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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국에 거하라

이 중국에 거하라

  • 거자오광
  • |
  • 글항아리
  • |
  • 2012-09-17 출간
  • |
  • 460페이지
  • |
  • 164 X 230 X 30 mm /905g
  • |
  • ISBN 97889673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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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천조대국의 허망한 과장에서도 벗어나고
서양과 일본의 축소 규정에서도 탈피하여
중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한 사상사적 고투

중국 사상사의 거장 거자오광葛兆光의 역작
2010년 중국 지식사회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책

지난 100여 년간 “서양적 조류 또는 일본적 분위기”는 시종일관 중국 학계를 뒤흔들었다. 어떤 담론은 중국 안에서 양복을 벗고 마고자로 바꿔 입거나, 꼬불꼬불한 글자를 한자漢子로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파고 들어오는 동시에 발효했고, 심지어는 제멋대로 중국 역사를 해석해버리기에 이르렀다. (…) 이 책의 제목 ‘이 중국에 거하라宅玆中國’는 1963년 산시 성 바오지에서 발견된 서주 청동기 하존명문何尊銘文의 한 구절로 여기서 ‘중국’은 “하늘의 중앙天之中”인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나는 이 구절을 상징으로 취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국’이라는 말이 거기서 가장 먼저 출현할 뿐만 아니라, “택宅”에는 ‘정주’한다는 의미와 함께 오늘날 통용되는 ‘집宅’의 의미가 있어서 “묵묵하게 지킨다”는 뜻과 유사하다. 이런 신구新舊의 이중적 의미로 인해, 중국에 살고 있는학자가 어떻게 해야 중국의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중국적 한계를 넘어서며, 더 나아가 동아시아 또는 세계의 배경 속에서 “중국” 관련 역사 서술이 새롭게 정립 가능한지 반성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머리말

이제 중국이 ‘중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때다
이 책의 저자 거자오광 교수는 원래 문학 전공자이지만 현재는 중국사상사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그의 저서 가운데 『선종과 중국문화』 『도교와 중국문화』 『중국경전 십종』 『사상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등이 이미 우리말로 옮겨졌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그 성망이 높다.
『이 중국에 거하라』(원서: 宅玆中國, 2010, 중화서국)는 앞서 중국에서 출간된 『중국사상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 그럴까? 『중국사상사』 저술을 통해 19세기 말의 중국 사상까지 도달했던 저자는 중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왜곡되었던 시대가 바로 20세기였기 때문에, 중국의 정체성을 올바로 규명하지 않고는 20세기의 중국사상사를 다루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과연 ‘중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중국 사상이고 아닌지를 판가름할 기준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오늘날 국제관계 및 분쟁을 통해 부각되고 있는 “중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시의적 자문도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대륙 중국은 영토 분쟁 문제에서 기존의 패권적 강대국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 봉송 때 중국 유학생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방어적 민족주의라 할 만한 흐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방어적 민족주의가 강대한 국력과 결합될 때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주변국은 물론 중국 내 지식인들도 걱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 문헌 검토 후 중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
이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은 분명하다. 그것은 중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저자는 그 ‘어떻게’를 밝히기에 앞서 과거 중국의 정체성을 검토한다. 먼저 고대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시기에 받아들여지던 중국의 정체성을 살펴본다. ‘천조대국天祖大國’이라는 용어는 그 시기의 정체성을 잘 표현한다. 이런 정체성을 받아들이던 중국인들은 중국을 천하 정치·문명의 중심으로 생각했고, ‘오랑캐’는 그 상대개념이었다. 물론 오랑캐는 중국과 맞서 대등하게 양립하는 ‘타자他者’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명이 결여되어 있어 교화가 필요한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조대국의 정체성은 송나라 성립 이후 ‘관념’적인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왜냐하면 송나라는 북방의 서하西夏와 요나라의 압박으로 인해 더 이상 실질적인 천조대국으로 자처할 수 없었고, 그 두 나라와 더불어 상호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송나라 때 국민국가적 의식이 태동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적어도 관념상으로는 여전히 자신들의 나라를 천조대국으로 상상하고, 이웃 나라와의 무역 관계를 조공체제로 여겼다고 한다.
그다음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이후 형성된 중국의 정체성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구미 혹은 서양이라는 거울에 비친 중국의 모습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중국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 서양인의 눈으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 중국에서 유행했던 동·서 문명의 비교라는 주제는 바로 그 현상을 보여준다. ‘서양에 비추어 중국은 어떤 특성을 갖는가?’라는 문제의식이야말로 문명 평가의 기준은 중국이 아니라 서양임을 역설한다.

일본 동양학의 이데올로기 총력 해부
그런데 저자가 비판의 칼끝을 겨누는 것은 중국인의 자기비하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중국 정체성을 해체하려는 구미와 일본 학계다. 그는 특히 일본의 동양학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국주의 시기의 일본은 중국을 침략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 동양학의 주 담론이었던 ‘아시아’론을 분석하여 그 이면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읽어낸다. 일본의 ‘아시아’론이란 대략, 근대화한 일본이 이제 중국을 대신해서 아시아를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이라는 과거의 제국은 이제 스스로 제국이기를 포기하고 한족漢族만의 국민국가로 축소되어야 한다고 일본의 동양학자들은 인식한다. 저자는 일본이 중국의 변경지역인 신장위구르, 티베트, 만주 등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이런 일본의 의도는 바로 중국을 쪼개어 해체하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이런 식의 중국 정체성 해체에 반대한다. 바로 이 맥락에서 최근 유행하는 ‘동아시아’론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아시아 속으로 중국을 용해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동아시아’론이 지향하는바, 곧 동아시아 역내域內의 평화 정착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송대 이래 민족국가적 면모를 띠었던 중국이 그리 쉽게 ‘동아시아’라는 실체도 불분명한 개념 속으로 용융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까지가 최근의 상황이다. 저자의 논지에 따르자면, 중국은 천조대국 식의 상상적 자아 관념이 현실에서 허물어진 이래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서양과 일본에 의해 왜곡된 정체성만 갖고 있는 셈이다. 중국인들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이고 문명국이라는 상상적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과 일본에 의해 정체성이 해체된 상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막연한 방어적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 스스로가 ‘타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
그렇다면 저자의 대안은 무엇일까?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복고적 정체성을 다시 소환할 것인가? 이것은 중국인들의 민족적 정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방책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런 상상적·관념적 정체성은 현실에 들어맞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양과 일본에 의해 규정된 정체성을 그대로 안고 갈 것인가? 그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저자의 혜안이 빛을 발한다. 아마도 그는 개인의 정체성 발달 단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개인이 어렸을 때는 어머니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상상의 세계 속에 머문다. 이때 그 어린아이는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줄 모르며, 욕구를 발하는 대로 어머니에 의해 충족되는 자족적 상태에 머문다. 하지만 점점 자라남에 따라 어린아이는 아버지에 의해 제시된 집단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그 구성원 중 하나로서 역할을 배워야 한다. 이런 규칙에 따랐는지 거슬렀는지에 의해 상벌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인이 되면서, 그 규칙을 내면화하여 전체 사회의 맥락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규정할 줄 알고 능동적으로 그 역할을 떠맡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고대에서 19세기 말까지는 상상의 세계에 살고 있던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런 중국은 자신과 타국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고, 진정한 의미의 타자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중국은 서양과 일본에 의한 규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 단계를 넘어 21세기에 중국은 자기를 스스로 규정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중국 스스로가 ‘타자’로서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중국이 스스로를 규정하기 전에 자신이 타국에 대해 하나의 ‘타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스스로 타자로 정립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대상인 타국은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곧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과 같은 나라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제 20세기처럼 구미나 일본의 ‘한 면’ 거울을 통해 중국을 비춰볼 것이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다면’ 거울을 통해 중국을 비춰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 연행사 눈에 비친 중국 재구성
그런 까닭에 저자는 조선의 연행사들이 남긴 방대한 연행록과 일본의 당통사 일지唐通事日誌 등에 주목한다. 조선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대한 풍부한 실증을 이들 자료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들 자료에 대해 초보적인 분석을 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의 연행사들은 청나라를 더 이상 중화로 보지 않았고 심지어 오랑캐로 간주하는 의식을 가졌다고 하며, 그런 사정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조선과 일본 공히 자신을 소중화小中華로 여기는 풍토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물론 청나라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나라를 천조대국으로 여겼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하고, 실제 조선과 일본인들은 중국을 그런 대국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조선, 일본, 베트남의 시선을 통해 중국을 바라봤을 때 비로소 중국은 제대로 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달리 말해서, 그렇게 할 때에만 중국의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의식이 더욱 성숙할 수 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환環황해 문명권에 대한 연구를 제안한다.(저자는 ‘황해’를 ‘동해’로 표기한다. 하지만 역자는 우리의 일반 상식에 비추어 ‘동해’를 ‘황해’로 바꾸어 번역했다.) 여기서 황해는 좀더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서해안과 중국의 동해안 사이에 있는 바다를 가리킬 뿐 아니라 더 넓게는 남중국해까지를 포함한다. 저자에 따르면, 환황해 문명권에 속하는 국가들은 처음에는 중국에 대한 일체감에서 출발했으나, 17세기 이후에는 그런 일체감이 깨져서 각국이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일체감이 깨진 원인은 무엇이고, 무엇이 각 나라로 하여금 다른 길을 걷도록 했는지 상세히 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론의 근본 전제­‘내가 나이기 이전에 너에 대한 나’
이상과 같은 저자의 제안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나이기 이전에 너에 대한 나’라는 그의 철학적 관점은 오늘날의 동아시아론이 근본 전제로 택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만 동아시아론 혹은 아시아론에 내재한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의도가 상당 부분 불식될 것이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 내 각 나라의 학자들이 이런 관점을 택하여 과거의 국제교류를 연구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하나의 문명권이 윤곽을 드러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각 나라의 개별 역사는 동아시아론으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각 나라의 역사와 사상사는 그로 인해 더욱더 풍부해지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의 두려움과 고민을 아주 솔직하게 보여준다. 구미와 일본의 동양학자들이 중국의 정체성을 해체하려 했던 과거와 현재의 작업을 보노라면 왜 중국이 현재 변경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하는지 일면 이해가 된다. 우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동북공정을 보더라도 그것은 거의 100년의 역사적 내력을 갖고 있는 사건 중 일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아직도 미국과 일본이 동북아 지역을 중국으로부터 분리해내려 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한 걸음 물러서서 이런 중국 정부의 대응을 냉철하게 바라본다. 곧, 중국 역시 과거 ‘천조대국’의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주변으로 자아를 끊임없이 투사하려는 경향을 띠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주변국의 시선을 통한 중국 정체성의 확립이란 바로 이런 양쪽의 경향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지닌다. 중국은 더 이상 서양의 기준에 비추어 자신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고, 또한 더 이상 과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대국인 양 행세하지 않아야 한다.
저자의 논지는 우리의 현실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는 중국·러시아의 대륙문명과 미국·일본의 해양문명이 충돌하는 장이다. 양측은 우리에게 ‘너희는 어느 편을 택할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묻는다. 때문에 근대 이래 한반도 안에서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해왔다. 그 결과 현재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는 형국으로 귀착되었다. 더 나아가 남한 내에서도 그런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 누구는 대륙문명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말하고, 누구는 해양문명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원심력이 지나치게 발휘된다면 국가와 사회가 또 한 차례 분열을 맞게 될 것은 뻔하다.
이런 양자택일의 물음에 현명하게 답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물음의 전제를 먼저 밝히는 것이 첫걸음일 것이다. 그 전제란 결국 주체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신념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물음 이면에는 ‘나는 어디까지나 나이고 너는 나의 영향력을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확장론은 그 전형적인 표현이다.

‘자기동일성’에서 ‘상호주관성’으로 이동하라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의 통찰은 큰 도움이 된다. 학계가 할 일은 그런 자기동일성의 철학에서 벗어나 상호 주관적 철학의 관점에서 자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현실의 국가권력이 올바로 행사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관점을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에게 강력하게 제안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학자들이야말로 그런 제안을 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 중국과 일본에 의해 침략을 당한 경험이 있고, 지금도 남북으로 갈려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 책이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정계와 정부에서도 널리 읽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특히 국가대사를 담당한다고 스스로 여기는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이 주제와 관련한 국가적 공론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주변국과 관련하여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나라를 지향해야 하는지 공론의 영역에서 논의된다면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이른바 동아시아론에서 우리나라가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자서自序

실마리 글 “중국” 관련 역사 서술의 재정립
­ 민족국가로부터 역사를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 속에서 민족국가를 이해할 것인가?
이끄는 말: “중국”이라는 문제와 문제로서의 “중국” | 스키너에서 하트웰로: “지역 연구”로부터 도출되는 중국의 동일성에 대한 의문 | 아시아에서 출발하는 사고: 아시아 속으로 융해된 “중국” | 일부 대만 학자들의 견해: 동심원 이론 | 위대한 칸의 나라: “중국” 역사에 대한 원나라와 청나라의 도전 | 탈현대의 역사학: 민족국가로부터 어떤 역사를 구제할 것인가? | 중국 역사 속에서 역사적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맺는 말: 역사, 문화 그리고 정치 ­ 중국 연구의 세 가지 관점
[덧붙이는 글 1]
[덧붙이는 글 2]

제1부 역사 속에서 이해된 중국

제1장 송대 “중국” 의식의 출현
­ 근세 민족주의 사상의 기원에 관하여
“중국론”과 “정통론”: 중국 의식의 참된 출현 | 실제 정치와 관념·상상의 차이: 천하, 사이四夷, 조공, 적국 | 중국: “국경”의 출현 | 민족, 국가, 문화의 관념: 반이교 의식과 도통의 확립 | 한족다운 것과 중국다운 것: 무엇이 한족다운 것이자 중국다운 것인가?

제2장 산해경山海經, 직공도職貢圖 그리고 여행 기록 속의 이역에 대한 기억
­ 마테오 리치 입국 전후 중국인의 이역에 대한 지식 자원 및 그 변화
상상과 지식의 차이: 이역의 상상 | 이역의 상상을 구축한 세 부류의 자원: 여행기, 직공도, 신화·전설·우화 | 상상에 상상을 덧붙이고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붙이다: 여인국, 개인간 나라, 시체 머리, 오랑캐 | 마테오 리치 이전의 이역에 대한 상상: 고전 지식과 역사 기록에서 비롯한 것 |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온 이후: “천하”로부터 “만국”으로

제3장 사상사로서의 고여도古輿圖
테두리와 중앙: 유럽의 고대 세계지도에 나타난 동양에 대한 상상 | 천하에서 만국으로: 화이도, 여지도, 우적도에 나타난 옛 중국의 관념세계 | 불교 지도: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 | 안의 제하와 밖의 제이: 명대의 해방지도海防地圖를 예로 들어 | 대“공”과 무“사”: 명대의 지방지 지도에서 본 당대인들의 공사公私 관념 | 맺으며
[부록] 수수께끼의 옛 지도

제2부 아시아 , 동아시아 , 그리고 중국의 교착

제4장 서양과 동양 혹은 동양과 동양
­ 청대 중엽 조선과 일본의 중국관
누가 “동양”이고 무엇을 “중화”라 하는가?: 17세기 중엽 이후 점차 멀어진 중국, 일본, 한국 | 명나라 이후 중화는 없다: 조선인의 소감 | 누가 중화 문화의 혈통인가?: 표류한 당선 선원과 일본인의 필담 | 길을 나누어 달리다: 17세기 이후의 동아시아에 일체감이 있었는가?

제5장 상상한 것과 실재하는 것: 누가 “아시아”에 일체감을 가졌던가?
­ 청말 민국 초 일본과 중국의 “아시아주의” 언설에 관하여
일본 근대의 아시아주의에 대하여 | 청말 민국 초 “아시아주의”에 대한 중국의 복잡한 반응 | 세계지도에 나타난 각자의 상상: 중국과 일본의 차이 |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또는 전통성과 근대성

제6장 국가와 역사 사이
­ 중국 도교, 일본 신도, 천황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본의 논쟁을 실마리로 삼아
이끄는 말: 작은 문제로부터 파생된 큰 주제 | 두 “복福”의 논쟁, 무엇에 대해 논쟁했는가? | 쓰다 소키치와 중국 도교에 대한 그의 판단 | 쓰다 소키치의 곤경: “영향”인가 “차용”인가? | “옛 층” 밑의 “옛 층”: 신도와 천황에 대하여 | 중국의 영향: 일본 학계의 새로운 관점 | 고구려를 경유했는가? 도교의 동아시아 전파 노선도 | 중국학 학자들의 논쟁 참여: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설명 | 귤이 화이수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중국 도교와 일본 신도의 차이 | 맺는 말: 도교, 신도, 천황제에 대한 논쟁의 배후

제3부 아시아 이해와 중국 역사의 방법

제7장 국경의 관문은 어디인가?
­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의 “만주, 몽고, 회족, 장족, 조선”학의 배경
이끄는 말 | 청말 민국 초 또는 메이지·다이쇼 시기: “만주, 몽고, 신장위구르, 티베트, 조선” 연구에 대한 일본의 흥미와 동양사학의 형성 | 유럽과 승부를 다투다: 일본 역사학자들이 중국의 주변에 대해 연구하게 된 동기 중 하나 | 청국비국론淸國非國論: 만주·몽고·회족·서장·조선학이 일본에서 흥성했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의미 | 국경인가 주변인가?: 역사와 현실에서 중국의 경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제8장 “서역”에서 “황해”로
­ 새로운 역사세계의 형성, 방법, 문제
이끄는 말-문명 교착의 공간: 지중해, 서역, 황해 | 서역: 근대 유럽 동방학, 일본 동양학의 방향 전환으로부터 둔황의 대발견에 이르기까지 | 황해: 동아시아 근세에서 전통 문명의 교착과 분리 | 연구 중심과 방법: 서역과 황해 연구의 차이

결론 흐름에의 참여豫流, 입장, 방법
­ 문학·사학 연구의 새로운 시각을 찾아서
이끄는 말: 학술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 국제적 시야: “노학”에서 “주변으로부터 중국 파악하기”로 | 중국의 입장: 해외 중국학과의 비교 | 교착의 문화사: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만 갇히면 안 된다 | 맺는 말

주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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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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