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분에게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혁명군이 1936년 8월 19일 그를 총살한 후 폐기廢棄해서 무덤마저 남기지 않았지만, 그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비운의 작가 훼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는 반항적이요, 서정적이요, 격정적인 성격을 지닌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예술가였다. 사실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그의 시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그가 왜 그토록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1980년 나는 국제연극학회 일로 캐나다에 가서 돌아오는 길에 뉴욕에 들러 책방에서 『로르카의 죽음』(이안 깁슨 저, 1973)이라는 책을 사서 읽은 후 그 의문은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러나 지금도 인간 세상에서 악순환처럼 계속되는 잔혹한 폭력과 살상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고 개탄하고 있다.
그는 시인이요, 음악가요, 화가요, 극작가였다. 그는 『피의 결혼』과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 이 모든 능력이 하나로 결합되어 비극작품의 금자탑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들 작품을 시詩처럼 다루면서 읽어야 하고, 흐르는 음악이라 생각해서 가슴으로 느끼고 귀로 들어야 하며, 한 폭의 그림이라 인정하면서 색色을 감상해야 한다. 연극의 구조에 음악의 패턴을 교묘하게 접합시키고 있는 점이라든가, 주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라든가, 스페인의 민요나 민담의 전통을 현대의 시극詩劇에 융화시키는 일이라든가 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로르카는 ‘색 이미저리’(Color imagery)를 극적 대립의 표현 수단으로 삼았다. 그는 『피의 결혼』 제1막 1장에서 황색을 기본 색으로 사용한다. 신랑과 그의 어머니가 만나는 장소는 황색 방이다. 이들의 대사에는 녹색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중요한 화제에서 언급되는 장소가 포도밭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과 신랑과의 관계를 황색 밀과 사람을 연관시키면서 말하고 있다. 제2막 2장은 장미의 방에서 진행된다. 레오나르도는 중요한 작중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붉은 색으로 연관된다. 장미, 피 빛, 적갈색 구리, 또는 은빛 칼, 얼어붙은 말의 은빛 갈기 등이다. 신랑의 황색 방은 황금을 연상케 한다. 인물의 성격이 색으로 상징되고 있다. 신랑은 황색과 금색이다. 레오나르도는 적색과 은색이다. 녹색은 점차 연극이 진행됨에 따라 침울한 흑색과 청색으로 물들여진다. 신부는 백색이다. 백색은 어머니의 흑색과 대조된다.
어머니는 제1막 3장에서 검정 옷을 입고 있다. 신랑, 신부, 애인의 삼각관계는 제2막 1장에서 풍성한 색으로 언급되고 있다. 신부와 레오나르도의 만남은 백색, 은색, 적색, 핑크 등이 혼합되어 있다. 여기에 점차 황색이 개입된다. 로르카는 이처럼 인물의 성격과 그 대립적 양상을 보여주기 위해 색色을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성격 묘사와 무대장치는 지극히 표현주의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막이 오르면 두 여인들이 흑청색 의상을 걸치고 등장하는데, 그것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암시하기 위해서다.
- 이태주(연극평론가, 전 시립극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