴이자 그것을 명쾌하게 기술할 수 있는 진정한 에세이스트라고 평가받는다. 가변적이고 포착하기 어려운 자아와 의식의 본성을 찾아가는 그의 철학적 탐구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역시 자신을 괴롭히는 삶의 거창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시작할 단초를 찾게 될지 모른다.
원초적 괴로움의 심연을 찾아서…
1장 “자아의 감각”에서 스트로슨은 “나는 내 인생을…막 시작한 것 같은…지속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존 업다이크의 말처럼 자아의 감각이 끊임없이 새로워진다고 말한다. 2장 “우리 시대의 오류”에서는 평범한 인간이 삶을 경험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으며, 삶에 대한 풍부한 서사적 관점이 없다고 해도 진실하고 완전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이 항상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쓴다. 3장 “나는 미래가 없다”에서는 죽음을 겪는 당사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에 죽음은 두렵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4장 “모든 것은 운에 달렸다”와 5장 “당신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없다”에서는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궁극적인 도덕적 책임의 불가능성을 밝히지만 실제로 이것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6장 “가장 어리석은 주장”에서 스트로슨은 “의식의 존재, 즉 의식적 경험, 경험의 주관적 특성”을 부정한다. 7장 “진정한 자연주의”에서는 스스로를 물리주의적 자연주의자라고 밝히며 의식적 경험이 실제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방어하기 위해 다섯 살짜리도 그것을 알고 있다고 단언하며 거짓 자연주의자들을 논박한다. 8장 “이야기되지 않은 삶”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들 삶의 서사를 구축하고 나아가 그렇게 함으로써 더 완벽하고 만족스럽고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전제를 다시 한 번 부정하면서 모두가 서사적 정통성을 따르는 획일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더 좋은 생활방식도 있음을 알려준다. 9장 “2년의 시간”은 편집자의 강권으로 쓰게 된 자전적 에세이로, 간결하지만 웅변적이고, 감정적으로 솔직하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