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의료근대화를 추구했던 청년 의사들의
도시 건설과 위생실험에 관한 이야기
19세기 말 중국은 밖으로는 중화질서의 해체 속에서 제국주의 각국에 의해 영토분할이 심화되고 있었고, 안으로는 계속되는 농민반란과 지식층의 제도개혁 요구 등으로 전통적 지배질서 역시 붕괴되고 있었다. 특히 제국주의 각국은 무역 확대와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고 있었는데, 각종 전염병 등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위생(衛生)’은 제국주의 각국이 중국에서 지배공간의 확장을 꾀하고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었다. 따라서 주권 회복과 제반 봉건질서의 질곡에서 벗어난 체계적인 인구 관리를 위해서 중국인들에게는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에 걸맞은 근대적 위생의료체제의 건립이 요구되고 있었다.
1920년대 중반 베이징에서 시작된 위생 실험은 중국에 필요한 근대적 위생의료시스템과 도시근대화를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북경의 붉은 의사들’은 처음부터 사회주의적인 의료체제 건립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베이징시의 국가의료 경험을 통해 중국의 도시와 농촌에서 신중국 건설에 필요한 이상주의적인 사회주의 의료모델의 상상력을 제공했다. 이 책에는 중국의 도시 근대화 경험과 근대의학의 내면화 과정이 담겨있다.
한편, 베이징의 위생행정에 관한 이 연구는 중국의 근대적 위생의료체제에 관한 기존 서양중심적 시각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중국 전통을 강조하는 시각이라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가 건설에 부합한 중국적 근대성을 구축하고자 했던 중국인의 시각을 복원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더 나아가 1930-1940년대 중국에서 근대적 위생행정을 통한 공간 통제와 아래로부터의 균열양상이 규명된다면, 근대 중국에서 위생의 근대성을 이해함은 물론 차후 옌안 시기와 신중국(新中國) 성립 이후 중국적 위생의료체제의 형성 과정을 해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2008년 출간한 『국가, 도시, 위생: 1930년대 베이핑시정부의 위생행정과 국가의료』을 전면 개정한 것이다. 기존 책이 주로 1930년대로 한정했다면, 이 책은 그 범위를 일본점령기까지 확장했으며, 근대의학에 의한 도시공간의 재편과 균열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포괄하고자 했다. 또한 기존에 제기했던 베이징의 위생실험을 위로부터의 시각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시각을 결합하여 ‘위생의 혼종성’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기존의 문제의식을 다듬어 보고자 했다.