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윤동주 살아있다

윤동주 살아있다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인의 모든 것

  • 민윤기
  • |
  • 스타북스
  • |
  • 2021-10-05 출간
  • |
  • 640페이지
  • |
  • 143 X 210 mm
  • |
  • ISBN 9791157956098
판매가

22,000원

즉시할인가

19,800

카드할인

0원(즉시할인 0%)

적립금

1,100원 적립(5%적립)

배송비

무료배송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추가혜택

네이버페이 무조건 1%적립+ 추가 1%적립

수량
+ -
총주문금액
19,800

이 상품은 품절된 상품입니다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이 책은 그동안의 기록과 폐간되어 없어진 국내외의 신문 잡지를 찾아 자료를 모아서 정리하고 번역했다. 따라서 윤동주의 탄생부터 서거까지를 망라한 책으로 영원한 청년 시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그의 친구, 스승, 가족과 함께 사후 윤동주를 연구하고 사랑한 사람들의 글을 통해 그의 한글 사랑과 독립에 대한 염원과 시를 쓰는 절절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인의 ‘시 정신’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근배 시인의 헌사
내가 세 번째로 윤동주 묘소를 찾은 것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였다. 시비(詩碑)는 옛모습 그대로인데, 콘크리트로 봉분 둘레를 새로 단장해 놓았고, 옆에 “윤동주(1917-1945)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다”로 시작되는 문구를 새긴 표지석도 세워놓았다.
“애국시인이라니!”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조국 한국을 사랑했고 한글로 시를 썼고 한국을 사랑한 까닭으로 스물여덟에 목숨을 잃었는데, 언제 어떻게 중국을 사랑했다는 것인가. 더욱 가슴을 치게 하는 것은 생가를 복원해놓고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고거(故居)”라고 크게 푯말을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민족시인이자 애국시인인 윤동주가 중국의 애국시인으로 못 박히는 것을 동주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아니 용정에 있는 한인교회 공동묘지의 산소를 옮겨 올 수 없다면 서울에 ‘윤동주 시공원’을 하루라도 빨리 조성해서 가묘(假墓)라도 만들어놓고 높이 시비라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앞세우고 돌아왔다.
내가 태어나기 스물두 해 전 만주국 간도성 용정가 231동 36호에서 태어나, 내가 여섯 살 되던 해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눈감은 동주의 시를 공부할 때도, 문단에 발을 내딛고 서도 이름만 알고 몇 편의 시만 어찌하여 어렵게 찾아갔던 것인지, 그리고 오늘 그 날짜를 당도하여 나는 왜 나도 모르게 동주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인지? 옷깃을 여미고 육필 시고를 다시 읽고 유고시집 책장을 다시 넘긴다.
동주여! 먼 은하의 별들로 두 쪽 난 그대 조국의 하늘과 땅에 눈부신 광채를 뿌려 주는 아이배(童舟)여! 오늘토록 내게 던져준 이 아프고 질긴 닻줄을 거두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돛폭을 올리고 모국어의 더 너른 바다로 저어가라. 여기 『윤동주 살아있다』에 바쳐지는 헌사(獻辭)처럼 영원토록, 영원토록! -동주 별 은하로 뜨다(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민윤기 시인의 책머리에
우리나라는 윤동주 보유국입니다. 일본도 윤동주 시인을 탐하고 중국도 윤동주 시인을 욕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윤동주를 지키고 기려야 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우리에게 ‘하늘’이고 ‘바람’이며 ‘별’이고 ‘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윤동주는 청년들에게 삶의 지표가 되었고, 시인들에게는 왜,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2017년 ‘윤동주 100년의 해’ 선포식을 가진 후부터 저는 윤동주 시인의 혼적이 남아 있는 많은 현장을 탐사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유혼(幽魂)과 만났습니다. 이를 통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윤동주 관련 유의미한 자료 수집은 물론 아직 규명되지 않은 윤동주 죽음의 미스터리를 취재하여 그 결과물들을 이 책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윤동주를 ‘발견하고’ ‘지키고’ ‘기리는’ 일의 시작일 뿐이어서, 누군가 더 능력 있는 분들이 더 ‘깊이’ ‘정확하게’ 계속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 윤동주 시인 순절 77주년에 맞춰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펴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문학평론가 저널리스트 서울시인협회 회장)

처음 공개되는 사실 10가지
01 윤동주 시신을 화장한 화장터는 후쿠오카 히바루 장제장이다
02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서시」라는 제목이 없다
03 왜, 어떻게 고향에서 윤동주 가족은 재산도 빼앗기고 쫓겨났을까?
04 ’윤동주는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중국 동북공정의 음모
05 이떻게 일본 국어교과서에 윤동주 시가 실리게 되었을까?
06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를 어떻게 참혹하게 죽어갔을까?
07 신사참배 반대운동 앞장서다 숭실중학을 자퇴한 윤동주의 용기
08 윤동주와 교유한 일본시인을 최초로 공개한다
09 윤동주는 창씨개명하지 않았다
10 윤동주에게는 시인 막내동생이 있었다

윤동주 시인을 사랑한 사람들

윤동주는 죽기 전에 그의 시 속에서 죽고, 그 시를 열고 이제 부활하였다.(문익환)

오똑하게 쪽 곧은 콧날, 부리부리한 눈망울,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 윤동주는 한 마디로 미남이었다. 투명한 살결, 날씬한 몸매, 단정한 옷매무새, 이렇듯 그는 멋쟁이였다. 그렇다고 그는 꾸며서 이루어지는 멋쟁이가 아니었다. 천성으로 우러나는 멋을 지니고 태어났다. 바람이 불어도, 눈비가 휘갈겨도 태산처럼 요동하지 않는 믿음직하고 씩씩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몹시 단정하고 결백했었다. 모자를 비스듬히 쓰는 일도 없었고, CCC라는 글자가 새겨진 교복의 단추를 모로 기울어지게 다는 일도 없었다. 양복바지의 무릎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일도 없었고 신발은 언제나 깨끗했었다. (정병욱)

윤동주는 교실과 서재와는 구별이 없는 친구다. 달변과 교수 기술과 박학으로 명강의를 하는 정인섭 선생님에게는 누구나가 매혹되는데, 학기 말 시험에 엉뚱하게도 작문 제목을 하나 내놓고 그 자리에서 쓰라는 것이다. 밤새워 해 온 문학개론의 광범위한 준비가 다 수포로 돌아갔다. 억지춘향으로 모두 창작 기술을 발휘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필자 역시 진땀을 빼며 써냈더니 점수가 과히 나쁘지 않아 천만 다행이라고 안심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동주는 바로 그 제목의 그 글을 깨끗이 옮겨서 신문 학생란에 발표하였다. 제목은 「달을 쏘다」라는 것이다. (유영)

조용한 몸가짐에, 격동하는 마음을 가진 시인이 윤동주입니다. 모진 바람이 불어오고, 눈보라 속에 휘말려도, 조용히 이를 맞아 가며 사는 시인이었습니다. 죽음의 뜻을 깨쳐 가며 사는 시인이었습니다. 순수하기만 한 시인입니다. 늘 잠잠한 표현을 합니다. 그런 삶의 리듬이 시에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읽혀지는 것이라 봅니다.(박창해)

윤동주가 옥사했다는 부음을 나는 신경(新京)에서 받았다. 후쿠오카 형무소를 찾기는 동주가 사망한 지 10일 후였다. 면회 절차 수속을 밟으며 뒤적거리는 놈들의 서류를 보아한즉 ‘독립운동’이라는 글자가 한자(漢字)로 판 박혀 있는 것이었다. 시체실로 찾아가 동주를 찾았다. 관 뚜껑을 열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요?”라고 동주는 내게 호소하는 듯했다. 사망한 지 열흘이 되었으나 규슈제국대학에서 방부제를 써서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본 청년 간수 하나가 따라와서 우리에게 하는 말, “아하, 동주가 죽었어요, 참 얌전한 사람이…. 죽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외마디소리를 높게 지르면서 운명했지요.” 하며 동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윤영춘)

처음 얼마 동안은 하숙생을 과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신경질만 부렸던 김 송 씨도 오히려 그들이 연희전문 문과생이라는 것과 특히 윤동주 학생이 시를 쓰는 젊은이임을 알게 되자 차츰 호감을 나타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산책길에도 함께 나서는 등 급속도로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었다. 마치 한 집안 식구처럼 지내게 된 윤동주는 특히 그 집 막내아들과 양견(洋犬) 포인터를 무척이나 귀여워했었다. 다정다감한 윤동주 청년의 프로필은 누상동 어귀나 골목에 끈적끈적한 여운을 남겼다. 인왕산 산책길에 김 송은 윤동주와 자주 동행하였다. 윤동주는 치마바위에 걸터앉아 사색을 즐기는 성 싶었다. 어느 날 그는 그곳에서 장안을 눈 아래 굽어보면서 말을 꺼냈다. “김선생님, 조선 시단의 흐름이라고 할까, 시단의 현황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권일송)

지난 날(1942년) 나는 ‘말레이 작전’에 종군, 부상을 당하고 구사일생 끝에 살아나 군마현 누마다 육군병원에 있었다. 그런데 8월 말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타났다. 환자옷 차림의 나를 보더니 그는 연민스런 미소로 나를 껴안아 주었다. 그는 9월부터 교토의 대학에서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단정한 그의 모습은 어딘지 스산해 보였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둔한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나의 전우인 조선 출신 고(高) 중위의 동생이 맡겨놓은, 새로 출간된 일본 시집을 집어 들었다. “동주야, 네가 좋다면 그 시집을 선물할게.” 이윽고 나는 아카기산(赤城山)이 바라보이는 그 병원을 떠났다. 상처가 대충 원상으로 회복되자 되찾은 시력으로, 교토를 방문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나는 조선해협을 건너 만주로 갔다. 나는 그 무렵 윤동주가 암흑의 동굴 속에 있으면서 더욱 더 한 줄기 불빛을 비추고 있는 꿈을 꾸었다. 쇼와 18년(1943년) 수도 신경 초여름의 상쾌한 관사에 있던 나에게 보내온 친구의 전문(電文)은 “동주 체포”였다. 한 순간 눈앞을 검은 장막이 뒤덮고 솟아오르는 분노로, 예전에 전차포를 우리 아군의 사령부를 향해 발사한 사고思考의 흐트러짐을 내 정신의 분열과 함께 느꼈다. 윤동주는 나의 뇌리에 아름답고 선명하게 불꽃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다. ‘치안 유지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윽고 윤동주는 조국의 해방을 눈앞에 두고 옥중사(獄中死)했다. (우에모토 마사오)

윤동주는 언제나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리며 살았던 시인이었다.(마광수)


목차


머리말
엮은이가 독자에게
일러두기

1
윤동주의 최후의 사진 - 야나기하라 야스코
윤동주 도쿄 하숙집과 그 집에서 쓴 다섯 편의 시 - 야나기하라 야스코
윤동주는 ‘시대의 아침’을 기다렸다 - 이부키 고
윤동주, 그 죽음의 수수께끼 - 고노 에이지
「서시」는 원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 민윤기
윤동주를 향한 일본인의 긍정 부정 3가지 시선
윤동주의 혼이 부산에 머물고 있다 - 양왕용
일본어 번역 「서시」 오역 상태가 심각하다 - 가와즈 기요에
윤동주 추모비 옆 무궁화나무 테러에 시달린다
윤동주 시신을 화장한 화장터를 찾았다
일본아, 한국 국민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 - 미즈노 나오키
릿교대에도 윤동주 시비가 세워진다
윤동주 ‘안 알려진, 잘못 알려진’ 7가지 - 신길우
윤동주 가족은 명동촌에서 이렇게 쫓겨났다

2
윤동주의 소년 시절 - 김정우
중학생 윤동주 - 박용일
‘대학생’ 윤동주 - 정병욱
연희전문 시절의 벗 윤동주 - 유영
윤동주와 나 - 장덕순
윤동주를 생각함 - 박창해
명동촌에서 후쿠오카까지 - 윤영춘
나의 형 윤동주 - 윤일주
왜 윤동주는 누상동 하숙집을 두 번 옮겼을까? - 권일송
막내동생 윤광주의 가엾은 인생 - 리광인
나는 윤동주의 친구였다 - 타고 기치로
비운의 조선 청년 시인 윤동주 - 이바라기 노리코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윤동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3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 - 고석규
하늘·바람·별의 시인 윤동주 - 문익환
윤동주는 가장 훌륭한 시인이다, 동시에 아주 희귀한 유형의 시인 - 김용직
윤동주는 ‘저항시인’이다 - 임윤덕
‘순이’는 사랑의 상징 ‘이웃’은 연민의 상징 - 마광수
윤동주는 순결한 영혼의 불꽃이다 - 이숭원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 장석주

4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만난 108호 죄수 - 김헌술
윤동주의 처절한 최후 - 고희욱

5
윤동주 시집의 숨은 공로자 정병욱 ‘윤동주를 말하다’
윤동주 판결문 전문(한글 번역)
윤동주 시인이 애독한 시집들
황량한 벌판의 서글픈 만남 - 김승옥

윤동주 연보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