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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그날을 기다린다

새봄, 그날을 기다린다

  • 정혜영
  • |
  • 역락
  • |
  • 2022-05-02 출간
  • |
  • 172페이지
  • |
  • 141 X 201 X 15 mm /339g
  • |
  • ISBN 9791167423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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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소설가 염상섭은 나혜석이 죽은 후, 그녀를 회고하는 간단한 글을 남긴다. 이 글에서 그는 나혜석을 타산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언급한다. 김우영과의 결혼이 판단 근거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안정을 보장해줄 ‘파트너’를 구해서 결혼했다는 것이다. 유학생활도 함께 하는 등 나혜석과 염상섭 간의 오랜 친분을 고려할 때, 악의적인 표현이고, 판단이다. 특히 ‘추도’의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염상섭 말처럼 나혜석은 타산적이고 현실적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혜석은 타산이라거나 현실이라는 용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계산에 약했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정직한 사람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상황을 조율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많은 부분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기중심적으로 비추어졌고, 실제로 그랬다. 타산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성격은 그녀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나혜석은 언니와 여동생이 자산가와 결혼한 것과 달리 가난한 문과 유학생, 그것도 아내가 있는 최승구와 절절한 연애를 한다. 이 행동부터 비현실적이라면 비현실적이었다. 또한 김우영과 결혼하면서 요절한 연인 최승구의 묘지로 신혼여행을 가서, 비석을 세워달라고 부탁한 행위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어서 그로테스크할 정도이다. 그러나 한발 물러서서 보면, 이 그로테스크한 행위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 역시 정직성과 계산을 할 줄 모르는 비현실성이다. 결혼을 앞두고 상대 남성에게 예전 애인의 일을 그대로 밝히고 싶은 바보같은 여자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만, 나혜석은 그렇게 한 것이다. 결혼 상대인 김우영에게 최승구와의 관계를 정직하게 밝히는 한편, 이미 죽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최승구에게도 사랑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는 그녀 행동의 이면에는 대부분 이처럼 정직성과 계산을 모르는 비현실적 성격이 있었다.
나혜석은 이제 더는 조선 최초의 여류화가도, 존경받는 신여성도, 부영사 사모님도 아니었다. 불륜으로 이혼당한 중년 여자에 불과했다. 그녀를 지지해줬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불행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가 무너지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런 시선 따위 개의치 않고 재기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그림에 인생을 걸어보라는 오빠의 조언에 따라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에 그림을 출품해보기로 결정하고는 출품 준비를 위해 금강산으로 간다. 그림을 팔고, 물건을 저당잡혀서 경비를 마련한다. 다시 한번 삶과 맞서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이십 대 초반, 인생의 연인 최승구의 죽음 후 덮친 정신의 광란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혜석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그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자신을 뒷받침해줄 부모가 있었고, 부모의 경제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젊었다. 그래서 재기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돈도, 정신적 지지도, 젊음도, 그 무엇도 없었다. 여기에 불륜녀라는 낙인까지 찍혀있었다. 치명상을 입은 것이었다. 그녀는 일단 금강산에 머물면서 수십 점의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가지고 오빠 경석이 있는 봉천으로 가서 경석의 도움을 받아 전시회를 개최한다. 강하고 명민했지만, 언제나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으면서 누군가의 말로 자신의 내면을 대신해왔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일본 신여자들의 가르침이, 조선에 돌아와서는 오빠의 가르침과 남편의 말이 그녀 삶을 채웠다. 이제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오로지 혼자서 결정 내리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말을 듣고 혼자서 삶을 헤쳐나가야 했다.
전시회를 마친 후, 부산을 통해 도쿄로 가서 제국미술전람회에 그림을 출품한다. 출품작은 파리 체류 중에 그려둔 것으로 그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그 그림 속에 있었다. 그 그림으로 조선인으로서는 힘든, 일본 제국 최고의 미술전, 제국 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언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몰락을 예측하고 있었지만 나혜석은 포기하지 않고 일어선 것이었다. 그녀를 비춰주던 모든 후광-수원 나주 나씨 집안의 딸,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신여성, 청년 지식인들의 구애를 받던 히로인, 엘리트 외교관의 아내-이 사라져 버린 대신 그녀 자신이 빛이 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그처럼 갈구하던 인간으로서의 ‘자립’을 이루어낸 것이었다.
무엇이 이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그녀 내면에서 끌어낸 것일까. 여성에게 가혹한 조선의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여자들 대다수가 무너져갔다. 김명순은 정신의 병을 앓으며 일본과 조선을 오가고 있었고, 김일엽은 불교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혜석은 버텼다. 파리로, 일본으로 가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일본으로 도망가지도, 종교로 도망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수전증으로 손이 흔들렸지만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강하게 버텼다. 그녀를 그처럼 버티게 한 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네 아이를 향한 모성일 수도 있고, 정신의 기반이 되어온 수원 나주 나씨 집안의 후손으로서의 자긍심, 어쩌면 이 둘을 합한 것일 수도 있다.
외부로부터 엄청난 힘이 그녀를 강타했지만 그녀의 마음과 정신은 버텨내고 있었다. 제국미술전람회 입선을 계기로 전업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진다. 실제로 그림도 팔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정신력이며 생명력이었다. 그러나 나혜석이 버티면 버틸수록 그녀를 밀어내려는 조선사회의 힘은 더욱더 강해졌다. 게다가 운도 따라주지를 않았다. 제국 미술전람회를 겨냥하여 다시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지만 화재로 그림 대부분을 잃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경성의 종로에 여성미술학원인 ‘여자미술학사’를 연다. 자신이 다닌 일본최초의 여자전문미술교육기관, 여자 사립미술학교를 본 딴 것이었다. 규모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사설미술학원에 불과했지만 여성의 자립이라는 나혜석의 오랜 신념과 이상이 거기에는 들어있었다. 유화, 수채화, 연필화 등 서양미술 전 영역을 가르쳤으며, 학원 개원 기사가 신문에 나기도 한다.
조선사회가 그녀를 내몰면 내몰수록 나혜석은 엇나간 아이처럼 역방향으로 질주했다. 그녀는 최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죄목은 혼인빙자간음죄. 자신이 조선사회로 결코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나혜석은 사랑을 저버린 최린에게 지쳤고, 자신의 불행을 관망한 것도 모자라 재미거리로 삼은 친구들에게 지쳤고, 자신을 사회 밖으로 몰아내기에 급급한 조선사회에 지친 것이었다. 그녀에게 조선은 이미 살 수 없는 사나운 곳이 되어 있었다. 떠날 돈을 마련하고 조선사회와의 통로도 완벽하게 막아버리는데 있어서 최린을 상대로 한 고소야말로 유일의, 최적의 방안이었다. 최린의 정치적 중요성을 고려해서 일본 측에서 언론보도를 막은 탓에 생각한 만큼 최린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못했지만 돈은 받아낸다. 받은 돈이 목표한대로 파리로 가서 생활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파리 도착 이후의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파리가 멀면 일본이라도 건너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혜석은 조선에 남는다. 소통의 통로를 자기 스스로 닫아버린 그곳에 남는다. 아이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혜석은 이혼하고도 한동안 동래 시댁에 아이들과 머물면서 살뜰하게 아이들을 보살폈다. 첫 딸 나열이 여덟 살, 아들 선이 일곱 살, 셋째 진이 여섯 살, 그리고 귀국 후 낳은 건이 두 살이었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가 하면, 노래를 가르쳐주고, 맛있는 것을 해 먹이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아이들과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이었다. 집을 나온 이후부터는 김우영이 아이들과의 만남을 금지해서 만날 수가 없었다. 막내 건은 너무 어려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해도, 나머지 세 아이들은 어머니의 냄새와 목소리, 어머니의 자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윤리, 도덕과는 먼 세계 속에 있어서인지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일 뿐이었다.
게다가 나혜석이 나쁜 어머니도 아니었다. 최린과의 사건을 제외하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보살핀 따뜻한 어머니였다. 만주 안동현 시절, 외교관 남편의 직업상 수없이 들이닥친 손님들, 그림 그리기, 글쓰기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지만 아이들만은 빈틈없이 보살핀 나혜석이었다. 최린을 상대로 한 재판 과정에서 첫 관계의 장소와 날짜까지 모두 밝혀지는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거액의 위자료를 받아내고도 파리나 일본으로 가지 않고 아이들이 있는 조선에 남은 나혜석이었다.
아이들이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운(運)은 나혜석을 따라주지 않았다. 힘들게 그린 수십 점의 그림이 갑작스러운 화재로 불에 타버린 것은 참을 수 있었다. 어렵게 문을 연 여자미술학사에 학생들이 모이지 않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 그림은 다시 그리면 되는 것이고, 여자미술학사는 굳이 운영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거듭되는 고난 속에서도 나혜석은 버티고 또 버텨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버티고 있던 그 무렵 둘째 선이가 페렴으로 급사해버린다. 겨우 열두 살이었다. 원래가 몸이 약한데다가 항상 엄마를 찾던 아이였다. 위태로운 삶 속에서 그녀를 지탱시켜주고 있던 두 개의 축, 그림과 아이들 중, 하나의 축이 무너져내린 것이었다.
이혼 소동으로부터 사 년이 지난 때였다. 사 년 동안 쉴 새 없이 퍼부어진 조선 사회의 비난과 조소, 그녀를 조선에서 몰아내려 한 조선 사회의 잔혹한 의도 속에서도 쉼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이 있는 그 땅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한순간도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포기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빛이 보이지 않는 삶 속에서 매 순간순간 그녀는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봄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삶을 이어갔다. 가능한 한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지도, 그렇다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앞서 보려 하지도 않았다. 과거에 사로잡혀 후회할 시간도, 미래를 돌아보며 두려워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려고 하면 다시 자신을 곧추세워서 오로지 현재를 살았다. 그러나 아들 선의 죽음이 그녀에게 후회스러운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공포스러운 미래를 보도록 하였다. 심연과 같은 어둠과 마주한 것이었다. 힘들게 버티고 있던 나혜석의 몸과 정신이 한번에 허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보내온 딸 나열의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도 “분하고 절통하다”는 말만 내뱉을 정도로 과거가 그녀의 마음을 뒤덮어버리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 이후 나혜석은 급격하게 무너져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동안 써둔 글 몇 편을 정리해서 잡지에 발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얼마 쓰지를 못하고 그만둔다. 일본 유학을 갔던 딸 나열이 돌아오고, 나열과 연락을 취하기도 하지만 이미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나혜석의 정신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제가 망하고 해방이 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지만 나혜석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들 선이가 죽은 그 순간 그녀의 삶은 과거 시간 속에 묶여 정지해버린 것이었다. 이후, 나혜석은 정신이상과 마비증상으로 양로원에 입원, 퇴원을 거듭하다가 1948년 서울 시립 남부병원 무연고자 병실에서 삶을 마감한다. 52세였다.


목차


1. 어색한 한 장의 기념사진
2. 순정한 혁명의 유전자
3. 눈부신 제국의 수도 도쿄, 신여성의 도시 도쿄를 향하여
4. 현실의 공간, 조선 그리고 만주
5. 날마다 축제와 같은 도시, 파리
6. 삶의 절정이자 파국이 이루어지는 공간, 파리
7. 남자들, 최린과 김우영
8. 나혜석, 새봄 그날을 기다린다
9. 나혜석의 봄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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