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다!
기린 덕후 과학자가 써내려간 10년간의 기린 탐구기, 생생한 성장기
기린에 빠져 있는 한 과학자가 있다. 바로 기린 박사, 군지 메구. 이 책은 기린을 유독 좋아했던 한 소녀가 18세에 평생 기린 연구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염원하던 기린 박사가 될 때까지의 기록을 담은 한 여성 과학자의 생생한 탐구의 기록이자 치열한 성장기이다. 그리고 기린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친 유일한 책으로, 해부학적으로 접근한 기린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군지 메구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대한 관심과 탐구심이 강했다. 그중에서도 기린을 가장 좋아했는데, 세 살 무렵 처음 동물원에 갔을 때는 기린 앞에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철이 들 무렵부터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자주 시청했는데, 특히 진화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린에 강하게 끌렸다. 유년기의 군지 메구는 기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도쿄대 1학년 때 ‘평생 즐길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기린 연구’였다. 그렇게 기린 덕후 소녀는 기린 박사를 꿈꾸게 되었고, 그 후 10년 동안 30여 마리의 기린을 해부했다.
그녀의 성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기린의 제1흉추가 8번째 목뼈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녀는 기린의 가장 큰 특징인 기다란 목에 모두가 감탄할 만한 흥미로운 ‘진화의 수수께끼’가 있을 것이라 믿고 연구를 진행했고 마침내 새로운 발견에 이르게 되었다. 이 놀라운 발견은 논문으로 발표되었고, 제7회 일본학술진흥회 이큐시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놀라운 발견과 연구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진정한 공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함으로써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한 여성 과학자를 만나게 된다.
기린이 죽으면,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없었다.
기린이 최우선인 해부학자가 쓰는 만남과 탐구, 발견의 날들
제인 구달에게 침팬지가 있었다면, 그녀에겐 기린이 있었다. 그녀는 동물원에서 기증받은 기린 사체가 들어오는 날이면 모든 스케줄을 정리하고 기린 해부에 매달렸다.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기린이 죽으면 그게 어느 때든 뛰어나간다고요? 연구자들은 참 대단하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기린이 좋아서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저자는 ‘동물원에서 연락이 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나간다’라는 마음 자세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30여 마리의 기린을 해부했고 골격 표본을 만들어 박물관에 보관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저자가 기린 해부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해부는커녕 기린 사체를 흐트러뜨려 놓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좌절하지 않고 새롭게 찾아온 기린 사체들을 만나며 해부학자로서의 전문성을 높여갔다. 처음으로 해부칼을 대었던 기린 ‘나쓰코’, 처음으로 해부를 했던 기린 ‘니나’, 해부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게 해준 기린 ‘시로’, 실제로 제1흉추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 기린 ‘아오이’의 새끼 기린 등 많은 기린들이 그녀 연구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그녀에게 해부실은 차가운 죽음의 공간이 아니었다. 열정과 치열함이 숨 쉬는 행복한 곳이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연구 주제를 스스로 찾아냈으며 꾸준한 노력의 힘이 어떻게 놀라운 성과로 이어지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또한 그녀는 기린과 함께 보낸 10년 동안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의 소중함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세상은 언제나 그녀에게 다가와 주었다. 같은 흥미를 가진 사람이 다가오는가 하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나 기회를 주는 사람도 만났다. 도쿄대 1학년 봄에 “기린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다음부터 많은 선배 연구자들이 친절하고 때로 엄하게 다양한 조언을 해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그녀를 지금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동물원과 박물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미래 세대의 연구에 도움을 줄 골격 표본 만들기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이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 책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물들의 ‘제2의 생애’라고 할 수 있는 사후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동물원에서 죽은 동물들이 어떻게 과학 연구에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박물관의 골격 표본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또한 한 젊은 과학자의 연구에 대해 국가와 학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지원하는지도 알게 된다. 전국 각지의 동물원들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동물 사체를 대학에 기증하며, 교수들은 젊은 과학자들의 야심찬 연구 주제에 대해 항상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열어준다. 이러한 모습은 스펙 쌓기에 급급한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 군지 메구는 이렇게 말한다. “박물관에 보관된 수많은 기린의 골격 표본을 보면 이들을 모아 미래로 가는 길을 열려고 한 과거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느껴져 몹시 감격스럽다……내게 기린 표본을 만들어 남겨준 과거 사람들에게 경이를 표하며 나도 100년 뒤의 미래로 표본을 보내는 일을 맡아나가고 싶다.” 또한 과거에서 도착한 바통을 받아 연구 성과라는 이름의 가치를 붙인 다음, 다음 세대로 보낼 수 있는 연구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과학자 또는 연구자가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될 뿐만 아니라 ‘참 지식’에 눈뜨게 하며 억지로 주입된 ‘공부’와 스스로 주체적으로 지식을 얻는 ‘학문’의 차이를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