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합리성의 토대 위에서 우리가 새롭게 깨닫게 되는 여러 사실들을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상식적 태도 및 현재 참되게 믿어지는 원리들도 새롭게 혁명적 이론으로 바뀔 수 있다는 회의주의의 열린 마음을 갖고서, 이 책에서는 인류 지성사에서 거듭 논의되어 온 중요한 몇 가지 철학 문제들을 대한 날카로운 분석 방식을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영미 철학에서 ‘분석 철학’으로 불리는 논의를 처음 구현해 놓은 이 책은, 30대 후반에 형성된 무어 교수의 가장 창의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80대 초반에 타계할 때까지 이 방향의 노선대로 꾸준히 철학적 문제들을 논의해 나갔다.
장별 목차를 보면, 이 책에서 논의의 범위가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윤리 영역’의 논의를 제외하고서 형이상학, 인식론, 진리 확정 방식 등 중요한 지성사의 물음들이 포괄적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경험주의와 이성주의의 두 흐름에 토대를 마련한 흄과 칸트의 업적들을 깊이 있게 검토한 뒤에, 대립적인 양 서술되어 온 핵심 논점들이 우리 정신의 ‘수반 현상’으로서 모두 포섭될 수 있음을 최초로 보여 주었다. 이를 구체적 경험 사건들을 거쳐서 머릿속에 깃드는 경험조각들, 그리고 직간접 지식을 통한 일관된 지식 체계 수립 사이에 필요한 유기적 상호 관련성을 다루면서 분명하게 논의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살고 있고 알 수 있는 무대로서 전체 생태 환경과 지식 체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기본 개념들을 놓고서, 여러 가지 필요한 개념들을 20장으로 나누어서 깊이 있게 천착하였다.
먼저 물질적 대상, 시간과 공간, 시간과 공간 속의 존재, 무한의 개념과 실재한다는 개념을 분석하고 나서, 현실 세계의 대상과 영원한 세계 속의 대상들이 개별성과 보편성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 속성, 관계적 상태, 관계의 세 가지 층위로 재구성될 수 있으며, 이런 개념들이 사실, 현존, 존재 상태라는 층위들로 분포되어 있음을 논의하였다. 이것들에 대한 참값(참값들을 모아 놓은 진리)을 판정하고 확립하는 상위 개념이 처음으로 실재와 단언(명제) 사이의 ‘대응 관계’임을 주장하였다.
대응 관계의 확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우리의 정신 작용은, 기억과 상상을 통한 추상화 작업이며, 추상화 작업의 결과는 보편 속성으로 귀속되는데, 여전히 제3의 보편 속성들까지 추구되고 확정될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우리가 보편 속성을 깨닫는 방식은 오직 추상화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며,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보편 속성들이 발견될 것이다. 보편 속성들과 존재하는 상태들과 무한 속성들이 서로 한데 어울려 가동됨으로써, 아직 조금도 겪어 보지 않았지만 여전히 있을 수 있는 전체 세계를 표상해 준다는 믿음이 참되게 성립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신 작업은 오직 우리가 참되다고 여기는 믿음 체계에 의해서 작동되지만, 믿음 체계 그 자체는 어떤 방식으로도 진리의 대응 관계로 확립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역설이 생겨난다(무어의 역설). 그렇다면 현대 사조로서 ‘분석 철학’의 시작을 타종한 이 책이 언제나 우리가 마주하여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의 범위와 논의의 깊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현재 시점에서 변함없이 고전의 반열에 든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