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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김수영

길 위의 김수영

  • 홍기원
  • |
  • 삼인
  • |
  • 2021-11-15 출간
  • |
  • 400페이지
  • |
  • 150 X 225 mm
  • |
  • ISBN 978896436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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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태양의 기상을 가진 청년의 열망과 억만 개의 모욕

1946년 3월 《예술부락》 2집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김수영 시인은 1968년 6월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눈을 감을 때까지 「달나라의 장난」, 「거대한 뿌리」, 「풀」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내 현대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저자는 김수영 시인이 거쳐간 장소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추적하는데, 그 과정이 격동의 현대사가 남긴 상처가 강한 의지를 가진 문학가를 만났을 때 어떻게 문학으로 승화하는가를 밝히는 거대한 서사로 읽힌다.
저자는 김수영 시인의 삶에 굴곡을 남긴 두 사건으로 유년기에 앓았던 전염병과 6·25전쟁에 주목한다. 1921년 11월 27일 종로2가 58-1번지 할아버지 집에서 태어난 김수영 시인은 손이 귀한 집안의 장남으로 어릴 때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자랐다. 조양유치원, 계명서당, 어의동보통학교에서 수학했는데, 총명함이 남달라 기울어 가는 가세를 회복해 줄 것이라는 집안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던 그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급성장티푸스에 감염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는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그는 질병을 치료하느라 중학교 입학시험을 또래보다 1년 늦게 치르게 되는데, 두 차례에 걸친 시험에서 모두 낙방하고 만다. 병을 치료하며 입시를 준비하는 게 탁월한 학업 능력을 가진 김수영에게도 어려웠던 것이다. 집안에서는 1년이 늦은 김수영에게 한 해 더 재수를 시킬 수 없어서 2차 시험 지원 학교였던 선린상업학교의 야간부인 전수과에 김수영을 입학시킨다. 이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목표였고, 집안에서 김수영에게 거는 기대도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김수영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다. 그래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수영의 심정은 선린상업학교 교지인 『등우』 특별호에 실린 그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시를 보면 “누구에게도 침범되지 않는 위용”을 가진 태양을 닮고 싶어 하는 청년의 열망을 읽을 수 있다. 그 열망은 저자가 수차례 강조하는 시인의 ‘자유의지’로 발전한다.

장엄한 아침이었다
나는 언덕에 올라
융융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본다
보라!!
그 힘찬 모습을……
누구에게도 침범되지 않는 위용……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아아 그것이다!
인생은 바로 그런 것이다!라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여 집안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1942년 2월 김수영은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어린 시절 연인인 고인숙을 만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집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장남의 무책임한 특권이자 자유의지의 발로였다. 선린상업학교 1년 선배인 이종구의 도움으로 도쿄에 안착한 김수영은 미즈시나 하루키의 연극연구소에서 자유로운 예술 정신을 만끽한다. 그러던 중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조선 학생들의 징집을 실행하자 징집을 피해 서울로 돌아올 준비를 한다. 이때 강제 징집된 이종구는 서울에 가면 한 여학생을 찾아가 자신의 징집 소식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김수영에게 한다. 1944년 2월 초, 서울로 돌아온 김수영은 진명고등여학교로 그 여학생을 찾아간다. 이것이 김수영과 김현경의 첫 만남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에서 돌아온 김수영은 부민관으로 안영일을 찾아가 연극 연출 보조 일을 시작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총동원 체제를 가동하자 언제 징용으로 끌려갈지 몰라 불안해하던 김수영은 1944년 가을, 가족이 가 있는 만주 길림으로 떠나 연극 활동을 이어 간다. 1945년 7월이 지나면서 일본의 전세가 기울고 만주 길림이 불안과 혼란에 휩싸이자 김수영 가족은 길림 집 대문을 엑스 자로 못질을 한 채 몸만 황급히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로 돌아온 김수영은 1945년 말에 박인환 시인이 문을 연 책방 ‘마리서사’를 드나들며 연극에서 시로 전향하고, 《예술부락》 주간으로 있던 조연현에게 건넨 20여 편의 시중 「묘정의 노래」가 1946년 3월에 발행된 《예술부락》 2집에 실리면서 문단에 데뷔한다. 1949년엔 ‘신시론’ 동인지 2집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공자의 생활난」과 「아메리카 타임지」 두 편의 시를 수록하여 박인환, 김경린, 임호권, 양병식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다.
1944년 2월 첫 만남을 가졌던 김수영과 김현경은 1949년 초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성북구 돈암동에 방을 얻어 동거에 들어간다. 가족들에게조차 인사 한번 안 시킨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절차도 없었고, 결혼반지도 필요 없었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식을 치르지도 않았다. 둘의 감정이 맞으면 그만이었고, 둘이 좋으면 그만이었다. 일체의 관습적인 형식을 배제한 측면에서 둘은 모더니스트로서 첨단을 걸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신혼의 단꿈은 이듬해 발발한 6·25전쟁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김수영 가족은 막내 이모의 트럭을 타고 피난을 가기로 했지만, 막내 이모의 트럭은 피난 인파와 차량에 길이 막혀 김수영 가족을 태우러 오지 못했다. 서울이 인민군의 점령하에 들어간 뒤 김수영은 8월 3일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붙들려 평안남도 북원리까지 끌려간다. 북원훈련소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김수영은 훈련소를 탈출하여 서울에 돌아오지만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뒤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어 포로 생활을 한다. 1952년 11월 28일 충남 온양 국립구호병원에서 ‘민간인 억류자’ 신분으로 석방된 김수영은 선배 이종구와 아내 김현경의 동거를 목도한다. 북원훈련소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뒤,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어 적색 포로들에게 인민재판을 받아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생환한 그에게 아들마저 버리고 간 아내와 믿고 의지했던 선배의 동거는 “억만 개의 모욕”이었다. 김수영은 이 모욕을 가족애와 문학으로 치유하고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대한 뿌리로 일어선다. 1955년 4월 김현경과 재결합한 김수영은 1957년엔 천상병 시인의 호평을 받으며 시인협회 작품상을 받았고, 1959년 생전 유일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춘조사에서 출간한다. 1960년 4·19혁명을 기점으로는 현실 참여 의식이 강한 시를 써내 우리에게 대표적인 저항 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1967년 12월부터 1968년 3월까지 이어령과 벌인 ‘순수-참여’ 논쟁과 1968년 4월 13일 부산 미화당백화점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세기적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시의 존재」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명문건으로 남아 있다.

“『길 위의 김수영』이라는 제목의 교정쇄를 펴자마자 오래전의 그 ‘노상에서’와 홍기원이 심혈을 바친 『길 위의 김수영』이 내 기억 속에서 자석으로 붙어 버린다. 그리하여 ‘길 위의 죽음’은 곧 ‘길 위의 삶’으로 환치되어 생전의 훤칠한 김수영으로 환원되고 있다. 무연고無緣故 같은 우수와 풍자를 씨줄 날줄로 삼은 시인의 초상은 신화적이었다. 그는 결코 나그네가 아닌데도 시대의 나그네로 동아시아 전역을 충전의 무대로 삼았다. 그의 산촌山村 테너의 변성기 없는 육성과 숫돌 갈아 낸 서슬 퍼런 감성과 은유 추방의 직설, 기교가 아닌 파격의 진술, 불협화음의 화음, 거기에 허망한 역설의 인식을 배태한 언어의 사금파리가 연달아 살아난다. 그리하여 어쩌면 ‘그의 죽음이 시의 죽음 그것이 아니었을까!’라는 틀려도 좋을 직감에 사로잡힌다. 이 정밀하고 성실한 발품의 다큐멘터리야말로 김수영 시세계를 매개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성취되고 있다. 장하다.”
-고은(시인)

“김수영은 한국문학사의 거대한 뿌리이다. 하지만 격동의 근현대를 거치며 그의 행적은 온전히 정리되지 못하고 때로는 오인되기도 했다. 홍기원은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김수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예순네 곳의 장소를 따라 김수영의 행적 전반을 심도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조밀하게 기술한다. 이를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모두는 역사 속에 난맥처럼 흩어져 있는 김수영의 삶의 궤적이 저절로 하나하나 자리 잡아 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김대현(문학평론가)


목차


서문
추천사

1부 떠오르는 태양

종로2가 김수영 생가 / 종로6가 집 / 조양유치원 / 계명서당 / 어의동보통학교 /
동묘 / 적십자병원, 순화병원 / 선린상업학교 / 용두동 집 / 현저동 집

2부 자유의지를 따라

일본 도쿄 / 진명고등여학교 /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 만주 길림 / 마리서사 /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 한청빌딩 / 충무로4가 집 / 전전 명동 / 성북구 돈암동 신혼집

3부 생환 기적

일신국민학교 / 전곡과 연천 / 개천, 북원, 순천, 평양 / 해군본부, 중부서 /
이태원 육군형무소, 인천 포로수용소 / 부산 서전병원,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 거제도 포로수용소 /
경기공립여중학교 / 영희국민학교 / 경기도 화성군 사랑리 / 영등포 집 Ⅰ / 국립온양구호병원

4부 낡아도 좋은 것들

영등포 집 Ⅱ / 부산 초량동 판잣집 / 신당동 집 Ⅰ / 미도파백화점 / 전후 명동 /
현대문학사 / 종삼 / 군산 전원다방과 군산YMCA / 을지로사거리와 남대문통 상업은행 /
성북동 집 / 본가 성북동 집 / 구수동 집 / 마포 종점 / 망우리 박인환 시인 묘

5부 온몸으로 온몸을

공보관 공보실 / 도봉동 집 Ⅰ / 동아일보사 / 민족일보사 / 도봉동 집 Ⅱ / 예총회관 /
신구문화사 / 민음사 / 창작과비평사 / 강릉 자혜병원 / 신당동 집 Ⅱ / 조선일보사 /
서빙고 대공분실 / 부산 미화당백화점 / 경주 불국사 청마 시비 / 광화문 발렌타인 /
예총회관 광장 / 김수영 시인 묘 / 김수영 문학관

부록
김수영 시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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