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차이를 넘어 친구가 된 석이와 비치부,
진정한 보배의 의미를 알기까지 두 아이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낸 미륵사지 석탑 이야기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돌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이에요.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이기도 하지요. 오늘날과 같이 첨단 장비가 없던 시절, 웅장한 석탑을 쌓는 데는 무수히 많은 장인들의 땀과 노력이 들었을 거예요. 뿐만 아니라 탑이 조금씩 위로 올라갈 때마다 백성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석탑이 무사히 완성되기를 기원했지요. 쌓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다 같은 마음으로 소망했어요. 미륵사지 석탑은 이렇게 돌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바람이 새겨져 마침내 견고한 탑으로 우뚝 선 것이지요.
책고래아이들 시리즈 스무 번째 동화책 《미륵사의 보배》는 미륵사지 석탑이 세워질 무렵을 배경으로 저마다의 소망을 쫓는 두 아이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부모를 잃고 아픈 동생을 보살피며 힘겹게 살아가는 석이와 백제에서 가장 높은 귀족 집안의 아들이지만 병약한 몸 때문에 늘 집에만 갇혀 지내는 비치부가 주인공이지요. 원망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비치부는 석이를 만나고 차츰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진심으로 석이를 도와주려고 하지요. 한편 석이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보배’가 금이나 비단 따위의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담아 보시를 하려고 해요. 아픈 동생 달이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우리는 모두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소망일 수도 있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것이 소망일 수도 있어요. 무엇을 갖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소망일 수도 있지요. 모든 소망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망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납니다. 고된 순간마다 우리가 힘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소망을 품은 단단한 마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미륵사의 보배》 속에서 석이와 비치부가 견뎌 내야 할 삶의 무게는 녹록치 않습니다. 하지만 대견하게도 두 아이는 체념하거나 주저앉지 않아요. 서로를 의지하며 한걸음씩 당차게 내딛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미륵사의 보배》가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까닭입니다.
부모 없이 아픈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석이와
병약한 몸으로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비치부
나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어려운 일일 수 있어요. 자유롭게 외출하고 마음껏 거리를 뛰어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흔한 일상이겠지만 몸이 아픈 아이들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하루’일 수 있어요. 《미륵사의 보배》에서 비치부가 그랬던 것처럼, 석이의 동생 달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비치부는 권세 있는 귀족 집안의 아들이었어요.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늘 집안에만 있어야 했지요. 바깥출입은 꿈도 꿀 수 없었어요. 늘 탕재를 달고 살았는데, 석이를 만난 것도 바로 탕재 때문이었어요. 사소한 오해로 석이가 탕재 도둑으로 몰렸거든요. 비치부는 석이에게 벌을 내리는 대신 솔깃한 제의를 했어요. 자신의 청을 들어주면 보시를 할 수 있는 보배를 주겠다고 했지요. 아픈 달이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보시를 하고 싶었던 석이는 어떤 청이든 들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둘은 미륵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미륵사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어요. 말을 타고 가면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몸도 성치 않은 비치부와 함께라면 한나절로도 모자랄 듯했지요. 둘은 함께 걸으며 차츰 서로의 처지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뚝 떨어져 있던 마음이 어느새 이어지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석이와 비치부는 ‘벗’이 되었답니다. 비치부는 석이에게 금정(화폐로 쓰이는 금판)을 주고 글도 가르쳐 줍니다. 금정에 직접 소원을 적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하지만 둘의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병이 깊어진 비치부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거든요. 석이는 비치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해 금정에 글자를 새깁니다.
마침내 사리 봉안식 날이 다가왔어요. 손이 다 상하도록 글자를 모두 새긴 석이는 금정을 가슴에 품고 미륵사로 향합니다. 봉안식이 시작되고 임금이 먼저 보시를 하고 나자 귀족들의 보시가 이어졌어요. 석이는 보시를 할 수 없는 것이 애달팠어요. 귀족들만 보시를 할 수가 있었거든요. 하늘을 원망하며 서 있는데, 어디선가 비치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벌떡 일어난 석이가 갑자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임금이 선 곳으로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미륵이 나타나 세상을 구해 주기를 기다린다는 석이에게 비치부는 말합니다. “오지 않는 미륵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화평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요. 또 “하늘은 스스로 구하는 자를 돕는다”고도 했어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만큼이나 굳은 의지가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내가 선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피고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석이가 임금 앞에 서서 ‘백성들이 누구나 보시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처럼 말이지요. 결국 석이의 작은 결심과 행동이 세상을 바꾸었어요. 정말 귀족뿐 아니라 백성 모두가 보시를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어른도, 아이도, 가난한 사람도, 부자인 사람도 구분 없이 말이지요.
여러분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그저 기다리기만 하거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만 하고 있지는 않나요? 비치부도 처음에는 자신을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게 한 하늘을 원망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아픈 동생까지 보살피며 살아가는 석이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지요.
《미륵사의 보배》는 두 아이의 소망과 성장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석이와 비치부 앞에 버티고 선 세상은 냉엄하기만 합니다.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석이의 삶도, 병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비치부의 삶도 순탄치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는 ‘희망’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 내지요. 그 마음이 우리에게도 절절히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