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영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인기에 영합해 다른 작가들에 의해 속편까지 출판되었다. 18세기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던 두 가지의 문학적 전통, 즉 애정소설의 전통과 이국취미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조합시킨 데 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질리아는 페루 잉카제국의 방계 공주로 태양신을 섬기는 처녀들의 수장이며 또한 페루의 왕위 계승자 아자와 정혼한 사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식 날 아침, 그녀가 살고 있던 태양 사원에 난입한 스페인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혀 유럽으로 끌려간다.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녀는 약혼자 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그들의 행복을 회고하며, 그녀의 사랑과 그리운 마음을 토로한다. 부재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여주인공의 편지는 멀게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작품들 및 중세의 수녀 엘로이즈의 편지의 전통을 이으며, 가깝게는 17세기 말 큰 인기를 끌었던 기유라그(Guilleragues)의 ≪포르투갈 수녀의 편지≫를 연상시킨다.
그라피니 부인의 소설이 ≪페르시아 편지≫, ≪캉디드≫ 등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편지의 발신인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질리아는 여성인 까닭에 남성과는 관심 분야도 다르고, 시각도 다르다.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각의 차이는 바로 여성 문제다. ≪페르시아 편지≫의 경우, 여성 문제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페루 여인의 편지≫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프랑스 사회의 여러 현상 중 오직 여성 문제만이 두 개의 편지에 걸쳐 논의된다. 실제로 질리아는 ‘편지33’과 ‘편지34’에서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여성 폄하 현상에 대해 관찰하고 나름대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 편지들에서 그녀는 불합리한 여성교육,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 여성에게 불공정한 결혼 제도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여기에는 여성인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 그녀는 초기 습작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교육의 천박함을 실감했으며, 파경으로 끝난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 특히 남편에 의한 아내 학대를 묵인하면서도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기를 기대하는 사회 통념에 대한 그녀의 비판에는 직접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예리함과 통렬함이 엿보인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이 소설이 프랑스 문학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소설의 하나로 인정받게 된 것은 여성 문제에 대한 이러한 심층적 분석에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