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군주가 갖춰야 할 자격은?
그렇다면 피렌체 군주국의 신생 군주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량(virtú)과 행운(fortuna)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역량을 고대의 덕(virtú, 비르투)과 동일한 라틴어로 제시한다. 공화국 수호자라면 공공의 이익에 대한 열망과 공동체를 위한 의무를 내면에서 끌어내는 강력한 힘을 지녀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그 힘을 비르투, 즉 역량이라고 부른다.
군주의 비르투는 야망, 결단력, 용기와 기개, 용맹성을 분출하는 원동력이다. 신생 군주는 강대국 사이에서 피렌체를 지켜내는 역량이 있고, 현장에서는 사자의 저돌성과 여우의 간교함 같은 근성과 전략을 발휘하는 자여야 한다. 그런 능력을 갖춘 실제 인물이 당시에는 체사레 보르자였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역량과 행운이 이탈리아의 통일에 사용되기를 기대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일찍 사망한다. 그 후 피렌체의 신생 군주로 등장한 조카 로렌초(메디치)가 불행 중 다행으로 체사레와 유사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미래와 관련해 ‘역량’이 있는 조카 로렌초에게 내심 기대를 건다. 조카 로렌초는 교황 레오 10세라는 종교적 권위와 재정을 등에 업은 행운아가 되었기 때문에, 역량과 행운(포르투나)을 모두 보유한 신생 군주인 셈이다.
역량과 행운을 모두 갖춘 조카 로렌초가 무자비한 전사의 기질을 보여주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자주권과 이탈리아의 통일을 모두 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간절히 청원하는 마음을 담아낸 『군주론』을 조카 로렌초에게 헌정한다.
왜 무자비한 군주여야 하는가: 양가적 파급 효과
마키아벨리는 왜 ‘무자비함’에 초점을 맞추는가? 그는 왜 체사레 같은 무자비한 군인이 신생 군주의 위치에 있다고 기뻐하는가? 마키아벨리의 본심은 로마 공화정을 모델로 삼아서 점차 혼합정체를 견인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피렌체에는 군주국을 도입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이 있었기에, 그는 일단 군주국을 강조한다. 마키아벨리가 내세우는 군주는 무자비한 전사의 기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군주는 사자의 잔인함이나 여우의 간교함 같은 동물적 본성을 갖춰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끝나지 않는 추문을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주론』이 일으키는 파장은 상당히 양가적이다. 무엇보다 서로 대립하는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령 이탈리아를 파시즘으로 몰아간 무솔리니는 마키아벨리를 ‘사상적 선배’로 간주했고, 같은 시기에 무솔리니에게 저항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람시는 반대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핍박받는 인민들을 위한 정치 서적이라고 평가한다. 무솔리니와 그람시, 이렇듯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의 ‘사상적 선배’가 동일한 마키아벨리이고, 동일한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가 지향하는 정체는 군주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이 모두 결합한 ‘혼합정체’다. 그에게 혼합정체는 고대 로마에서 실제로 시행한 모델이기에 근대적으로 다시 재현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군주가 토대를 놓는 공화국이다. 15세기 피렌체도 고대 로마에서 이미 시행했던 공화정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출발점에서는 총체적 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제왕적 권력을 발휘하는 군주가 나타나야 한다. 건국 이후의 군주는 통치 조직을 정비하면서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고 집정관의 지위로 탈바꿈하면 된다. 군주가 정부를 유지하는 부담을 다른 계층들과 반분하면, 더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를 창출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조직하는 공화국은 인민의 호의와 사랑을 받는 군대 총사령관으로서 통수권을 지닌 군주를 인정한다. 군주는 통치 권한을 제한하면서 서로 다른 신분들 간에 견제와 균형이 깨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군주론』은 건국자의 위치에 있는 자가 해내야 하는 군주의 일막극을 전개한다. 그렇다면 군주의 이막은 무엇인가? 독자들이 『군주론』의 행간을 통해 이막을 읽어내면 된다.
[시리즈 소개]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왜 오늘, 또다시 고전이며 클래식인가?”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이 고심해 쓴 글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며 깊은 울림과 성찰을 주기 때문이다. 〈EBS 오늘 읽는 클래식〉시리즈는 동서양 철학 고전을 쉽고 입체적으로 읽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안내서이자 동반자이다. 자칫 사상의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독자에게 저자는 방향을 찾아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제공한다. 동서양 고전을 오늘 재음미해서 차분히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덧 새로운 길을 발견할 것이다. 이러한 클래식 읽기는 스스로 묻고 사유하고 대답하는 소중한 열쇠가 된다. 고전을 통한 인문학적 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준다.
_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교과서 속에 머물던 철학 사상을
여기 일상에서 새롭고 다채롭게 만나다!
공자, 노자, 맹자에서 플라톤, 토머스 모어, 로크, 애덤 스미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질 들뢰즈, 슬라보예 지젝 등 현대 철학까지. 동서양과 현대철학의 대장정을 EBS가〈오늘 읽는 클래식〉시리즈에 차곡차곡 담아낸다. 철학에 관심이 많아 서점을 기웃거리지만 ‘다이제스트 철학 서적’에 만족하지 못하는 독자, 인문 고전을 읽고 싶지만 ‘원전’이라는 큰 벽에 엄두를 못 냈던 독자, 철학책은 좋지만 무겁고 부담스러워 선뜻 책장에서 꺼내지 못했던 독자까지! 철학적 지식의 깊이와 현대적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고등학생부터 성인 독자들이 지금 바로, 펼치고 싶은 고전강독 시리즈!
일생에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철학 고전,
〈EBS 오늘 읽는 클래식〉으로 오늘부터 철학 정주행!
철학 고전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고, 동서양 철학의 역사와 현대 사상의 계보를 가로지르는 철학 고전 종합서! 각 철학자들의 삶은 물론, 주요 철학 사상, 철학적 계보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추천 도서까지! 하나의 시리즈로 근현대 철학을 총망라하는 EBS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공동기획 시리즈〈오늘 읽는 클래식〉! 철학 고전으로 오늘날의 사회, 정치, 경제를 톺아보고, 현대 사회의 개인과 공동체에 필수적인 철학적 사유를 이 시리즈를 통해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