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서문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또렷이 생각나는 만남이 있다. 20여년 전 파리의 오래된 도서관에서의 일이다. 필요한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무엇을 봤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19세기 당대의 신기술을 고풍스럽고 화려하게 녹여낸 도서관의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서관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도서관 참 아름답습니다”라고 한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모든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습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은가요?
게다가 도서관과 박물관엔 자유가 있어요.
길거리에 나가보세요. 거기 과연 자유가 있습니까?
책과 그림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고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그 곳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도서관과 박물관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나의 취향이 자유에 대한 무한한 갈구와 통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도서관을 지키는 평범한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여기 묶은 글은 박물관과 전시회를 다니며 펼친 내 자유와 상상력의 흔적이다. 나의 여정이 독자들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이 될 수 있기를. 서둘러 미로를 빠져나가고 싶어하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미로가 주는 긴장감과 다가올 햇살에 대한 희망으로 행복하기를. 내 삶을 풍요롭게, 그리고 슬프게 했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0년 12월 정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