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삶에 대한 통찰은 오래 전부터 사회적 화두였다. 입센의 <인형의 집>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막연하게 억울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의 여성들은 로라의 삶이 허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핍박받는 여성(들)의 처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다시 구해야 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와 함께 몇 가지 중요한 변화도 동반되었다. 핍박받는 이들이 비단 여성만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점차적으로 공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먼 타국에 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제3세계 노동자도 그러한 이들이고, 남성/여성이라는 두 개의 획일적 성 관념에 편입하지 못하고 자신을 숨겨야 하는 성 소수자도 그러한 이들이며, 주인을 잃고 인간 마을을 떠도는 유기견과 동물들도 그러한 이들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국적과 인종과 종교와 재산에 따라 불이익과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야 하는 이들도 물론 그러한 이들이다.
세상을 둘러보면 그러한 이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힘없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을 세상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부당한 힘을 가로막고 밀려나는 이들을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힘을 되찾는 일까지는 제대로 완수하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은 그 힘을 읽고, 정리하고, 알리는 데에 그 목표를 두었다. 이 책은 이러한 힘들을 이해하려는 확장된 사고 위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비단 여성의 삶과 고통만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대표 명사로서 여성들을 살필 수 있는 시야를 갖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