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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랑 선생, 그는 광대였다

맹랑 선생, 그는 광대였다

  • 송항룡
  • |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
  • 2017-10-30 출간
  • |
  • 336페이지
  • |
  • 146 X 212 X 25 mm /503g
  • |
  • ISBN 9791155502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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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이 책은 노장철학에 대한 지난한 학문적 연대기 쓰기를 마친 한 노교수가 남다른 서사의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의 앎(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맹랑 선생은 학식과 명망 높은 대학 교수이자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너지던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강단을 떠나버린다. “아무것도, 나는 실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노라. 더는 광대 노릇을 할 자신이 없노라.” 그러고는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오던 날 선생은 서재로 들어가 지금까지 써온 저서와 모든 원고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마당에는 하루 종일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저서와 원고는 그만큼 많았다. 그러나 선생은 원고만을 태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영혼까지 태우고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지적 오만 속에 살던 한 영혼이 앎의 무상함을 깨닫고 제자리로 되돌아오기까지, 홀연히 떠났던 방랑의 여정을 이 책은 담고 있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서책의 혼령은 맹랑 선생을 회유하려 들고
그날 밤 맹랑 선생은 방랑을 시작한다

맹랑 선생은 평생 책에 파묻혀 학문 연구에만 매달려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의 철학 강의는 제자들의 마음과 영혼까지 움직였고, 자신도 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고 확실하였다. 이러한 신념 속에 그의 지식은 한없이 확충되어갔다. 또한 그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의 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앎의 정당성, 심지어는 도덕적 덕목이 지니는 선의 문제까지도 그 실재를 증명하는 데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그간 붙들고 온 것 모두가 허상이요, 지식은 그 허상을 장식하고 꾸미는 데 불과했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찾고 있던 진리는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고, 무엇을 진리라 하는지도 지금에 와서는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이론과 학설들, 그리고 모든 존재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근원, 원리, 법칙, 이치와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모두 지식을 위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을 뿐, 아무것도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았다. 그 속에는 아무런 진실도 들어 있지 않았다. 최고의 가치라고 여겼던 도덕적 선이나 예술이 추구하는 미 역시 공허한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은 사실 속에 있는 것이요, 사실은 이성 안으로 들어와 지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의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스멀스멀 벌레 같은 것들이 책갈피에서 기어 나온다. 그리고 한 덩어리로 엉켜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람의 모습을 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난다. 이른바 서책의 혼령이었다. 혼령은 맹랑 선생이 그 많은 지식을 무(無)로 돌리고 학자로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한다며 타박하고,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혼령은 판단에 오류가 없다면 그것이 참 앎이 되는 것이며, 느낌과 감동 따위로는 무오류의 판단을 가져올 수가 없으니, 오직 싸늘한 이성만을 되찾으라며 그를 회유하곤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맹랑 선생은 지금까지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를 몽롱한 상태로 빠져든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책의 혼령들을 장사지내는 기이한 꿈에서 깬 맹랑 선생은 자신의 서재를 한번 둘러본다. 초저녁에 켜놓은 희미한 전등과 서가의 책들,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 쓰다만 원고도 그대로였다. 창밖은 밝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서재 안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회색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회색은 무엇이란 말인가?’ 맹랑 선생은 중얼거리며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사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방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무엇이 사실이고 앎이며 진리인가?
맹랑 선생, 광대, 무하공…
자기 분열적 지식인이 걷는 허무의 오디세이

소설은 맹랑 선생과 또 다른 두 형상들-무하공과 광대-이 따로 또 같이 이곳저곳을 유랑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한 편의 방랑기다. 맹랑 선생은 광대가 되기도 하고 무하공이 되기도 하였다. 광대가 되었을 때는 모든 진리가 무너져 내렸고, 무하공이 되었을 때는 영혼이 방황했다. 세 사람은 서로의 그림자가 되기도 하고, 하나의 영혼 속에 모여들기도 했다. 이렇게 저자는 자기 분열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운명을 세 분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해냈다.
방랑 중에 맹랑 선생은 자주 비틀거리거나 어지러워한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눈앞에는 영혼의 시체들이 굴러다니기도 했다. 감성을 배제한 순수 이성과 논리적 사고에만 의지해 인식해오던 자기 존재의 바탕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성과 과학의 기반인 논리적 사고는 사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실로 무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빛나는 생활의 나무만이 초록일세.” 괴테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지만, 맹랑 선생에게서는 오히려 이론 속에서 분명한 것이 현실의 사실 앞에서 모두 무너져 회색의 혼동으로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론 속에서 명확성으로 마주 서는 사실의 세계는 아무데도 없었다. 이론의 세계 그리고 개념의 세계는 현실의 사실 세계가 아니었다. 그 어느 것도 개념으로 있는 사실 세계는 없었다.
그의 영혼은 빛을 잃어갔다. 말, 언어, 문자…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왔던 개념들도 퇴색되어갔다. 너무나 분명했던 명제와 사념들이 흐려지고 모호해지면서, 모두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죽은 영혼의 시체들이 길 위를 나뒹굴고 있는 이유가 그랬다. 아무런 생명도 숨결도 진실도 없는 허상들이었다.
맹랑 선생이자 무하공이자 광대의 방황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끝나는 날이 있을 것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는 언어 속에 하나의 개념으로만 있는 것인가? 언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언어에 의탁해 이루어지는 이론과 명제들은 무엇인가? 그 모든 것들이 사실과는 무관한 것인가? 분열된 세 형상은 분열된 사념의 방황을 벗어날 수 없었다.

허울을 벗고
현실로 마주 서는 여인

맹랑 선생(과 분신들)의 방랑은 폭포수 떨어지는 계곡에서부터 동굴 속 현궁, 교회, 공원, 절, 주막, 굿당, 저잣거리 그리고 궁극의 공간인 남화원까지 이어지고, 때마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문자에 집착해 말의 세계가 곧 사실의 세계인 부묵, 그의 친구로 낭랑하게 책을 낭송하는 낙송과 세상일이 모두 책 속에 있다고 믿는 섭허는 서책의 혼령들이다. 장님에 그림자가 없는 상망은 그를 만나면 알고 있는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여기에 나루터에서 만난 어부와 사공과 저잣거리의 왁자한 여인들, 생명의 혼령인 홍몽과 구름의 혼령인 운장, 아지랑이의 혼령인 야마, 꼽추 구루자, 이주와 끽구, 원풍과 순망, 내공 깊은 청허 스님, 그리고 남화원에 모인 공맹을 비롯한 제자백가들과 그의 제자들까지, 저자가 소설의 난장에 불러들인 등장인물들은 그 자체만으로 캐릭터들의 카니발이다.
이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현주다. 그녀는 맹랑 선생처럼 여러 형상으로 등장하지만, 분열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자유롭게 변신하는 생명의 캐릭터다. 맹랑과 무하공과 광대는 이 여인을 찾아다닌다. 그녀는 동굴 속 현궁에서 만난 신녀이기도 하고, 굿당의 신녀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거리의 여인으로만 알고 있다. 치마끈을 쉽게 푼다고 하여 창기라 하기도 하고 아무 칼이나 갈고 다닌다 해서 숫돌 여인이라고도 불렀다. 모두 그녀를 비난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아는 제대로 사람은 없었다.
현주는 맹랑 선생에게 찬란한 이론의 옷을 벗고 마주 선 생활 속의 사실이었다. 맹랑 선생은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감정에 의존해 판단하거나 행동해본 일이 없었다.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거나 감동하는 일이 없었다. 인간의 모든 오류는 그런 감동과 감정에 의존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영혼은 오직 감정이 배제된 사유, 싸늘한 이성만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선악시비는 물론 진과 미에 있어서 감정으로 접근하여서는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감정은 전혀 논리적이 아니요, 올바른 사유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여인이 다가와 맹랑 선생의 손을 잡자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것 같더니,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갇혀서 억눌려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않았던 감정의 씨앗들이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폭풍처럼 거칠어지면서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 맹랑 선생은 그녀 앞에서 사유 기능이 멈추고 판단이 흐려졌다. 이성은 완전히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갔다.
그러나 감성은 이성보다는 따뜻하고 친근하고 감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이상한 향기와 감미로움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그 발가벗은 맨몸의 여인(사실)을 먹물(지식) 먹은 맹랑 선생은 항상 찾아다녔다.

궁극의 공간
남화원의 향연

이윽고 남화원에 이른다. 그곳은 시간이 소거되어 자유롭고 평화로운 신비한 공간이다. 무하유지향이자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궁극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도 여러 형상들이 산다. 행위에 얽매임 없이 늙지도 않고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인식의 구속에 헤매는 이들이 있다. 이 공간의 자유를 겉도는 공맹과 그의 일속들이다. 여전히 자기가 만든 굴레를 스스로 쓰고 있는 이들은 소설에서 장마당 약장수에나 비유돼 있다.
소설의 파국은 남화원에서 열리는 지상 최대의 교향악의 향연으로 설정돼 있다. 청중들이 몰려들었다. 『시경』을 다듬고 『악경』을 편찬했다는 공자는 맹자와 더불어 삼천 제자를 이끌고 맨 앞에 자리 잡았고, 한비자, 양주, 묵적이 보이는가 하면, 추연, 허행이 보이고, 손자, 오자, 혜시, 공손룡도 거적을 펼쳐놓고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모두 자기가 성자나 현자인 체하는 지식인들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천리를 마다 않고 찾아다니며 지식을 팔아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어디선가 서서히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천뢰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풀잎은 풀잎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바위가 울고 나무 밑동이 흔들렸다. 온갖 소리가 하나로 합해지고 천 가지 만 가지로 갈라지면서 무서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소리란 소리는 다 살아나 울부짖었다.
이 소리에 청중은 넋을 잃어갔다. 소문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사광은 북채를 꺾었다. 공자는 울고, 그 제자는 흐느끼며 훌쩍였다. 묵자도 입을 벌린 채 죽은 고목처럼 굳어 있었고, 한비자는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겁에 질려 있었다. 혜시와 공손룡은 벙어리가 되어 말을 잃었고, 손자와 오자는 병장기를 떨어뜨린 채 다시 주워들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모든 청중은 처음에는 말을 잃었고, 다음에는 마음을 잃었다. 그리고는 서로를 잃고, 자기를 잃어갔다. 생각을 잃고, 시비를 잃고, 지혜를 잃고, 분별을 잃고, 선악을 잃고, 호오를 잃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공자는 증삼이 지고 온 『악경』을 가져오라 하여 한 권 한 권 죽간을 뽑아내어 부러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한비자는 족쇄를 버리고, 손자와 오자는 병장기를 내던졌다. 혜시는 시비를 버리고, 공손룡은 말을 버리고, 묵자는 사랑을 버리고, 순자는 이름을 버리고, 양주는 자기를 버리고, 추연은 산가지를 집어 내던졌다.
공자가 『악경』의 죽간을 꺾어버리는 것을 본 맹랑 선생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천뢰악을 듣고 인뢰악의 한계를 생각한 모양이군... 죽이는 소리가 없으면 다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앎이란, 구속이란 이렇게 무언가를 죽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자, 그리고 이제 독자는 맹랑 선생이 저서과 원고를 모두 불태워버리는 첫 장면으로 돌아가면 된다.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맹랑 선생전
맹랑 선생
그날 밤 서재에서
숲속의 계곡
거리의 광대
석탄절에 있었던 일
유령의 술집
굿당의 신녀

제2부 방황하는 영혼들
맹랑 선생과 광대와 무하공
영혼의 추락
방황하는 영혼들
님을 기리는 노래
현실로 마주 서는 여인
남화원으로 가는 길

제3부 남화원의 사람들
나루 남화진
남화원의 초원
저잣거리
서책의 혼령들
지상 최대의 교향악

저자소개

저자 송항룡은 경기도 가평군 산촌에서 살고 있는 필자는 1938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태어났다. 해방되던 해 경상북도 풍기로 내려와 소년 시절을 서당에서 보내다가 6.25때 서울로 올라왔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여 철학박사가 된 후, 단국대학교 교수를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년을 맞았다. 동양철학회장, 도가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한국도교철학사』, 『동양인의 철학적 사고와 그 삶의 세계』, 『장자의 사유와 수필 세계』, 『맹랑 선생전』, 『남화원의 향연-이야기 장자 철학』,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금 바로 여기』, 『노자가 부른 노래』, 『노자를 이렇게 읽었다』 등이 있다.

도서소개

『맹랑 선생, 그는 광대였다』는 노장철학에 대한 지난한 학문적 연대기 쓰기를 마친 한 노교수가 남다른 서사의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의 앎(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맹랑 선생은 학식과 명망 높은 대학 교수이자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너지던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강단을 떠나버린다. “아무것도, 나는 실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노라. 더는 광대 노릇을 할 자신이 없노라.” 그러고는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오던 날 선생은 서재로 들어가 지금까지 써온 저서와 모든 원고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마당에는 하루 종일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저서와 원고는 그만큼 많았다. 그러나 선생은 원고만을 태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영혼까지 태우고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지적 오만 속에 살던 한 영혼이 앎의 무상함을 깨닫고 제자리로 되돌아오기까지, 홀연히 떠났던 방랑의 여정을 이 책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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