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은 사랑과 고통의 언어로 지은 간이 대피소”
원로 평론가가 들려주는 문학의 존립근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학의 진로를 생각하게 한다
원로 문학평론가 정지창 선생의 에세이집. 칠순이 넘어서도 왕성하게 읽고 쓰며 문학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자가, 영남대 독문과 정년퇴임 이후 써온 평론과 에세이들 중 일부를 엮었다.
문학작품은 “작가가 사랑과 고통의 언어로 지어놓은 간이 대피소”와 비슷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앞서 간 작가의 뒤를 따라가는 독자는 일단 대피소 안에 들어서면 따뜻하고 아늑한 난롯가에서 언 몸을 녹이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내일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여기에서 얻는다. 『문학의 위안』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 바로 이것이 “문학의 존립근거이자 위안의 원천”이라고 믿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1부는 권정생, 이호철, 최인훈, 김승옥, 김원일의 소설과 고은의 일기, 백무산, 배창환의 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중의 고달픈 삶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분석한 에세이들이다. 현학적인 서구의 문학이론이나 담론에 기대지 않고 평범한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읽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녹색평론』과 생태시」는 “모든 진정한 시인은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라고 믿으며 ‘시인의 마음’으로 병든 세상을 치유하려고 했던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2020년 6월 25일 작고)이 생전에 일구어놓은 녹색담론의 풍성함에 미치지 못하는 생태시의 빈곤을 안타까워하며 쓴 글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구이자 스승인 김종철 발행인에게 바치는 추도사인 셈이다.
저자는 “권정생, 김원일, 백무산, 배창환 등 대구·경북 출신의 작가들을 많이 읽은 것은 인생의 후반부를 이곳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서적 편향성이었다”고 고백한다.
2부는 역사적 진실을 다룬 작품들을 분석한 글들이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의 10월 항쟁과 민간인 학살 사건을 이하석의 시집 『천둥의 뿌리』와 ‘10월문학회’ 회원들의 작품들을 통해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아울러 제주의 4·3 항쟁,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 유태인 학살 사건 등을 다룬 작품들을 읽으면서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는 표현기법, 즉 재현과 리얼리즘의 문제를 짚었다.
3부는 서구 유토피아 사상의 계보와 유토피아 소설 및 반유토피아(디스토피아) 소설의 기원, 한만수의 농민소설 『금강』과 중국 작가 모옌(莫言)의 농민소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박태원과 최인훈이 같은 제목으로 쓴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시차를 두고 같은 마을을 작품 배경으로 삼은 서정인의 소설 「강」과 김사인의 시 「겨울 군하리」 등의 작품들을 비교, 고찰한 글들이다. 이 밖에 작가의 정치적·도덕적 결함과 포용 문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브레히트의 드라마를 통해 분석한 에세이도 실려 있다.
“실감(實感)과 관계의 문학”
정지창 선생의 『문학의 위안』은 오늘날 우리 문학과는 다른 결의 문학적 관점을 보여주는데, 이는 비단 평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문학에 대한 다른 감각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의 글은 문학이란 삶과 삶이 연결되는 풍요로운 네트워크의 장(場)임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합니다. 여기서의 삶은 구체적 현실로서 상호적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와 작품, 그리고 독자로 구성되는 문학의 소통관계란, 결국 작품을 매개로 한 사람과 사람의 연관, 이를 통해 한 사회와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국면들이 드러나고 더불어 사유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와 관련된 내력뿐만 아니라 작가/작품을 둘러싼 저자의 다양한 사적 에피소드들, 그것도 수십 년 전의 일들을 생생하게 복기하는 경이로운 기억력의 서술들이 문학작품의 내용과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그 전체로서 작품에 대한 독법(讀法)을 구성해가는 선생의 글은, 작품 읽기란 작가에서 독자에게 이르는 일련의 과정 전체임을 자연스럽게 겪게 합니다. (중략)
정지창 선생의 『문학의 위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진로에 관해, 더불어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이었는지를 재삼 돌아보게 합니다. ‘문학’과 ‘위안’을 나란히 놓은 이 책의 마음은, 결국 문학이란 다양한 관계들의 생태학임을, 그래서 문학하는 일은 나를 넘어 타자에게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심미적 관계와 사유의 장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 김문주 (문학평론가, 영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