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있는 나쁜 친구 1호
성격이 달라서, 서로 욕심을 부려서 또는 사소한 오해로 친구를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 미워하는 마음은 차곡차곡 쌓여서 나중에는 그 친구의 목소리조차 듣기 싫을 만큼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관계 맺기의 과정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친구가 생겼다. 이사를 와서는 단짝 친구를 빼앗아 가고 자신이 실수를 할 때마다 크게 비웃는 아이. 미움이 쌓이고 쌓여 결국 주인공은 ‘나쁜 친구 목록’을 만들고 1호로 그 아이의 이름을 적어 자신만의 아지트에 붙여 놓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속에 있던 미운 이름을 밖으로 꺼내 놓는 순간 가벼워져야 하는데 미움은 점점 더 증폭되어 간다. 이름을 볼 때마다 그 친구가 더 싫고 미워지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주인공은 나쁜 친구 목록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욱 통쾌한 복수를 꿈꾸며 어릴 적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한 적 있다는 아빠에게 도움을 청한다.
상상을 통한 카타르시스 ‘골탕메롱파이’
아들의 도움을 요청받은 아빠가 부엌 선반에서 꺼낸 건 낡은 종이 한 장. 거기엔 ‘골탕메롱파이’ 만드는 비법이 담겨 있다. 아빠는 아들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골탕메롱파이’는 나쁜 친구를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만드는지, 어떤 맛이 나는지,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알려 주지 않는다. 아들은 아빠의 ‘골탕메롱파이’의 비밀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반죽에 흙이 잔뜩 붙은 풀을 넣고, 꿈틀꿈틀 지렁이를 넣고, 씹다 버린 껌을 넣고……. 그걸 먹은 나쁜 친구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입에서 엄청 지독한 냄새가 나고, 먹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주인공이 ‘골통메롱파이’에 숨겨진 비밀을 상상하며 통쾌한 복수를 하는 동안 독자 역시 상상을 더하며 자기 마음속 미움으로부터 무장 해제를 당한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빠는 ‘골탕메롱파이’의 비밀 요리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에 아들에게 큰 임무 하나를 준다.
‘파이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나쁜 친구를 찾아가 하루를 보낼 것. 그리고 나쁜 친구에게 친절할 것. 쉽지는 않겠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다는 걸 명심할 것!’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차릴 것이다. 아빠가 준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 주문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엄청난 비법이 숨겨져 있는지를. 그리고 이미 상상의 나래를 펴며 웃는 동안 주인공 마음속의 미움은 조금씩 녹고 있었다는 것을.
우정의 맛은 달콤한 파이 맛
이 책은 클로즈업한 얼굴 표정을 통해 주인공의 마음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제러미를 나쁜 친구 1호로 정할 때의 미움, ‘골탕메롱파이’를 먹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의 통쾌함, 아빠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싫은 친구에게 놀자고 손을 내밀 때의 어색함, 제러미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트램펄린을 탈 때의 즐거움 등이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골탕메롱파이’를 먹일 시간이 다가올수록 제러미가 좋아진 마음과 애써 파이를 구운 아빠에게 말하지 못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독자를 절로 웃음 짓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골탕메롱파이’를 먹으려는 나쁜 친구 1호에게 “제러미, 먹으면 안 돼! 이 파이는 독이 있거나 썩었을지도 몰라!”라고 소리치는 모습에서 모두는 ‘골탕메롱파이’의 마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 순간 나쁜 친구 1호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파이를 반죽하고 숙성하고 굽는 동안 서로 가진 것을 빌려주고 잘하는 것을 알려 주면서 두 아이의 마음도 따뜻하게 구워진 것이다. 이제 나쁜 친구 1호 제러미는 자신의 아지트에 초대할 수 있는 ‘좋은 친구 1호’가 되었다. ‘골탕메롱파이’의 맛은 끝내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된다. 우정의 맛은 아이스크림을 얹은 파이처럼 달콤한 맛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