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던 시절 저자는 마음 깊이 이 질문을 던졌다.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양육자끼리, 또 양육자와 교사가 반목을 거듭했고, 결국 서로 갈라서고 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비폭력대화를 만나게 된다. 비폭력대화를 시작으로 대화를 통해 관계를 회복시키는 공부를 이어 나갔고, 그렇게 만난 지혜와 방법을 실천하면서 소통에 대한 희망을 현실에서 싹틔우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십 년 넘는 세월 동안 그런 삶을 살다 보니,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갈등 전환 전문가로 어느새 인정받고 있었다.
《삶을 위한 대화 수업》은 저자의 일상과 갈등 해결의 현장, 그리고 감명 깊게 읽은 글에서 길어 올린 대화에 관한 깊은 사색을 엮은 책이다. 대화를 통해 나와 공동체가 바뀌고, 변화를 통해 삶이 회복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떻게 대화는 중심 잃은 개인과 갈라진 공동체를 회복시키는가
대화에서는 ‘의미의 자유로운 흐름’이 생겨나는데,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지금의 나’에서 머물지 않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그 흐름 속으로 들어가 흘러가면, 대화에서 오가는 온갖 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에 임하기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간다. 마치 상류의 강물과 하류의 강물이 하나의 강임에도 서로 다른 것처럼.
그러한 변화 속에서 대화 참가자는 자신 안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들도 만난다. 자기 안의 어떤 존재가 지금 이 말을 내뱉는지를 알아차리며, 자기 안의 굳센 존재부터 여린 존재까지 모두 대면한다. 그 대면을 통해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건 다툼이나 승리가 아니라 보살핌과 사랑이었다는 앎에 다다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갈라진 공동체를 대화를 통해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자기 만남(또는 자기 발견)을 통한 자기 수용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에게서나 보살핌과 사랑에 대한 욕망이 가장 근원적인 것임을 알 때 공동체 구성원이 각자의 내면에 있는 고통으로 서로 이어지며, 공감과 연민을 통한 연결이 이뤄져야 비로소 공동체가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화 속에서는 변화와 발견과 연결이 이뤄지면서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이것이 《삶을 위한 대화 수업》에서 안내하고 있는 ‘회복적 대화(Restorative Communication)’의 지향점이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응보적/처벌적 교육의 대안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도입해,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각자의 자기다움을 꽃피우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문화를 세우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대화의 이런 힘을 교사들이 먼저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화를 위한 ‘힘 빼기의 지혜’
좋은 삶을 위해 좋은 대화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를 하는 게 좋을지 몰라 두려워하며,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을 꼭 이겨야겠다 마음을 먹고, 또는 어떻게든 상대방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아래 대화에 임한다. 그렇게 경직된 마음과 몸으로 하는 대화에서는 이야기가 순조롭게 흐르지 않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서로의 차이만 극명하게 대비된 채 허탈감과 후회만 남는 경우가 많다.
좋은 대화를 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 의견을 내려놓을 용기’일 것이다. 내 의견을, 나를 관철시키기보다는 대화라는 열린 공간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기를 기다리는 여유, 힘을 뺄 줄 알아야 좋은 대화가 이뤄진다고 저자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이 책은 힘을 빼고 대화에 몸을 맡긴 채, 대화가 삶에 불러올 창조적인 순간을 맞이하고픈 사람들에게 현명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내 의견을 내려놓을 용기다. 내 의견을 내려놓는 건, 때론 커다란 공포로 다가온다. 내 의견을 곧 나로 여기는 오래된 무의식적 습관이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의견을 철회하는 순간 나의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릴 거라는 믿음이 용기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의견이 존재는 아니다. 지금껏 수없이 의견을 바꾸고 내려놓았지만 나는 여기에 멀쩡히 살아서 배우고 있다.” _p.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