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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반양장)

렘브란트 (반양장)

  • 장주네
  • |
  • 열화당
  • |
  • 2020-09-10 출간
  • |
  • 96페이지
  • |
  • 152 X 204 mm
  • |
  • ISBN 9788930106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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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모두 불태워진 자리에서 살아남은 원고
장 주네는 파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칠 개월 만에 유기되어 파리 빈민구제국의 보호 아래 유년을 보냈다. 절도, 매춘, 탈영, 마약밀매 등의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도둑 작가’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그는 누적된 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그를 구하기 위해 장 콕토,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이 감옥에서 ‘프랑스 문학계의 보물’이 썩게 될지도 모른다며 특별사면을 요청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주네가 1950년대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몰두했던 한 가지 기획이 있다면, 바로 화가 렘브란트에 관한 책이었다.
런던에 체류 중이던 1952년,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발견한 장 주네는 이후 암스테르담, 뮌헨, 드레스덴 등등의 여정에서도 그의 그림과 함께하게 된다. 그의 작업에 매료된 주네는 그림을 본 순간 바로 렘브란트에게 바치는 한 권의 책을 구상한다. 그중 「렘브란트의 비밀(Le secret de Rembrandt)」이 먼저 1958년에 잡지 『렉스프레스』를 통해 발표되었고, 나머지 글은 1964년 미국과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잡지에 각각 다른 형식으로 실린다. 이 ‘나머지’ 글은 주네의 기획 아래 다시 잡지 『텔 켈』의 권두에 프랑스어로 게재되는데, 「렘브란트의 그림을 반듯한 작은 네모꼴로 찢어서 변소에 던져 버린 뒤에 남은 것(Ce qui est rest? d’un Rembrandt d?chir? en petits carr?s bien r?guliers, et foutu aux chiottes)」(이하 「렘브란트에게서 남은 것」)이라는 제목을 이때 처음 갖게 된다.
한숨에 읽기 어려운 만큼이나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이 독특한 제목은 1964년 당시 주네에게 닥쳤던 비극에서 비롯한다. 그의 산문 『줄타기 곡예사(Funambule)』의 모델이기도 했던 친구 압달라 벤타가의 죽음이 주네의 생애를 덮쳤던 것이다. 이후 장 주네는 이때까지 썼던 원고들을 모두 가방 하나에 담아 불태웠고, 그 직전에 잡지사로 넘겨진 원고들이 살아남았다. 각각 한 단씩, 두 가지 성격의 글을 같은 페이지에 배치한 「렘브란트에게서 남은 것」의 이례적인 방식은 그 시각적인 충격만큼이나 내용적으로도 흥미로운데, 두 글이 서로를 자유롭게 연결하고 또 흩어지는 새로운 독법을 제시한다.

회화와 모델을 동시에 찬미한 화가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유명한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회화사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첫번째 글 「렘브란트의 비밀」에서 장 주네는 자화상들을 비롯해 〈야경〉으로 잘 알려진 〈야간순찰(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의 중대)〉과 〈돌아온 탕자〉 〈유대인 신부〉 등, 특유의 호사스러움과 성서에 대한 상상력이 담긴 그의 작품 십여 점을 소개한다. 그러나 주네가 그림을 소개하는 방식은 이례적이다. 개별 그림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 한 줄 이상을 넘지 않고, 자신이 렘브란트 그림에 매료된 이유를 되풀이해 제시함으로써 그만의 예술론을 전개해 나간다. 주네가 이런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가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들 속에서 ‘개별화된 외양’을 걷어낸, 모든 대상의 ‘동일한 내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레 그의 화려한 외양 묘사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이에 대해 주네는 그를 ‘호사 애호가’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의 화려함은 결과적으로 외양보다는 각 대상들의 내면에 관한 것이다. 외양은 모든 인간의 동일한 가치를 분별할 수 없게끔 하는 ‘시각적 오류의 효과’일 뿐이며, 따라서 그는 각 대상들의 차이를 화폭에 재현하지 않는다. 렘브란트 그림 속 모델들은 실제 인물들에게로 환원되지 않고, 그가 그려낸 디테일, 용모의 특징은 모델의 성격 혹은 개별적인 심리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각기 다른 작품의 모델들이 동시에 지니는 인간의 근본적인 상처, 존재의 슬픔에 집중한다. 즉, “그의 모든 작품은 자신에게서 도망쳐 달아나는 진실을 뒤쫓는 초조한 한 인간을 드러내 보여준다.”
대상들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는 세밀한 묘사와, 반대로 그 외피 속에 감춰진 인간의 동일한 실존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렘브란트를 한 가지 방식으로 이끌었다. 바로 회화의 목표인 세상에 대한 재현을 따르면서 동시에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찬란한 빛을 가장 비천한 질료들 속에 흘려보내 모든 것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손과 얼굴, 테이블과 나무막대기 등 모든 질료들은 이제 같은 가치를 가지게 되고, 렘브란트는 위계화된 세상의 질서를 자기 안에서 허물어 버린다. 그의 그림 안에서 이제 모든 세상의 질료들은 순간의 개별성에서 벗어나 무(無)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각각의 대상은 나름의 웅대함을, 다른 모든 것들보다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은 웅대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우치게 된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바로 그러한 웅대함을 복원해야 하고, 그 일은 색채의 독자적인 웅대함을 제시하는 길로 그를 이끌어 간다. 렘브란트는 이 세상에서 회화와 그의 모델을 동시에 존중한 유일한 화가, 그 둘을 동시에 찬미한 화가, 회화와 모델이 서로를 찬미하게 만든 화가라고 말할 수 있다.”
-「렘브란트의 비밀」 중에서

‘견고한 비어 있음’으로
두번째 글 「렘브란트에게서 남은 것」에서 주네는 두 개의 글을 병치해 보여준다. 왼쪽 글에 등장하는, 주네의 또 다른 예술론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에서도 한 번 언급된 적 있는 이 일화는 기차 안에서 마주친 한 노인에 대한 인상에서 시작된다. 기차 삼등칸에 앉아 그 스스로 “볼품없는 몸뚱이와 얼굴에다 구석구석이 더럽고 역ㅣ겹기까지” 했다고 묘사한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네는 일순간 어떤 진실을 깨우친다.

“모든 인간은 그의 매력적인 혹은 끔찍해 보이는 외관 뒤에 어떤 자질을 간직하고 있으며, 최후의 보루 같은 그것은 아마도 환원할 수 없는, 아주 은밀한 영역에서 그 사람을 모든 사람이게 만들어 준다.”
-「렘브란트에게서 남은 것」 중에서

주네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을 마치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에게서 느꼈던 불쾌감을 지우지는 않는데, 이렇듯 찰나의 순간에 모든 인간의 동일성을 알아본 그의 직관은 동정이나 자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신 이 발견에서 비롯된 인식의 과정에 집중한다. 그 과정 속 주네는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어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지는 명제에서 각각의 인간이 동일한 한 인간의 파편들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대략적인 이해를 넘어 우리 모두가 하나의 타자임을 인식한 것이다. 증명할 수 없고, 부조리 없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진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자주 말을 흐리고, ‘동일성’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그러다가 방금 전 자신이 한 말을 곧바로 부정하기도 한다. 예술작품이 고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종류의 진실이라던 그는 결국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이를 발견해내는데, 「렘브란트에게서 남은 것」에 두 가지 글을 함께 둔 그의 의도가 여기에 있다. 기차 안 노인과의 일화에서 발견한 기묘한 진실을 자신의 언어와 더불어 렘브란트의 작품을 통해 설명하려는 것이다.
오른쪽 글에서는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마치 노인과 같이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까닭에 골몰한다. 이내 작품 속 인물들의 생생한 신체를 마주하고 그는 그 안의 순수한 투명성을 이끌어낸다. 이는 앞서 반복해 이야기한 동일한 정체성을 넘어서, 개별적인 정체성이란 없다는 ‘견고한 비어 있음’을 가리킨다. 이 비어 있는 투명성은 렘브란트의 작품 안에서 각 대상들의 외관적 차이를 지우고, 그 이면에 있는 본질을 포착하려는 작업으로 얻어진다. 주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화적으로 알고 있는 주체를 해체하여 영원성의 빛 아래 위치시키는 일”이다. 화려한 외양 뒤에 감춰진 초라한 자신을 그렸던 렘브란트는 모든 인간의 동일한 실존뿐만 아니라 그 본질의 투명성을 알아보게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순수’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경악스러워 했던 주네를 스스로 순수한 투명성에 다다르게 했고, “그 진실들이 노래가 되어 살아남아 우리를 선동하길 바란다”고 했던 그의 바람대로 한 권의 책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았다.

장 주네가 렘브란트를 위해 써 내려간 글은 작성 시기와 출간 사이에 공백이 있고, 다양한 형태로 여러 번에 걸쳐 출판되었다. 렘브란트에게 바치는 한 권의 책을 구상했던 주네의 기획은 안타깝게도 그의 생전에는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 책 『렘브란트』에서는 두 편의 글을 묶음으로써 그 기획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몇 개의 작품만 수록하거나 아무 작품도 넣지 않았던 이전의 판본들과 달리, 주네가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 17점을 수록해 함께 볼 수 있도록 했으며, 두번째 글 역시 그의 의도에 따라 두 단의 형태를 유지했다.


목차


렘브란트의 비밀
렘브란트의 그림을 반듯한 작은 네모꼴로 찢어 변소에 던져 버린 뒤에 남은 것

편집자의 글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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