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이 아닌 회복을 선택한 보통의 영웅들
그들을 우러르지도 동정하지도 않는 끈질긴 시선
『가만한 당신 세 번째』 속 인물들은 위인전에 나올 법한 위인과는 다르다. 기존의 위인들이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려고 한다면, 가만한 ‘당신’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회복하려고 한다. 이들은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뛰어들지 않는다. 자신이 마주한 걸림돌을 넘기 위해 용기를 그러모은다. 그런데 작은 용기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룰라 콰워스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19세기 여성 작가 케이트 쇼팽을 다루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해 요르단 내 최초의 페미니즘 강좌를 열고 한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을 양성했다. 샤론 머톨라는 다큐멘터리영화 촬영을 하며 함께했던 동물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서 동물원을 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눈을 밝히다 보면, 어느새 그 빛이 타인에게로, ‘우리’에게로 번져나간다.
“그들은 모두 비범한 일을 선택한 평범한 시민들이다. (…) 내전 전 제빵사였고, 건설 인부였고, 택시 기사였고, 학생이었고, 교사였던 이들이지만 (…) 총을 들거나 피난을 떠나는 대신, 부상자를 위해 들것을 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 그들은 정부군 병사들을 구조하기도 한다. 그들의 일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지 목숨을 판단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_125쪽
책 속 인물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최윤필 기자의 시선은 한결같다. 그는 인물들을 우상화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인 해석은 자제한 채 사실만을 엮어냄으로써 객관성에 다가선다. 그의 담담한 문장 덕분에 독자들은 인물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그들의 삶에 스며들게 된다.
“인간에게 인권은 과분하지 않은가.”
인류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시대
타자의 얼굴들을 통해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다
현재 인류는 수많은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이미 심각한 수준인 기후 위기뿐 아니라 극우주의로 대표되는 정치 위기, 멸종하는 동식물들로 인한 생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가만한 당신 세 번째』에는 그린란드 빙하가 무너지고 있음을 최초로 목격한 과학자 콘라트 슈테펜, 영국 극우 세력의 핵심 인물에서 내부고발자로 변신한 레이 힐, 멸종위기종을 새롭게 정의한 조지나 메이스처럼 당대의 문제를 몸으로 겪고 돌파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삶이라는 이야기를 경유해 인류의 시급한 현안들과 대면할 수 있다.
『가만한 당신 세 번째』에는 다양한 타자의 얼굴들이 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질문하고 삶을 빚어낸 이들은, 무엇이 윤리적인 삶이고 인간다움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만연한 시대, 답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남아 있음을, 가만한 ‘당신’들은 꿋꿋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