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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라티아

데모크라티아

  • 유재원
  • |
  • 한겨레출판사
  • |
  • 2017-09-05 출간
  • |
  • 352페이지
  • |
  • 150 X 210 X 24 mm /470g
  • |
  • ISBN 979116040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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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데모크라티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중정치’다!

한국의 대표적인 그리스학자이자 뛰어난 언어학자인
유재원이 써내려간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역사

대통령 탄핵을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서 민주공화국의 기본을 생각하는 시점에서, 아테네 민주주의의 탄생 이야기에 주목하여 참된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긴다. 국내 그리스학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고민과 생각, 갈등 등을 전하며 이를 통해 정치 권력의 주체가 귀족에서 민중으로 이동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그리스어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없다

우리가 쓰는 ‘민주주의’라는 말의 기원은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δημοκρατ?α, 영어로는 democracy)이다. ‘데모크라티아’는 ‘민중, 인민’을 뜻하는 ‘데모스’와 ‘정치, 통치, 지배’ 등을 뜻하는 ‘크라티아’가 합쳐진 말이란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그리스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데모크라티아’를 ‘민주주의’로 번역해온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리스토크라티아((영)aristocracy), 테크노크라티아((영)technocracy), 게론토크라티아((영)gerontocracy) 등은 귀족정치, 기술관료정치, 노인정치 등으로 번역하면서 데모크라티아만은 ‘민중정치’가 아닌 ‘민주주의’라고 번역한 것에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이다. 민중이 권력의 주체인 구체적인 정치체제를 뜻하는 데모크라티아를 이론이나 학설, 주장 등을 뜻하는 ‘주의(-ism)’로 번역하면서 추상적인 사상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티라노크라티아((영)tyranocracy)를 ‘참주정치’로 번역하는 것 역시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한다. 중생대의 포악한 육식 공룡을 일컫는 티라노사우르스((영)tyrannosaur)를 비롯해 ‘tyran-’이 들어간 단어들은 하나같이 ‘폭군, 포악한, 압제적인’ 등의 뜻을 지니는데, 유독 고대 그리스사에서만 ‘참주’라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폭군, 폭군정, 폭군정치로 번역하면 분명한 것을 굳이 ‘주인을 참칭’한다는 뜻의 말을 만들어 참주, 참주정, 참주정치로 표현한 것은 왜일까? 폭군의 독재정치를 참주의 참주정치라는 말로 희석시키면서 독재정치에 대한 반감을 완화시키는 결과를 의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민주주의’나 ‘참주정치’는 일본에서 만든 개념어를 그대로 도입한 경우인데, 일본에서는 2000년대에 와서 ‘민주주의’라는 번역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정체를 지칭할 때 기존에 사용되어온 ‘귀족정-참주정-민주정’이라는 표현 대신 ‘귀족정-폭군정-민중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정치는 인간의 일

그리스의 민중정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저자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다. 지구 위 짐승들에게 각기 한 가지씩 재주를 주는 임무를 부여받은 에피메테우스의 실수로 인간은 아무런 재주를 받지 못한다. 이를 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멸종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아테나의 방에서 지혜를 훔쳐 인간에게 준다. 제우스가 반출을 엄격히 제한한 불과 지혜를 반출한 죄로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들에게 매일 오장육부를 파먹히는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 구성원들이 서로 사이좋게 살기 위해 필요한 국가경영기술인 ‘정치’는 제우스가 직접 맡고 있었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차마 제우스의 정치까지는 훔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 세계에서 정치란 신으로부터 받은 게 아닌 ‘인간의 일’이었다. 이는 다른 고대 문명권과의 결정적 차이다. 하늘로부터 내려 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중국이나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의 문명에서 만날 수 있는 천자, 라자, 대왕, 파라오 등의 존재다. 이들은 ‘정치’를 하지 않고 ‘통치’를 한다.
그리스어로 정치는 ‘폴리티케 테크네(πολιτικ? τ?χνη)’다. 이를 줄여 ‘폴리티케’라고 한다. 영어로 정치, 정치학을 뜻하는 politics의 어원이다. ‘폴리티케 테크네’란 말을 그대로 풀면 ‘폴리스의 일에 대한 기술’이다. 애초부터 왕권이 강하지 않았던 그리스적 전통 속에서 언제부턴가 귀족들의 부족 연합체 성격의 국가가 등장했고, 이들이 외세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자신들의 영역 가장 높은 곳에 ‘폴리스’라는 요새를 짓고 이곳에서 중요한 사항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폴리스 바로 아래 ‘아고라’가 생기면서 공동생활의 중심지가 되었고, 폴리스는 성채와 그 바깥의 주민들이 사는 지역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성채 자체는 ‘정상의, 끝의’라는 뜻의 ‘아크로’가 덧붙어 ‘아크로폴리스’라 불리게 되었다. ‘정치’란 즉 이 폴리스의 일에 대한 기술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리스인들은 최적의 정치체제를 찾아 귀족정에서 폭군정을 거쳐 민중정으로 귀결되는 긴 여정을 밟게 된 것이다.

귀족정에서 폭군정을 거쳐 민중정으로 가는 긴 여정

그리스도 처음에는 왕정으로 시작되었다. 세습적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군사령관으로서의 특권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에서 패배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전사 계급인 귀족들은 군사령관직을 선출직으로 바꿔 왕권에서 분리시켰다. 이후 힘의 균형이 귀족 쪽으로 넘어가면서 폴리스에 나타난 정체가 귀족정이다. 스파르타, 마케도니아 등 왕정을 한동안 유지한 폴리스도 있었지만 권력의 상당 부분을 양보한 형태로였다.
기원전 8세기 무렵 귀족정은 위기에 봉착한다. 귀족들의 토지 독점으로 이에 따른 사회 불안이 증폭되면서다. 폴리스가 정착되면서 인구는 급증하는데, 토지는 제한되어 있었다. 양극화로 인한 평민 계층의 불만이 폭주하자 이 여론에 힘입어 기존 귀족 권력들을 일소하고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이 ‘폭군정’이다. 하여 폭군은 어느 정도 평민 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평민층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아테네 민중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솔론도 독재권력을 얻어 온갖 개혁정책을 추진한 것이고, 이어 등장한 폭군 페이시스트라토스도 선정(善政)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7세기 중반에서 기원전 6세기 중반까지 폭군정은 그리스에서 가장 흔한 정부형태였는데, 그리스 사회에 폭군들이 기여한 바도 적지는 않다. 빈부 격차로 내전 위기에 있던 국가를 안정시키고, 경제적인 성장도 이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전통 귀족 계급은 몰락하고 폴리스의 민중과 민회를 비롯한 정치기구에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업적에도 그리스인들은 폭군을 독재자로만 기억한다. 폭군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더라도 불법적으로 집권하고 법을 무시하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통치한 것은 지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서양 사회는 어떤 독재자가 아무리 훌륭한 공헌을 해도 그가 독재자라는 것만 기억하지 그를 영웅화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을 칭송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나치’ 또는 ‘신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토지 부족과 빈부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폴리스들이 취한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이 해외 식민지 개척이었다. 지중해 무역도 활성화되어 올리브기름과 포도주 같은 산물은 널리 환영 받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올리브밭과 포도밭을 가진 그리스 귀족 지주라 하더라도 저장 용기를 만드는 도공이나 이를 운반하는 뱃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들과 협력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리스에는 이런 식으로 토지를 갖고 있지 않아도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폭군정이 길어지면서 폭군에 대한 적은 늘어났고 결국 다시 귀족들의 과두정으로 정부형태가 바뀌기도 하지만, 그 사이 성장한 민중 세력의 힘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민중들에겐 이제 경제적인 안정과 법률 그리고 민회라는 정치기구 등이 있었다. 아테네에서 폭군정이 끝나고 다시 귀족정으로 회귀할 위기에 처했을 때, 클레이스테네스와 민중파 시민들은 기존의 기득권을 혁파하는 혁신적인 법안을 민회에 제출하고 절대다수의 지지로 통과시켜 권력을 민중의 손으로 가져왔다.

알파벳의 도입이 가져온 변화

저자가 이번 책을 쓰며 확인한 흥미로운 점은 알파벳의 보급과 민중정치 발전의 관계다. 기원전 9세기 말에서 기원전 8세기 초 페니키아 문자에 모음을 첨가한 그리스 알파벳이 등장한다.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소를 나타내는 소리글자이다 보니 배우기 쉽기 읽고 쓰기에 편해 널리 보급되었다. 알파벳의 보급은 폴리스의 중심 개념인 법과 정의에 대한 시민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일과 날> 등의 작품이 널리 읽히게 되었는데, 그 안에 녹아 있는 ‘빼어남은 땀으로만 얻을 수 있다’, ‘신들은 일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등의 메시지는 이전 시대 귀족들의 가치관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 시대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상인과 뱃사람 등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계급의 가치관이었다. 계약서와 장부를 쓰기 위해 문자가 필요했던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문자 해독 능력이 향상되고 이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이어져 새로운 사상과 가치관을 만들어 나갔다.
문자 보급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법’에 대한 것이었다. 기존의 관습법이 귀족들이 자기네 마음대로 휘두르는 무기였다면, 이 시대 시민들은 이를 민중이 직접 다루고 통치자들도 따라야 하는 성문법으로 대체한 것이다. 또한 식민지를 개척할 때도 성문법 제정이 필수였다.
이렇게 문자 해독 능력을 가진 새로운 계층의 등장과 성문법을 통한 법에 의한 통치가 자리 잡으면서 그리스 사회에는 민중정치의 토양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촛불 혁명 완수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책의 출발은 한 신문에 가볍게 그리스 기행과 민주주의 이야기를 엮어 연재하는 것이었다. 17회에 걸쳐 원고지 약 450매 분량으로 끝났지만, 그 이후 ‘촛불’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70여 년이라는 기간 동안 국민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독재정치를 펼치던 정부를 순수한 민중의 힘으로만 세 번이나 무너뜨린 나라가 되었다. 세계 역사에 둘도 없는 엄청난 일이다. 저자는 이런 위대한 정치 혁명이 지속가능하려면 구체적인 행동을 뒷받침할 지식이 갖춰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국 그리스학의 최선두에 서 있는 학자로서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원고를 다시 써내려갔다고 고백한다. 6개월이 꼬박 걸렸고, 그렇게 원고지 1200매 분량의 이 책이 탄생했다. 기행의 느낌은 대폭 줄어들었고, 고대 그리스 정치사를 차분히 정리하는 교양서로 거듭났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부터 문자 보급과 민중정치의 발달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책속으로 추가]

문자 보급이 가져온 또 다른 사상적 변화는 법의 개념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 시민들은 귀족들이 자기네 마음대로 휘둘러 대는 신성한 관습법이라는 권위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스의 암흑기 시대에서 알파벳이 처음으로 보급된 시기 사이의 가장 큰 정치적 변화는 법을 귀족들로부터 빼앗아 민중이 직접 다루고 통치자들도 따라야 하는 성문법으로 대체한 것이다.(109~110쪽)

그리스 귀족 지주들은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을 저장하고 해외에 갖다 팔기 위해서 저장 용기를 만드는 도공들과 뱃사람들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그리스의 귀족들은 곡식을 생산하는 고대 4대강 문명의 지주 지배자들보다 불리했다. 그곳의 지주들은 잉여 곡물을 창고에 쌓아 두고 개인 용병을 고용하여 평민을 억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액체 형태의 생산물을 해외에 팔아야 했던 그리스 지주들은 상인들과 옹기장이들의 도움이 절실했기에 도공들이나 뱃사람들과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124~125쪽)

대권을 잡은 솔론은 차분하게 개혁을 준비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탐욕과 불의’ 때문이라고 보았다. 부자들에게 공평이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과 공로에 따라 합당한 몫을 가진다는 것을 뜻했다. 반면 빈민들은 모든 것을 전적으로 똑같이 나누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이런 건널 수 없는 반목과 갈등 속에서 솔론은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겸허하게 정의를 내세워 설득하는가 하면, 때로는 강력하게 권력을 행사하여 개혁을 이끌어나갔다. 그는 결코 어느 한편으로 쏠리지 않고 중용을 지켰다. 권세 있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거나 복종하지 않았고, 뽑아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법을 만들지도 않았다. 오로지 시민의 신임과 호의에 의지하여 모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공평한 사회에서는 내전이나 반란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탐욕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했고 평민들의 지나친 균등 분배 요구에 맞서 귀족의 이권을 보호했다.(142~143쪽)

페이시스트라토스는 33년 동안 두 번 추방을 당하고 세 번 집권했다. 그의 마지막 치세는 기원전 546년부터 기원전 527년까지 19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비록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기이하고도 파렴치한 정략을 일삼았지만 교양과 지성이 넘치는 매력적인 인간이었다. 그의 통치는 활기찼고 공정했다. 정적들과 무자비하게 싸우면서도 이기면 즉시 그들을 포용하는 아량을 보여 주었고, 민중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통치의 목표를 분명히 유지했고, 결단의 순간에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지식인 특유의 우유부단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통치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페이시스트라토스는 폭군이라기보다는 매우 합법적으로 폴리스를 다스렸다”라고 평가했듯이 그는 독재자처럼 굴지 않고 마치 선출된 아르콘처럼 온건하게 다스렸다. 한마디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폭군정치는 유연하고 인정이 있는 독재였다.(176쪽)

긍정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은 폭군을 독재자로만 기억할 뿐이다. 그리스인들도 처음에는 폭군의 정치에 만족하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폭군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내었다 하더라도 집권 과정이 불법이므로 정당한 권력이 아니었다. 또 폭군은 시민들의 바람과 달리 흔히 법을 무시하고 잘 지키지 않았으며 폭력적인 수단으로 통치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사치와 쾌락을 추구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등 잔인해지는가 하면 성적으로 방종에 빠지기 일쑤였다.(228쪽)

그리스의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서양 사회는 어떤 독재자가 아무리 훌륭한 공헌을 많이 남겨도 결코 독재자라는 사실 이외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 독일의 히틀러가 제1차 세계대전 후 암울했던 조국을 부흥시키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공헌을 했어도, 또 스페인의 프랑코 총독이 오랜 독재 정치 동안 나라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켰어도 그들은 독재자로 평가되고 기억될 뿐 결코 영웅화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을 칭송하고 추켜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신나치’ 또는 ‘신파시스트’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229쪽)

애써 되찾은 권력은 또다시 소수 귀족의 손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클레이스테네스와 민중파 시민들은 민중의 지지를 얻어낼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개인 시민 자격으로 아테네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혁신적인 법안을 민회에 직접 제출했다. 아테네의 전통적 네 부족을 해체하고, 도시 주변 지역과 해안 지역, 농촌 지역을 각기 열 개 단위로 나눠 모두 30개의 행정 단위를 만든 뒤, 제비뽑기로 도시 주변 지역에서 한 단위, 해안 지역에서 한 단위, 농촌 지역에서 한 단위씩을 뽑아 열 개의 새로운 부족을 만드는 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민회에서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통과되었다. 이 개혁으로 상당한 정치적 권력이 민중의 손에 넘어갔고, 이오니아족의 선조 이온의 네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는 렐리온, 아이기코레스, 아르가데스, 호플레스라는 전통 네 부족의 우두머리 귀족들은 그때까지 누리던 권위와 막강한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민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클레이스테네스는 민중파의 우두머리로 두각을 나타냈다.(236쪽)

진정한 민중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운영이 정당하지 않다면 정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사법제도의 개혁이야말로 민주화에 가장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부분이다. 아테네의 사법 혁명은 다른 정치 체계의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솔론에서부터 시작된다. 솔론은 귀족들의 의회였던 아레이오스 파고스의 재판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시민 법정에 항소하여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 시민 법정의 배심원단은 민회에서 제비뽑기로 뽑힌 시민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렇게 하여 힘없는 시민들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솔론은 모든 시민에게 노예를 비롯하여 누구든 불의를 당한 사람을 보면, 그 가해자가 누구이든 그 사람을 대신하여 시민 법정에 고발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했다. 그는 이런 방법을 통해 시민들 전체가 정의 앞에 한 몸처럼 행동하도록 유도했다.(280쪽)

배심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자 일반 대중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페리클레스는 이런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귀족파를 누르고 자신이 바라는 정책을 마음껏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 절대적인 권력을 시기한, 귀족 엘리트주의를 신봉했던 정적들은 페리클레스의 개혁을 대중의 견해와 바람에 영합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다. (…) 그러나 이런 비판은 그리 정당한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당시 시민들에게 지급된 수당은 타락을 걱정할 정도로 많은 액수가 아니었다. 모든 수당은 결코 보통 노동자들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을 초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의 경제 양극화에 따른 빈부 차이를 고려한다면 수당 지급은 오히려 꼭 필요한 조치였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과 달리 가난한 시민들은 이런 수당이 없다면 생업을 중지하면서까지 시간을 잡아먹는 공직에 나아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만일 이런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모든 공직은 여유 있는 계층들만 참여할 수 있는 불평등한 상태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는 일반 시민들에게 아무리 동등한 참정권을 준다 하여도 진정한 정치적 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가난한 노동 계층들까지 공공업무를 위해 시간을 내어 더욱 적극적으로 정부 일에 참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폴리스의 일을 하기 위해 희생하는 시간에 대한 손실을 보상하는 정부의 수당 지급이 꼭 필요하다. 적절한 보상 없이 오로지 일방적으로 애국심과 나라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페리클레스는 이런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말 많은 수당 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테네 민중정에서의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304~305쪽)

역사상 민중정의 끝은 독재정이었다. 그리스는 민중정이 무너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패권을 인정해야 했고, 세월이 더 지나서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로마 역시 공화정의 끝은 1인 독재의 제국이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바이마르공화국의 끝은 나치 독재였음만 기억해도 충분하다.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민중정치라는 것이 항상 돌봐야 하는 과정일 뿐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닐까? 조르바는 왜 자유는 피비린내가 물씬 나는 곳에서만 피어나는 거냐고 물었다. 조르바는 자유란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또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투쟁하는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것임을 말하려 한 것이다. 인류가 꿈꾸고 또 누리고 싶어 하는 민중정치는 자유와 평등, 정의를 구현하는 정치체제이다. 그 가운데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역시 자유다.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듯 민중정치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투쟁하고, 감시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리라. 민중정치는 결코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굳이 그리스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민중정치는 ‘에르곤(완성된 것)’이 아니라 ‘에네르기아(진행 중인 것)’인 것”이다.(332~333쪽)

목차

글쓴이의 말
프롤로그 - 번역에 대한 몇 가지 문제
1. 정치의 발명
2. 왕국에서 폴리스로
3. 스파르타의 대의 민중정치
4. 스파르타식 교육과 생활
5. 알파벳 도입이 가져온 변화
6. 킬론의 쿠데타
7. 솔론의 개혁
8. 폭군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등장
9. 폭군의 선정?
10. 폭군정의 몰락
11. 폭군정은 어떻게 생겨났나?
12.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폭군정
13.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14. 페르시아 전쟁
15. 에피알테스의 사법개혁
16. 페리클레스의 시대
에필로그 - 올림포스산을 내려오며
연표
지도
미주
참고문헌
인명 색인

저자소개

저자 유재원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그리스 아테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냈으며,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그리스 신화의 세계 1: 올림포스의 신들》, 《그리스 신화의 세계 2: 영웅들 이야기》, 《신화로 읽는 영화, 영화로 읽는 신화》, 《그리스: 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그리스 신화》, 《터키, 1만 년의 시간 여행 1,2》, 《슬픔이여 안녕: 순수한 영혼과의 이별》, 번역서로 《그림으로 보는 그리스-로마 문명》, 《그리스 민담》 등이 있다.
현재 ‘한국-그리스 협회’ 회장, ‘한국 그리스학 연구소’ 소장, ‘한국 카잔자키스의 친구들 모임’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한국 그리스학의 최선두에 서 있는 학자로서 그리스가 ‘발명’해낸 ‘데모크라티아’의 참뜻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도서소개

책의 출발은 한 신문에 가볍게 그리스 기행과 민주주의 이야기를 엮어 연재하는 것이었다. 17회에 걸쳐 원고지 약 450매 분량으로 끝났지만, 그 이후 ‘촛불’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70여 년이라는 기간 동안 국민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독재정치를 펼치던 정부를 순수한 민중의 힘으로만 세 번이나 무너뜨린 나라가 되었다. 세계 역사에 둘도 없는 엄청난 일이다. 저자는 이런 위대한 정치 혁명이 지속가능하려면 구체적인 행동을 뒷받침할 지식이 갖춰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국 그리스학의 최선두에 서 있는 학자로서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원고를 다시 써내려갔다고 고백한다. 6개월이 꼬박 걸렸고, 그렇게 원고지 1200매 분량의 이 책이 탄생했다. 기행의 느낌은 대폭 줄어들었고, 고대 그리스 정치사를 차분히 정리하는 교양서로 거듭났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부터 문자 보급과 민중정치의 발달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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