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거대 벽화, 조지 스타이너의 「뉴요커」 비평 앤솔로지
‘그 굳건한 회의주의, 지치지 않는 질문, 인류의 모든 지적 창조적 작업에 촉수를 내리고 있는 듯한 박식한 연상과 연결 작업은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에 공통되는 특징이다.’(「옮긴이의 말」)
조지 스타이너는 1966년부터 1997년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30편이 넘는 비평을 미국 지성계를 대표하는 잡지 「뉴요커」에 기고했다. 그 기간 동안 조지 스타이너가 쓴 수많은 묵직한 비평서들을 떠올리면 그 엄청난 생산력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스타이너가 「뉴요커」에 쓴 비평은 양적으로도 잡지에 게재될 글로는 분량이 상당히 많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 매체에 실린 글임에도 밀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다루는 주제는 문학뿐 아니라 역사와 철학까지, 후세의 역사가들이 20세기를 평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지성의 흐름이 전부 담겨 있다. 「뉴요커의 조지 스타이너」는 20세기 중반 이후 세기말에 이르기까지 「뉴요커」에 게재된 스타이너의 비평 선집이다. 브레히트, 벤야민, 오웰, 솔제니친, 보르헤스, 촘스키, 베유, 러셀, 레비-스트로스 등 스타이너가 다룬 지성의 역사는 러시아 혁명과 양차 대전과 그 여파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에 관한 일대 벽화로 손색이 없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스타이너의 글이 현대의 뛰어난 글과 사상에 대한 모범적이고 열정적인 가이드라고 평가했고, 수전 손택은 공격당할 줄 알면서도 도발하는 스타이너의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뉴요커」 필진의 표현대로 스타이너의 글은 ‘현학 없는 학식’의 미덕을 모범적으로 구현해 「뉴요커」의 많은 독자들은 스타이너의 명료함, 학식, 지적 독립성의 모범을 보인 글들을 감사하게 여겼다.
스타이너의 글쓰기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오스트리아 빈의 상황이 깊게 새겨져 있다. 고향인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은 나치즘이라는 사악한 독이 피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프로이트, 카프카, 비트겐슈타인, 말러, 마흐, 포퍼, 슘페터, 하이에크, 폰 노이만 등을 통해 지난 20세기를 조형한 예술, 과학, 사회, 사회, 철학의 에너지가 분출한 곳이기도 하다. 빈의 연대기가 20세기의 연대기가 될 것이라는 스타이너의 말은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전 세계를 유랑하게 된 디아스포라 유대계 지식인으로서의 스타이너는 자부심과 환멸의 복잡한 심경으로 자신의 뿌리를 바라본다. 하지만 쉽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시대와 사회적 불안 속에서 탄생한 지적인 성과들을 쉽지 않은 균형감으로 소개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아르메니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사회주의 소련과 중국의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20세기에 두드러지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야만적인 폭력에 대한 개탄은 스타이너 글들의 통주저음을 이룬다. 하지만 스타이너는 아포리스트 시오랑처럼 자기 파괴적인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스타이너는 한시적인 시간 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져야 할 어떤 자세를 제안한다. 유례없이 탁월한 지성과 사회적 명성을 소유한 인물이 자신의 속한 공동체를 배신하는 것을 다룬 「반역의 학자」의 한 대목은 인류 공생의 윤리로서 강한 울림을 지닌다.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국경과 여권 없이 사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이 상처 가득한 지구에서 모두가 서로의 손님임을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 생존을 유지해 나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분열과 증오의 병균을 치유하는 데 이보다 더 유효한 통찰도 달리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