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가지 사소한 주제로 만나는
마흔 가지 깊은 울림
이 책에서 동은 스님과 진광 스님은 스무 가지 ‘사소한’ 주제와 관련해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40여 년 전 토굴 시절 사용하던 ‘찻잔’을 보고는 초발심을 경책하는 선지식이라도 만난 듯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일주문’ 앞에서는 생애 가장 위대한 포기이자 탁월한 선택을 했던 출가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책길에 만난 ‘의자’ 덕분에 오솔길에 멈추어 서서 숲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음미하기도 한다.
찻잔, 일주문, 의자… 등은 누구나 비슷비슷하게 인식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자기 시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그런 ‘사소한 존재’가 아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이 이런 사소한 존재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되새기는 일 말이다. 그리하여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존재에 대해 각자가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어보면 ‘사소함’은 결국 ‘소중함’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한 철 정진을 마치면 좌복을 꺼내다가 세탁하고 햇볕에 말린 후 새로이 풀을 먹여 다시 내 자리에 가져다놓는다. 좌복 위 어딘가에 내 수행의 흔적과 작은 깨달음의 자취가 있지 않을까 확인해보지만 그저 내 부끄러움과 욕됨이 점철된, ‘바보’와 ‘천치’ 같은 것을 볼 뿐이다. 그래도 이 한 철 청복과 좌복과의 지중한 인연을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련다. (…) 나중에 다시 만날 나와 너를, 그리고 깨달음과 부처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_진광, ‘좌복에서 보낸 한 철’ 중에서
“티끌 하나에도 시방세계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티끌 같은 사소한 일들이 우리 삶을 바꾼다
〈법성게〉에 따르면,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一微塵中含十方)’고 했다. 즉 진리는 깨달은 자의 큰 뜻에만 있는 게 아닌, 티끌 같은 사소한 것들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다. 저자인 동은 스님과 진광 스님은 사소한 것들을 깊이 바라볼 수 있으면 저마다 삶이 소중하다고 느끼게 되고, 거기서 인생의 의미가 특별해진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정답이 따로 없으며,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깊이 바라볼 수 있어야 내 삶이 풍성해진다는 이야기일 테다.
이를테면 ‘와불’이란 주제에서 동은 스님은 오래전 인도 순례길에서 친견한 와불을 떠올리며, 45년간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다가 쇠약해지고 지친 몸으로 사라수 아래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한 마지막 모습을 들려준다. 동은 스님은 이렇듯 ‘가장 인간적인 삶이야말로 가장 수행자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와불을 통해 자연스레 펼쳐놓는다. 한편, 진광 스님은 운주사 와불을 떠올리며, 우리가 민초들의 벗이 되고 그들을 하늘로 알고 섬긴다면 누워계신 부처님이 어느 날 시나브로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으며, 자신도 중생의 짐을 나누어 짊어지고 세상과 중생에게로 당당히 걸어가고 싶다고 다짐한다. 와불뿐 아니라 출퇴근길, 여행의 풍경, 노을, 길 등 다양한 주제에서 두 스님은 각자가 경험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마치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자기만의 경험이 있지 않느냐고 격려하는 듯.
결국 이 책에서 두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나’만의 시각으로 존재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자기 삶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다. 저자는, 이 책이 ‘사소함’에서 시작했지만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사소함이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았음을 회고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런 식의 시도들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두 저자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전한다.
“‘사소함’이라는 주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사소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찻잔’은 사소한 것이고, ‘출가’는 위대한 것인가? 흔히 출가를 가리켜 ‘위대한 포기’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위대한 포기가 지리산 토굴 시절 작은 찻잔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난 아마 지금의 수행자로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찻잔’ 하나가 수행의 의지처가 되고 위대한 포기의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_동은, ‘시작하며’ 중에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주제에 대해 두 저자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질문에 접근해간다. 그리고 그 진지한 사유가 독자들에게도 오롯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두 저자의 글을 독립적으로 배치했다.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종국에는 하나의 길 위에서 만난다는, 어떻게 보면 이 책이 품고 있는 주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두 스님의 글을 모두 읽었을 때 좀 더 의미가 깊다. 실제로 동은 스님과 진광 스님은 글을 쓰는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서로 다른 면모를 발견하면서 더욱더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두 저자의 이런 배려가, 처음 출발점은 다르지만 도착점은 가장 가까이서 만난다는 이 책의 구성과도 잘 들어맞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 책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읽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동은 스님과 함께 같은 주제에 서로 다른 생각을 펼쳐나가면서 때론 스님의 멋진 글에 절망해서 붓을 꺾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스님과 함께하며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주제 회차가 거듭될수록 무거운 중압감은 기분 좋은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그 자체로 큰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 (…) 길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어김없이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이 길 위에서 배고픈 채로 우직하게 다만 가고 또한 갈 따름이다.” _진광, ‘마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