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보절면지 (양장)

보절면지 (양장)

  • 보절면지편찬위원회
  • |
  • 논형
  • |
  • 2020-12-20 출간
  • |
  • 612페이지
  • |
  • 210 X 265 mm
  • |
  • ISBN 9788963572444
판매가

100,000원

즉시할인가

90,000

카드할인

0원(즉시할인 0%)

적립금

1,000원 적립(1%적립)

배송비

무료배송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추가혜택

네이버페이 무조건 1%적립+ 추가 1%적립

수량
+ -
총주문금액
90,0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남원시 보절면은 천황봉을 머리로 하는 만행산의 큰 품 안에 있다. 보절은 만행산의 12개의 줄기와 하천에서 흘러 내려와 12평파로 9개리와 40여 개의 마을로 형성된 곳이다. 12평파의 들판은 보절 사람들에게 생명의 원천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만행산은 백두대간의 한 줄기이고, 아울러 백두대간이 유라시아 대륙 곤륜연간의 한 줄기이다. 한마디로 보절은 천황봉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고장이다.

만행산의 ‘천황봉(天皇峯)’ 역사는 결코 일제 강점기에 창산개명된 것이 아니다. 천황봉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는 만동에서 살았던 매헌 소산복(梅軒 蘇山福, 1556~1620년)의 시이다.

만행산 천황봉 전경

天皇晩雲 천황봉의 저녁 구름

斗峯高?天 머리봉이 높이 솟아 하늘에 뻗쳐 있는데,
日晩雲猶? 날 저문 구름은 오히려 덮여 있네.
無心自去來 무심하게 스스로 오고 갈 뿐,
不?眞容碧 푸른 참모습을 방해하지 않네.
(매헌이 노래하는 “머리봉斗峯”은 천황봉을 가리킨다. 시의 제목에 명시적으로 천황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만행산 천황봉과 보절의 현대를 읊은 희당 안재직安在稷, 1900~1961년은 이렇게 묘사한다.

登天皇峯 천황봉에 올라

穹?拔地鎭南鄕 하늘이 땅을 뽑아 남쪽 고을을 누르니,
眼底群巒自下牀 눈 아래 뭇 산은 절로 평상보다 낮아졌네.
猿飮終愁聯臂短 원숭이 마시면서도 끝내 근심하니 비단가를 연상하고,
鳳飛應許覽輝長 봉황이 날아 화답하는 곳에 광채가 긺을 볼 수 있네.
賦台寓興孫非隱 누대에서 시를 지어 흥을 부치니 손등은 은자가 아니고,
登華示敎韓豈狂 화자강에 올라 가르침을 보이니 한강이 어찌 미쳤으랴?
多賴孤菴能答效 외로운 암자에 많이 힘입어 공로에 보답하고,
六時鍾鼓?心香 육시를 알리는 종과 북소리에 마음의 향을 불사르네.

‘보절’이라는 지명은 1914년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1914년 이전의 보절의 역사를 찾아보기 위해서 ‘萬行山(만행산)’과 ‘天皇峰(천황봉)’을 색인어로 추적해야 했다. ‘만행산’이라는 지명을 통해서 보절의 역사를 추적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보절은 백제의 중요한 군사요충지였고, 국경도시였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보절의 옛 지명인 거사물이 청웅으로, 청웅이 거령으로, 거령이 보현과 입석으로, 보현과 입석이 보현과 고절로 개명되었고, 최종적으로 보현과 고절이 합쳐져 보절이 탄생했다.” (〈역사 속의 만행산과 천황봉〉에서)
이 책은 크게 여섯 가지 관점에서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새로운 점을 밝혀내었다.
첫째, 역사학의 관점에서, 승자 중심의 역사에서는 포착되지 않았던 백제의 역사를 규명하는 데도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 백제시대 보절은 거사물이었다. 이는 ‘신령스런 마을’을 뜻한다. 하지만 보절은 아주 슬픈 역사를 지닌 땅이다. ‘보절’은 663년 3월에 백제를 지키기 위해 거물성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백제 병사들이 묻힌 곳이다. 이와 관련해서 백제의 군사 읍성이었던 거사물에 이 지역 일대를 관장하는 현청이 있었다는 주장을 새롭게 제안하였다. ‘보절’이 가장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는 7세기였다.
둘째,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예컨대 공간적으로 지방과 한양의 관계가 남과 북의 시선으로 볼 때는 포착되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 백제의 문제를 접근할 때는 동과 서의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백제의 역사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공간적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이동이 중요하다. 남과 북이 아니라 동과 서의 시선으로 보절의 지리적인 특징을 보아야 한다. 그러한 시선으로 볼 때, 384년에 호승 마라난타가 가지고 들어 온 불교가 대략 130여 년 만에 영광의 법성포에서 천황봉에 있는 귀정사에 정착하게 된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보절’과 ‘귀정사’가 백제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끝에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새롭게 밝혔다.
셋째, 보절 역사와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보절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문헌을 새롭게 발굴하였다. 더 많은 책이 있겠지만, 특히 매헌 소산복의 《매헌집》과 안재직의 《희당집》은 보절의 역사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문헌이었다. 이 문헌에 대한 번역과 주해가 시급하다. 보절면 진기리에 살았던 소재준의 문집과 그가 수집한 만 권이 넘는 서책과 서당마을의 증손 양영철이 현재 보관하고 있는 단계 양재구의 100여 권이 넘는 서책 및 각종 자료도 보절면 차원에서 관리와 보존,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또한 상신마을의 전주 이씨 문집(李可哲: 思句齋公 文集 1卷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이강수 보관, 李敎政: 農隱公 文集 2卷 보절면 신파리 이규수 보관)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넷째, 유학(儒學) 연구의 관점에서, 보절에서 활동하던 유림이 기본적으로 사림 전통을 계승하였고, 선조 시대를 중심으로 꽃피웠던 성리학의 크고 작은 논쟁에 보절 유림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조명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조헌(趙憲, 1544~1592년)은 소산복을 ‘호남진유(湖南眞儒)’라고 예찬하는데, 소산복이 지행일치의 모범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실천을 강조하는 호남 유학의 특징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에 대해 매헌 소산복을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병 활동에 참여한 전거와 증거를 제시하였다. 또한 보절의 유림이 다른 지역의 유림 그리고 한양의 유림과 어떻게 만나고 교류했는지 살피고, 이를 통해 보절이 지방의 궁벽한 향촌이 아니라 중앙과 거의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고장이었음도 밝혀두었다.
다섯째,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보절에 성씨 정착과정을 통해 보절에도 이른바 보절판 ‘디아스포라’ 현상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성씨의 정착과 이주, 혼인 관계로 형성된 씨족 공동체가 매우 강력했음도 밝혀 두었다. 보절의 디아스포라 현상은 비단 보절만의 사례는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도, 경상도 등 대한민국의 어느 고장에 가도 이와 같은 디아스포라 현상은 발견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과 대한민국의 각 지방이 한편으로 혈통의 연결, 다른 한편으로 혼인의 인연으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보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밝히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지역학 연구, 즉 남원학과 호남학을 연구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연구의 방법론과 관련해서 문헌 연구와 현장 연구의 결합이라는 점과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이른바 하향식이 아닌, 가장 낮은 바탕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상향식 연구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학술적인 의의가 크다.

예컨대, 보절의 마을, 산과 들에 남아 있는 성터와 유적, 이와 관련된 옛 지명과 이야기를 《삼국사기》, 《고려사》 등의 역사 문헌에 간략하게 기록된 사건에 맞추어 보면 그 본말과 진상이 드러난다. 기존의 문헌 중심 역사 해석을 넘어 현장 중심의 유적,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와 지명의 결합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 책의 강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시대 보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터와 유적에 대한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져야 한다.
끝으로, ‘보절’이라는 이름에 담겨있는 의미를 곰곰이 살펴볼 것을 권한다. ‘보절’이라는 이름은 한편으로 보절과 관련된 모든 사람과 사건의 역사를 연결하는 기억 장치이고, 다른 한편으로 비록 보절을 떠나 살고 있지만 보절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묶어주는 연결망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보절에서 태어났지만 보절이 아닌 타지에서 살고 있는 보절 사람의 자식과 손자를 위한 것이다. 또한 ‘보절’을 행정 개념이 아닌 기억과 네트워크의 개념으로 만든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절면지: 보배와 절의가 숨어있는 보절 이야기》라고 붙인 이유이다. 《보절면지》는 1914년에 행정적으로 확정된 보절면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되지만 ‘보절 이야기’는 보절과 관련된 사람과 일, 그리고 이야기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절면지를 위해 학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역사 및 고고학 자문 교수는 다음과 같다.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김월회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교수, 김종일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백제시대의 산성전문가 심광주 LH토지박물관 관장,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조대연 교수의 자문은 《보절면지》 탄생에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서울대 고고학과 대학원생 손하누리, 배상현, 김진오의 원고정리는 책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어머니와 고향의 품속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40년이 지났어도 언제나 내 고향 보절은 아련한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다. 내 마음의 기둥인 보절은 항상 그대로인데 나만 세월의 흔적을 남긴다. 앞으로도 영원하라. 내 고향 보절이여. -박종숙(1회, 사촌)
처마 끝에 긴 고드름, 천황봉까지 어이진 하얀 눈밭, 자석처럼 쩍쩍 달라붙던 문고리, 댓돌 위에 올망졸망 고무신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내 그리운 가족들! 관평댁네 육남매 마음의 손가락 같아 날마다 미소를 만드는 내 고향 보절의 기억 마음은 늘 보절에 삽니다. -최미선(3회, 외황)
가실 농사 끝나고 겨울이 오기 전 밭에서 뽑아온 무시를 밭 구덩이에 파묻어 놓으면 겨울 내내 어린 노란 무시 순이 나옵니다. 시안에 우리 어머니는 무시 순을 살짝 데쳐 조선간장에 들기름을 얹은 후 조물조물 무쳐주시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수한 어머니의 손맛과 꿈에도 잊지 못하는 보절 성내미가 그립습니다. -강민석(9회, 성시리 성남)
눈을 감으면, 천황봉 아래 보현사에서 울려 퍼지던 종소리가 생각이 난다. 땅거미 질 때 이집 저집 굴뚝에서 새하얀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르던 모습과 그 내음 생각이 난다. 고향의 향취가 내 안 깊숙이 들어와 나는 어느새 고향 앞마당에 와 있다. -유택종(9회, 사촌)
천황봉 아래 마을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마을 어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 황금빛 들판, 그 속에서 뛰놀던 우리들의 웃음소리, 새벽종과 함께 한 부모님 발자국 소리! 마음 가득 기억하고 있습니다. -송채영(10회, 음촌)
500여 쪽의 거대한 보절 이야기를 하루 한 장씩 읽다 보면 500일이 행복하겠죠? 보절 이야기를 세상에 태어나도록 한 분들과 내 동생 하광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아들 진관이에게 2021년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김하왕(7회, 사촌)
그 옛날 산판이라고 했던가요? 제무시라는 미제 트럭에 소나무 잘라 산더미처럼 실어 나르던 가을에 추수하여 벼 공판할 때 “산동떡네 나락은 1등인디 왜 우리 나락은 3등이여...?”라며 동네 이장인 우리 아빠와 다투시던 도룡떡 어르신. 농약 치다가 농약독 올라서 헤롱헤롱하던 시절. 새마을운동 때 하얀 편지 봉투에 숙제처럼 제출한 잔디 씨앗. 겨울 오기 전 삼촌이랑 지게 바작에 짊어진 갈퀴나무. 고향! “그대”가 있었기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죄송합니다. -소순형(9회, 진기)
남원에는 광한루만 있는 줄 알았는데, 편집 참여로 보절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처음 보절을 방문했음에도 명예 보절민처럼 맛있는 음식과 환한 웃음으로 정말 따뜻하게 환대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보절이 발굴 조사와 성곽 정비를 통해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합니다. -배상현(보절면지 편집팀)
올해 8월까지만 해도 보절이란 곳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편집에 참여하여 보절을 알아가는 과정에 보절은 제게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삭막한 도시에서만 살아온 저로서는 정감 있고 경치 좋은 고향을 하나 더 갖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보절 12경 지도를 작성하다가 마침내 처음 방문한 보절의 그날 또한 잊지 못할 것입니다. -김진오(보절면지 편집팀)
그를 처음 만난 해가 40대 초입, 그러니까 2005년 봄이었다. 15년이 흘렀다. 그가 남원 출신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아차렸지만 보절 사람인 줄은 불과 3년 전에야 알았다. ‘보·절·면’이라 밝히는 그의 음성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왜 있지 않은가 ‘함평군 학교면’이라든가,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처럼 ‘보절’의 음향이 조금 특이하게 들린 탓이다. 인문학의 대향연 보절면지 원고를 교정·교열하면서, 더 나아가서는 보절의 곳곳을 답사하면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야말로 상전벽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편집 막바지의 요즘은 안구가 돌출될 지경이다. 아침마다 튀어나온 눈을 원위치로 돌리느라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보절을 특이하게 받아들인 내 비뚤어진 마음은 지수화풍의 각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보란 듯이 반듯해지고 있고 건성으로 웃던 입은 가위 경건하기가 보현사 도량처럼 웅숭깊어졌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와 남(南)을 찾는(原) 어머니 만행산과 아버지 천황봉이 이끄는 보절면의 형국은 하늘에서 보면 배를 닮았다. 감히 나는 이 배가 동이족의 후천개벽을 여는 데 크게 이바지하리라 자신한다. 이 책이 그 모든 것을 대변한다. -이종욱(논형 편집위원)


목차


발간사 · 축사
제1장 역사 속의 만행산과 천황봉

제2장 역사 속의 보절의 탄생과정

제3장 보절의 마을
1. 서치리書峙里/ 2. 괴양리槐陽里/ 3. 진기리眞基里/ 4. 금다리錦茶里/ 5. 신파리新波里/ 6. 황벌리黃筏里/
7. 도룡리道龍里/ 8. 사촌리沙村里/ 9. 성시리城侍里/ 10. 덕과 만도리晩島里/ 11. 덕과 신양리新陽里/
보론: 6·25 전쟁과 보절

제4장 보절의 성씨
1. 보절에 살았던 씨족 공동체의 특징/ 2. 현재 살고 있는 씨족

제5장 보절의 인물
1. 역대 인물/ 2. 현대 인물

제6장 보절의 교육
1. 백제시대 거사물의 불교 교육과 군사 교육/ 2. 고려 시대의 거령의 불교 교육
3. 조선 전기와 중기 보현과 고절의 유교 교육/ 4.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의 보절 교육
5. 광복 이후의 보절 교육

제7장 보절의 말, 노래, 이야기
1. 보절말/ 2. 보절의 노래/ 3. 보절 이야기

제8장 보절의 명소와 명물
1. 보절 12승경十二勝景
제1경 만행산 천황봉/ 제2경 거령산 거물성, 내황 거사물현 성터/ 제3경 바람바위와 할미바위
제4경 신흥석불, 요이정, 다뫼조탑/ 제5경 보현사, 용평제, 용호정, 청류폭포
제6경 말무덤과 사기점, 개다리 폭포/ 제7경 삼괴정과 삼동굿놀이/ 제8경 반송정과 고인돌
제9경 쳔연기념물 281호 진기느티나무/ 제10경 다산제, 보절의 저수지
제11경 문류정, 호암성원, 오종문, 충렬각, 계룡산/ 제12경 구라재, 변서방터, 서정이, 갑산
2. 보절의 12승경과 역사 지도

제9장 보절면의 현황
1. 위치 및 지형/ 2. 면적과 인구/ 3. 지세/ 4. 기후/ 5. 주민/ 6. 행정/ 7. 사회단체/ 8. 경제/ 9. 교육/ 10. 종교/ 11. 문화유산

맺음말/ 발跋

참고문헌/ 색인/ 남기고 싶은 이야기/ 《보절면지》 발간에 도움을 준 사람들/ 《보절면지》를 만든 사람들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