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선의 ‘동물시편’ 연작 『은둔자들』과 『열마리곰』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들의 이름은 시의 호명 대상이 아니다. 그 이름들은 여기 이 땅과 바다, 하늘을 나누어 쓰고 있는 뭇 생명들의 개별적이고 존엄한 ‘있음’의 당당한 발화이자 각인이거니와, 시는 그 생명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다. 인간의 척도가 허물어진 그곳에서 최계선의 시는 ‘앎’을 자랑하지 않고 다만 경청하고 고개 숙이는데, 그 순간 놀랍게도 마치 처음처럼 ‘시적’인 것은 발견되고 약동한다. 그렇게 생명의 ‘은둔자들’과 ‘열마리곰’은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는 시의 신명을 개시하고 있다.
한 달 전 내린 눈이 그대로다
숲이 텅 비었다
새 발자국 하나 없다
눈 속에는 어떤 정령들이 묻혀 있을까
북미원주민 위대한 추장들은
어디 화톳불에 둘러앉아 담배 피우고 있을까
그들의 들판과 하늘과 냇물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
자연의 위대한 정령들을 만나 정령의 숲으로 함께 걸어간—열마리곰, 붉은구름, 외로운늑대, 흰곰(사탄타), 앉은소, 점박이꼬리, 차는새, 미친말, 쓸개, 흰말, 키큰황소, 작은까마귀—그들의 천막은 어디에 있나
산 위를 돌아다니는 천둥은 어디로 갔고, 큰나무, 늑대목걸이, 큰발, 까마귀깃, 검은매, 까마귀발, 여우말채찍, 수달허리띠, 큰독수리, 점박이뱀, 차는곰, 파란독수리깃털, 서있는곰, 그들은 또 어디로 갔나.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던 망령의 춤 북소리는 왜 들리지 않는가
숲이 텅 비었다
쥐 발자국 하나 없다
내 그림자가 불곰으로 지쳐 기대앉는다
―「불곰」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